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그릇, 예술로 채우다

민병구 작가 박예솔 기자l승인2019.12.23l수정2019.12.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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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 있어 배우의 연기가 연극의 내용이라면 무대는 연기를 담는 그릇이다. 무대 연출 만으로도 극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또, 무대 장치 뿐 아니라 각종 소품과 음향, 조명까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피플투데이가 대학로에서 만난 민병구 작가는 1989년 무대미술에 발을 들이며 1년 동안 140여 공연의 무대를 만들 정도로 공연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부엉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술계에도 한 획을 긋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예술'
민병구 작가는 학창시절 이렇다 할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마음 속, 예술을 향한 열망은 가득했다. 민 작가는 헌책방에서 우연 히 구입하게 된 사군자 묘법서를 보며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학교에서 시행하는 미술교육과 그가 원하는 진짜 미술과는 괴리가 있었다.

“어느 날 고모님을 따라 인사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보았던 한국화 한 점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진이라 착각할 정도로 세밀한 묘사를 해낸다는 것이 신기했죠. 그 뒤로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워갔고, 고등학교 때 민전에 입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초도 없이 공모전 냈다고 건방지다며 미술 선생님께 혼이 났습니다. 당시 교감 선생님이 참 성인(聖人)이셨어요. 수업을 듣지 않아도 좋으니 학교에 와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죠. 사람을 대하는 법,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그분에게 배웠습니다. 아마도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 작가는 고향인 청주와 서울 인사동을 오가며 신문과 잡지 등에 만평을 그리는 일을 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방송국에 발을 들이면서 무대미술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민병구 작가에게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이창구 교수와 무대 미술가 송관우 선생 아래서 무대미술을 도울 기회가 찾아왔다. 이후 청주 극단 <새벽>의 선배들의 요청으로 ‘오델로’ 무대미술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무대미술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연극에 생명을 불어넣는 '무대미술'
민 작가는 무대미술 작업을 위해 배우지 않은 기술이 없다고 말했다. 간단한 작업을 위해 인건비를 들여 전문가를 부르느니 직접 배워 활용하는 것이 백번 낫다 판단한 터다.

“예술이라는 게 다 그렇다지만 이 업계가 그리 배부른 산업이 아닙니다. 용접이며, 목공이며 , 주물도 직접 합니다. 사실 배우기만 하면 어려운 기술이 아닌데 며칠을 전문가를 불러다가 작업을 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큰 격 아닌가요? ‘차라리 내가 배우자’하는 생각으로 건설 현장에 찾아가기도 하고, 무대에 필요한 기술은 닥치는 대로 배웠습니다. 마흔 아홉 가지의 기술을 배우는데 28년이 걸렸습니다. 심지어는 한식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지요.”

이는 민병구 작가가 청주에 중부무대미술연구소를 차린 까닭이기도하다. 오로지 독학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민 작가. 대학에서 그림과 공연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로 괄시 당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후배들이 좀 더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제작 전용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주말이면 중부무대미술연구소에는 연극 무대제작을 하는 전공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나무를 절단하고, 망치를 내려치는 등 굉음 속 에서도 그들은 연기를 위한 그릇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이처럼 남다른 열정으로 남들은 한 번 받기도 힘들다는 전국연극제 무대미술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무대는 액자 속 살아 있는 그림입니다. 대본을 받고 분석하고 밑그림부터 설계도까지 직접 그려낸 후 연출자와 상의하고 작업을 합니다. 색에 따라 무대를 좌우하기 때문에 조명관계도 파악해야 하죠. 배우들의 의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기, 기계, 설비 등 종합적인 안목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 무대미술이지요. 최근 제작비 한계에 인건비 상승, 자재비가 오르며 제작에 차질이 생기고, 비싼 건물 임대료 등의 문제로 문을 닫는 제작소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무대미술의 맥이 끊겨가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부엉이', 행운을 가져다주다

지금에야 인정받는 무대미술가가 됐지만, 민 작가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IMF 금융위기의 여파로 청주 사창동에 위치한 화실의 문을 닫아야만 했다. 고향인 내수읍으로 돌아가 창고 안 비닐하우스에 서 그림만 그리다 건강 악화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계속되는 악재 속 예술을 포기해야 하는 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2004년 어느 날, 연구소 작업장 환풍구에 부엉이 가족이 둥지를 틀었다. 민 작가는 매일 밤낮으로 부엉이를 관찰하며 부엉이의 다양한 표정, 행동 등을 스케치했다. 보릿고개가 존재 하던 가난했던 시절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사람들은 부엉이가 방귀를 뀌면 가을이 온다고 믿을 정도로 부엉이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 행운이 민 작가에게도 통한 것인지, 부엉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모든 것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은 지금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그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며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오니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더군요.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생, 정도(正道)를 걷다
민병구 작가는 회화와 무대미술 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릴 수 없는 그림’과 ‘새벽 2시’ ‘지친 시간들’ 등 화가와 무대미술가로 살아온 그의 삶을 담담한 문체로 녹여낸 시를 통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충북지역 작가들과 함께 송구영신 자선소품전 ‘쌀 한가마니전’을 개최해 오며 작품 판매 수익금 전액을 소외계층 돕기에 기부하는 등 선행도 이어오고 있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지면 술과 친해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지면 책과 친해지기 마련이듯, 누구에게 폐 끼치지 않고 올곧게 제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민병구 작가의 희망찬 앞날을 기대해본다.

Profile

서원대학교, 건양대학교, 한남대학교 대학원 강사 역임
<개인전 6회> 
<무대미술전 및 자료전 1회>
<단체전>
-채묵화회전 
-창조회전 
-코엑스화랑미술제 
-벡스코국제아트페어
-청주아트페어
-한국미술협회전 외 300여회 참여

<수상>
백수문학신인상
문학저널신인상
한국예총특별상
서울미술제특별상
전국연극제무대예술상 2회(2005, 2012)
대한민국연극제무대예술상 2회(2017, 2018)
2018 스포츠서울 Best innovation 기업&브랜드 수상
2018 한국스포츠경제 고객감동혁신기업 대상 수상

<무대>
2009년 청주시립무용단정기공연 <달의 노래> 극본/연출 원일·안무 박시종
2012년 박시종무용단서울무용제대상작 <나와 나타샤와 시인> 연출 홍원기·안무 박시종
2017년 전주시립극단정기공연 <꽃피는국밥> 극본 이지현·연출 홍석찬
2018년 권성덕늘푸른연극제 <로물르스 대제> 극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연출 김성노
2018년 극단새벽 <아버지없는아이> 극본 유보배·연출 한선덕


중부무대미술연구소 대표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연극협회 회원
채묵화회 회장


박예솔 기자  yesall4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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