‘붓’의 장인 호산, 대한민국 문방사우의 역사를 지키다

김진태 호산 붓 박물관 관장

  • 입력 2020.08.24 17:25
  • 수정 2020.08.24 22:05
  • 기자명 박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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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지구촌을 휘감고 있다. K-POP부터 K-Beauty, K-Food 등 다양한 문화에 ‘Korea’의 ‘K’를 붙이면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고유문화는 점점 자취를 감춰만 가는 모양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지금의 문화를 보자면 옛 것을 익히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새로운 것만 찬양하는 모습만이 남았다.

이러한 가운데,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가는 인사동에서 ‘붓’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호산 붓 박물관의 김진태 관장이다. 14세에 붓의 세계에 입문해 어느덧 55년의 세월을 붓 제작에 바쳐 온 김 관장은 현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문화의 얼을 수호하는 김진태 관장을 만나 우리 문화의 역사와 전통의 보존,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호산, 붓의 역사 보존을 통해 전통의 맥을 잇다
한자문화권으로 묶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각각 서예(書藝), 서법(書法), 서도(書道)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붓글씨 문화 또한 함께 공유하고 있다. 호산 김진태 관장은 붓 전문가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현지의 붓 공장에서 근무하는 등 다양한 붓 제작 기법을 익혔다. 국내에서 붓의 역사를 알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으나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고, 역사적 사료 또한 많이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문화 교류의 흐름으로 보나 시기로 보나 중국에서 시작된 붓의 역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을 텐데, 일본의 <붓(筆)>이라는 책 속에는 한국의 붓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 축소, 왜곡되어 있습니다. 붓을 만드는 장인으로서 매우 충격적이고 황당했지요. 그러면서도 우리 스스로도 붓 문화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붓의 명맥을 잇고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 힘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인으로서 우리의 전통을 보존 계승하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삶을 꿈꾸며 노력하지만, 명맥을 이어가려는 인재 또한 양성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고요. 그럼에도 이 문화를 지켜가고자 붓 박물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문방사우와 서화의 총망라 ‘호산 붓 박물관’
2011년 10월에 개관한 호산 붓 박물관은 그간 김진태 관장이 수집한 우리나라의 붓, 벼루, 먹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것까지 더해 100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김진태 관장이 직접 제작한 붓을 판매하기도 하며, 문방서우를 다루는 재료학 강의를 열기도 한다. 그야말로 문방사우와 서화에 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문방사우(지필묵연)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중국과 일본을 다니며 붓의 제작법을 익히고, 역사를 익히는 동안 일본의 많은 개인박물관, 중국의 붓 박물관, 혹은 문방사우 관련 박물관을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속 박물관 등에 생활 물품 중의 하나로 잠깐 소개될 뿐 전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붓을 소개하고 종이와, 먹, 벼루를 다루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붓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화, 서예 작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재료 공급과 더불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 역사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관련 종사자만 필요에 의해 방문하는 필방이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설정을 했습니다."

 

우리 고유문화 수호에 앞장서고파
서예부터 서화, 민화, 한국화, 문인화, 사경 등 문방사우를 사용하는 각 분야마다 걸맞은 붓도 가지각색이다. 또, 사용자에 따라 손에 알맞은 붓도 제각각이다. 김진태 관장은 그동안 사용자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반영, 용도와 사용감 등을 세분화해 향후 10년 안에 400여종의 붓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도 호산 붓 박물관이 가장 다양한 종류의 붓을 제작·판매하고 있으며, 400여종의 붓이 완성된다면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공간이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김진태 관장은 붓의 ‘한글화’ 작업에도 노력을 기하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붓에는 한자가 적혀있기 마련인데, 간혹 붓 박물관을 방문하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김 관장이 제작한 작품을 자국의 상품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에 김진태 관장은 제작 붓에 우리나라의 산 이름과 강 이름, 꽃 이름 등을 새겨 넣으며 우리의 것임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내년 즈음에는 문방사우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을 집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마 학자가 아닌 붓을 제작하는 실무자가 집필한 책은 세계에서도 없을 것입니다. 온전한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고, 문방사우에 대해 그간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문방사우의 교과서인 셈이지요."

우리 붓의 역사와 현재를 지켜나가는 데 사활을 건 김진태 관장은 아직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사명감을 넘어 숙명으로 임하고 있는 김진태 관장. 그가 지켜가고 있는 우리의 문화가 후대에도 사랑받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

Profile

1952년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운암 신홍택 전수 (동신당 / 1965년 14세 입문)
한국전통기능보존협회 회원

상훈
1980년 제5회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1980년 제10호 중소기업진흥공단 전국관광민예품경진대회 입선
1981년 제6회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전승공예대전 장려
1981년 제2회 사단법인 전통공예기능보존협회 전통공예대전 은상
1981년 제2회 한국전통예술협회 한국전통공예대전
1982년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제7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1982년 제12회 중소기업진흥공단 88올림픽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입선
1993년 서울특별시 KBS 「서울 600년 서울문화상품경진대회」장려
2006년 서울특별시 서울공예상공모전 장려
2010년 제35회 대한민국 전승공예재전 특선
  
주요 전시
2005년 청주예술의전당 직지축제 문방사우초대전 (개인소장전)
2008년 청주예술의전당 직지축제 문방사우초대전 (개인소장전)
2010년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대한민국 그랑프리 미술대상」 초대작가

주요 소장처
운보 김기창 화백 전시관 「운보의 집」- 모필 합본
서울특별시 노원구청 - 모필액자

연구 활동
1970~75년 일본 히로시마 가와지리 「모필연구」참여
1992~2007년 한·중 모필 제조기술 교류
저서 「동양화란 어떤 그림인가」 2004/열화당/배재영-  제작사진 민 자문 제공
저서 「문방사우 특별 초대전(호산 김진태선생 소장품)」 2005/호산관/김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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