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사랑한 화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그리다

故박내후 작가

  • 입력 2020.05.28 11:31
  • 수정 2020.05.29 16:05
  • 기자명 박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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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염치읍 방현리에는 자연을 사랑한 박내후 작가가 일구어 놓은 ‘방현제’가 있다. 박내후 작가 부부는 1986년 서울을 떠나 수령 200년은 훌쩍 넘기고도 남은 왕버드나무가 마을 초입을 지키는 방현마을에 터를 잡았다. 박 작가는 그곳 뜨락에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정원을 조성했다. 박 작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안식처의 이름을 ‘방현제’라 지었다. 

박내후 작가는 이 땅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사랑했던 자연의 모든 것들이 작품으로 남았다.

자연이 품은 안식처, '방현제'
20년 세월동안 가꾸어 온 방현제 뜨락엔 봄이면 금빛 산수유를 시작으로 살구꽃, 벚꽃, 자두꽃, 등꽃, 민들레, 패랭이꽃이 만개한다. 백목련보다 큰 토종목련이 뒤뜰을 환하게 밝혀주고 행운을 부른다는 비단같이 흰 목단이 작업실 앞에서 자태를 뽐낸다. 

산사나무의 꽃과 열매, 보리수, 소나무, 오죽, 주목, 우아한 청단풍, 7~8월에 피는 박주가리의 꽃과 열매 등으로 가득했다. 박내후 작가가 지성으로 가꾼 100여분의 동양란과 30여분의 분재도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의 것들로 이룬 성(城)에서 박내후 작가 내외는 천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또 만끽했다. 

시선이 닿는 방현제의 곳곳이 박내후 작가에겐 그림의 소재였다. 하다못해 식탁에 앉는 자리마저도 창 너머로 너른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그의 지정석이었을 정도다. 붓으로 그어낸 듯 유려한 능선을 자랑하는 야트막한 산이며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박 작가의 화폭에 남았다. 꽃과 나무를 키우는 것은 오래 바라보며 인내하고 사색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작품 속에서 생명이 절정이던 그 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래골에 흐르는 '洗月', 세월당의 주인을 꿈꾸며
박내후 작가의 자연을 향한 사랑은 그의 낙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손수 새긴 낙관이 50여 종 넘게 나왔다. 그중에서도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세월리를 향한 애정이 담긴 낙관이 발견됐다.

‘세월당’(洗月堂)이라 새겨 넣은 낙관 도장 옆에는 ‘경기 양평에 세월리(洗月里)라는 마을이 있다. 동네는 아늑하고 물이 맑고 깨끗하여 달 씻는 마을이라는 이름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후에 지치고 쉴 수 있는 처지가 되면 거기에 집을 한 채 짓고 세월초당 (洗月草堂)이라 이름 하련다. -2003년 8월 세월당 주인’이라 새겨 있었다.

세월리에는 방현마을에 없는 단 한 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물’이다. 양자산 다래골에 흐르는 냇물이 매우 맑아 달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몸을 씻고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洗月’. 얼마나 아름답기에 아내와 함께 가기를 그리 소원했을까. 그의 낙관을 통해 세월리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본다. 

 

못다 이룬 '개인전'의 꿈, '유고전'으로 펼치다
박내후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그렸지만 세상에 내놓지는 않았다. 환갑에 딱 한번 개인전을 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그림에 마지막 낙관을 찍고 발병을 했다. 

박 작가의 유족들은 그의 못다 이룬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난해 8월, 추모 10주기를 맞아 유고전 ‘洗月’을 열기도 했다. 박내후 작가의 아내 박명숙 여사는 “고인의 손끝에서 피어난 인고의 작품들, 그 향기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지길 바란다”면서 “방현제에 남아 곳곳에 숨은 박내후 작가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작품을 정리하는 것이 제게 남은 숙제”라며 박내후 작가의 유작들을 많은 이들과 감상하길 희망했다. 

 

Profile

1949년 출생
2009년 1월 25일 작고

활동
*1971년~2008년 창작활동
2020년 6월 서울조형아트서울 2020 출품
2019년 1회 초대개인전
1980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동문9인전
1968년 홍익대학교 미전 동상수상

경력
1971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학과 졸업
1971년~2007년 미술교사 근무(양평여중/서울 장훈고/ 온양 한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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