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그대로 자연을 담다

동삼 하윤보 화백 홍현채 기자l승인2019.11.25l수정2019.11.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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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버섯을 기르는 화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피플투데이가 '하루 버섯 농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소박한 옷차림을 한 채 버섯을 바라보고 있는 동삼 하윤보 화백을 만날 수 있었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그의 본업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산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산 밑에 자리 잡은 지 4년이 됐다는 그의 작품 속에는 사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이 담겨있다. 표현할 줄 알아야 진정한 화가라고 말하는 동삼 하윤보 화백의 삶을 피플투데이가 들여다봤다.

표현하는 화가 되고파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하윤보 화백.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의 손에서 펜을 빼앗고 종이를 가져가곤 했다.

"어머니께서 나중에 힘들게 산다고 그림을 못 그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엉뚱한 곳을 나왔습니다. 공업경영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이 전공이 아니었지만 오래하다 보니 지금은 전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윤보 화백과 그림의 인연은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살 때 친구가 그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친구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심장이 뛰면서 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둘 다 그림을 오래 그려 화가가 되었는데 둘의 그림풍이 비슷합니다. 친구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깨 너머로 본 것에 제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는 모든 그림을 독학을 통해 터득했다. 발전하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밤낮 할 것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그렸습니다. 정말 밤잠 안자고 피 터지게 그려봤습니다. 발전하고 싶었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표현해야 하는데 표현이 안 되니 답답했습니다. 표현이 안 되면 화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수천 번, 수만 번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어딜 가서든 당당하게 독학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인정할 만큼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오히려 전공자 분들 중 실전에 약한 화백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3박 4일 잠 못 자고 그리는 일도 숱하게 많았습니다."

하윤보 화백이 생각하는 진정한 화백은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저는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실제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고 싶습니다. 구상이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화가들이 구상을 뛰어 넘고 비구상과 추상을 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그럴 때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구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구상을 계속하다가 고루하다고 느껴지거나 변화를 시켜보자는 생각이 들 때 기법을 바꿔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추상화가 되는 것이고 비구상이 되는 것인데 많은 화가들이 그것을 바로 건너뛰곤 합니다. 어떻게 그리지 못하면서 추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 다 구상이라고 봅니다. 머릿속에 구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화백의 작업실에는 작품들이 빼곡하게 둘러져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보다는 버린 작품들이 훨씬 더 많았었다고 한다.

"작품 같지 않고 창피해서 많은 그림들을 버렸습니다. 찢기도 하고 불에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는데 과거에는 남들이 제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할지 많이 신경이 쓰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족하지 못 하면 사정없이 버렸습니다. 그 양이 지금 여기에 있는 완성된 작품 수 보다 많았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 좋아서 사는 삶
하윤보 화백이 그림을 업으로 삼기 시작한 지는 이제 2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버섯 농원을 운영하며 그림과 병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전공과 관련된 일들을 했습니다.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생활도 했습니다. 사업을 하기도 했고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옷을 만드는 공장도 했었고 이런 저런 장사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IMF때 심한 시련을 겪어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 삶이라는 것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다 4년 전에 산 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연이 좋아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저 때문에 고생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참 미안합니다. 아내에게 시집 잘 못 왔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착한 남편입니다. 버섯농사와 그림 작업만 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 화백은 현재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대개 전업주부입니다. 대부분이 어릴 때 그림을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미련이 남은 분들입니다. 이제 자식들도 다 컸으니 살아생전 그림만큼은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다들 아주 열심히 하십니다. 가르치는 저도 아주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하윤보 화백은 해보고 싶었던 농사하면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 고목과 함께 With Old Tree

예술인의 자존심
예술인에게 자존심이 없다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하윤보 화백은 그림에 대한 애착과 화가로서의 사명감이 대단하다.

"화가가 배고픈 줄 알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은행나무 고목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이 아주 인기가 많았습니다. 얼마냐고 물어 와서 얼마라고 했더니 그냥 반값에 주면 매입하겠다고 해서 단번에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팔지 않았습니다. 싫다고 말했습니다."

하 화백은 그림은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무 그림이나 그리지 않는다.

“하루는 지인이 해바라기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해바라기가 집에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모양입니다. 노란색처럼 밝은 색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밝아진다며 그게 돈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다른 것은 아무것도 그리지 말고 딱 해바라기만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단호하게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그림은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인이 요구하는 그림은 작품이 아닌 부적인 것이지요. 거절했습니다. 저는 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싫으면 하지 않습니다.”

그림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확고한 하 화백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화가들을 상대로 돈으로 장난치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자기보다 아래로 보곤 합니다. 소위 말해 ‘그림쟁이가 배고픈데 달라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술인들은 자존심마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제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답게 살자'
"제 좌우명은 ‘답게 살자’입니다. 화가면 화가답게, 농부면 농부답게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생활 철학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면 화가답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표고버섯을 농사지을 때는 농부답게 살려고 합니다. 또 손자들이 찾아오면 할아버지답게 행동하려 노력합니다."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하윤보 화백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었다고 한다.

"물감이 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할 때가 있기도 하고 슬럼프가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이 10분 전에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가도 담배 한 대를 피고 와서 다시 자리에 앉기도 합니다. 만약 창작만 한다면 쫓기는 것 없이 하면 되지만 저는 선금을 받고 약속 된 날까지 그림을 보내줘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시간에 쫓길 때면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자연을 보고 나면 마음이 이내 곧 가라앉곤 합니다. 그림이란 것이 참 사람들 감성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저는 자연이 좋고 자연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 없이 우리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에 소중한 자연을 많이 그리는 편입니다. 자연을 그리다보면 저도 모르게 동화 돼서 계속 쳐다보게 되고 또 마음이 편해지곤 합니다. 빌딩숲을 보는 것보다는 이렇게 나무숲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시골까지 자연을 찾아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전 제목 모두 자연이란 말이 들어갔습니다. 우리와 자연, 소중한 자연, 함께하는 자연, 가까운 곳에도 자연, 이런 식입니다. 이런 생활이 참 편하고 좋습니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는 것은 아닌데 그럴 때면 놀러가기도 하고 낚시를 하러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끔씩 스트레스를 풀러 다니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 입니다."

가끔씩 현실에 부딪혀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옛날에는 화판을 매고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이젤과 물감을 바리바리 챙겨서 말입니다. 요즘은 여행을 가거나 길을 지나갈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꼭 찍습니다. 제가 순간 아름답다고 느꼈던 풍경들을 담아 작업실로 오는 것입니다. 저는 최대한 직접 본 것을 많이 그리려고 합니다. 요즘 시대가 좋아지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찾은 사진을 그릴 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제가 직접 본 것들을 그립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사진이라도 그것들을 그리면 약간 가공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제가 발품을 팔아서 직접 본 것들을 그리곤 합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나중에 제가 그린 그림을 봐도 어디였는지 까마득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발품을 팔아가며 좋은 풍경을 담으려고 합니다."

 

▲ 인생 40호 제18회세계평화미술대전 대상

500평 '산속 미술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하윤보 화백에게는 하나의 소망이 있다. 바로 지금 버섯 농원을 하고 있는 땅에 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바로 미술관을 짓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지금 이 자리에 버섯 농사를 그만두고 미술관을 짓고 싶습니다. 저는 한 500평 정도의 미술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말입니다. 미술관을 지어서 미술을 보급하고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화가라는 직업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육십이 넘어가게 되면 취직 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입니다. 죽을 때까지 제가 붓을 들 힘만 있다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동안 예술 한다고 못 먹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 보니 참 좋습니다."

평생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동삼 하윤보 화백의 얼굴에는 자연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내비쳤다. 나무숲처럼 푸르고 창창한 그의 꿈과 미래를 응원한다.


홍현채 기자  hhyeonc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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