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오덴세(Odense), '안데르센의 고향'

김석기 작가l승인2020.03.06l수정2020.03.0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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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덴세 항구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핀 섬’의 오덴세(Odense)는 안데르센이 태어난 곳이다. 오덴세 강을 끼고 전통적인 북유럽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시 오덴세는 노르만족의 전쟁의 신인 오딘을 우상으로 숭배하던 섬이었으나 중세 시대 크누트 2세에 의해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그리스도의 섬으로 변화했다. 1335년에는 자치 시로 인가를 받았으며, 16-17세기에는 상업이 번성하여 항구가 건설되고 오덴세 운하를 개통하면서 항구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오덴세의 주요 명소들은 중앙역에서 안데르센의 생가 사이에 몰려있으며, 안데르센 박물관을 비롯하여 기차박물관, 칼 닐슨 박물관 등이 있다. 안데르센 공원의 아름다운 잔디 위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이 찾는 이들을 반긴다.  

▲ 안델센 동상

안데르센은 1805년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궁핍한 생활 속에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집에서 보내는 아들을 위하여 그의 아버지는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도 보여주고, 동화도 읽어주며 그가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넉넉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바르게 가르치고자 노력하였다. 안데르센은 생활은 어려웠지만 아버지의 소망대로 풍부한 상상력 속에 커다란 꿈을 키우는 소년이 되었다. 그는 인형극에 나오는 배우와 같이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실현하고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갔다. 1819년 오덴세를 떠나던 해 안데르센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코펜하겐으로 간 그는 1820년부터 1822년까지 코펜하겐의 왕립극장 부속학교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무용과 노래를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로 목소리가 나빠지면서 배우가 되려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렀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던 그는 극본을 쓰는 공부에 더욱 열중하여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안데르센은 그가 쓴 극본들을 완성되는 대로 왕립극장 단장에게 보냈다. 그의 작품을 받아보던 왕립극장 단장 요나스 콜린은 1822년 그의 처녀작 ‘젊은이의 시련’을 발표하게 해주었고,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맞춤법이 엉망인 안데르센을 라틴어 학교에 입학시켰고, 1828년에는 코펜하겐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안데르센은 코펜하겐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작품도 많이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극작가로서 극본을 쓰는 일보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동화의 세계를 작품으로 남기는 일에 열심이었다. 

 

▲ 덴마크 풍경

그는 문학작품 ‘홀멘 운하에서 아마게르 섬 동쪽 끝까지의 도보여행기’와 희곡 ‘흑백혼혈아’ 소설 ‘즉흥시인’과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 등을 발표하여 성공적인 평가와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안데르센의 문학작품에 대한 인정 못지않게 그가 쓰고 있는 동화에 대한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안데르센의 첫 번째 동화책 ‘어린이들을 위한 옛날이야기’ 가 발행되게 되었다. 그 속에는 ‘부시통’ ‘땅딸이 클라우스와 키다리 클라우스’ ‘공주와 완두콩’ ‘꼬마 이다의 꽃’ 등이 실리게 되었다. 그 후 그의 ‘그림 없는 그림책’ ‘새로운 동화와 이야기 집’ 등은 유럽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안데르센을 유명한 동화 작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명성은 오덴세 시가 안데르센을 명예시민으로 추대하여 그가 오덴세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안데르센의 작품을 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안데르센의 작품 속에는 착하게 사는 방법과 아름답게 사는 것을 예찬하는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승리와 성공으로 기쁨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불행과 비극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고 아프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속에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과 순수한 인간들의 생각이 어린이들의 시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안데르센이 불행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았던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들을 포함한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작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슬픈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안데르센이 어린 시절 외롭게 살았던 자신과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실 되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덴마크의 시골풍경

안데르센은 결혼도 하지 않고 어느 곳에 정착하는 것도 싫어했으며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이야말로 나의 인생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안데르센은 여행을 즐겼고, 북유럽과 유럽, 소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두루 여행하며 ‘시인이 간 중동의 장터’, ‘스웨덴 여행기’, ‘스페인 여행기’ 등 수많은 여행기를 남겼다. 그 외에도 그는 평생 쓴 일기와 수천 통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평생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남겨 자신의 진실 된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1875년 8월 4일 지병으로 70세의 나이에 영면의 길로 떠나는 안데르센을 보내기 위해 장례식장에 덴마크의 국왕과 왕비가 참석하였다. 덴마크가 사랑하였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했던 안데르센이 가는 길에 아름다운 이별의 흔적을 남긴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가까이하는 삶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가 남긴 160여 편의 동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끊이지 않고 영원히 출판될 것이며 안데르센은 항상 우리들 곁에서 우리들의 친구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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