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숙제' 대신 '축제'

황용필 <걷기 속 인문학> 저자l승인2019.09.27l수정2019.09.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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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 대학교가 있어 5년 정도 출강한 적이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등재 우리 문화유산으로 조선의 군주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것으로 성곽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대학출강 시절 그 많은 날들 가운데 한날을 꼽아 성곽을 일주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다.
늘 곁에 있으니 아무 때나 갈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참 아이러니다.
먼 곳에 사는 친척들, 눈앞에 보이는 마천루 빌딩, 매일 떠다니는 유람선, 항상 울리는 카톡 친구들... 맘속에만 담아주고 실천하지 못한 인연, 마실, 회식, 방문들이 얼마나 많은지.  
엉뚱하게 수원 화성에서 계급장, 직책, 업무 들을 모두 떼놓은 퇴직자들과의 조촐한 만남에서 이뤄졌다. 우리들은 다들 왕년에 '한마음경영'이라는 이름하에 '통통데이', '대화의 시간'식으로 행사를 주재해봤던 기억이 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회의 자료에 들어갈 목록도 아님에도 우린 모두 걷는 발걸음 숫자만큼 행복의 기분을 만끽하면 가을의 유산을 걸었다. 
스포츠 팬덤(fandom, 광팬)이라 해서 구단이 챙겨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돈, 명예, 권력이 아니어도 소중한 가치와 기억들이 있다. 

한때 국보급 농구센터로 불렸던 서장훈 선수 프로 통산 득점은 14,708점이다. 
수많은 골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골이 어떤 골이었냐고 묻자 그는 경기 종료와 동시에 판세를 뒤집는 '비저비터'보다 중학생 때 '가비지타임', 즉 큰 점수로 이기고 있을 때 경험 쌓기 일환으로 출전하여 넣었던 첫 득점을 꼽았다. 나중에는 다 이유가 있었지만 그때처럼 골을 넣고서 순수하게 기뻤던 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듯싶다.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은 공공성과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자율·책임경영체계를 확립하기 매년 경영 노력과 성과를 평가받는다. 우리 기관 역시 준정부기관이라서 주무 실장으로서 평가기간엔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느 날 모 대학의 평가위원과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료와 함께 교정의 벤치 위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 순간, 태풍의 눈처럼 고요와 평온함이 몰려들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우리들은 경쟁이나 업적, 평가들로 인해 여전히 '숙제'의 강박감에 사로잡혀있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회는 자주 있을 것으로 믿든지, 해봤자 결과가 빤하다고 생각하거나, 괜한 시간 낭비만을 한다고 생각하든지 혹은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도하는 자만이 과실을 딸 수 있고, 기네스북 같은 공인인증 말고도 자신만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적 도전의 기록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라산 등정이 그랬다. 어느 해 겨울 제주도를 찾았을 때 일행들 중 몇몇은 폭설 속에 한라산을 등정했었지만 나는 몇몇 동료들과 온기 가득한 식당에서 성찬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이듬해 봄 온 가족들과 다시 한라산을 오르려고 했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결국 영실 등정으로 쓸쓸함을 달래야 했다. 
나만의 버킷리스트였던 백록담 등정은 그 뒤로 3년 후, 그나마 다행이었다. 

 

암 투병 환자의 마지막 일기를 훔쳐본 적이 있다.
“소리가 있다 /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있는 소리 / 일상의 소리”
시간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 애쓴다!
침상에서? 작업장에서? 그 '소리'를 들으려는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문을 열어 바람의 기운을 느껴보라.  
참 알 수 없는 시절이다. 추석 때부터 29일(일)까지는 나라에서는 가을 여행 주간으로 정했고, 온 지자체는 축제로 떠들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 않고 숙제에 몰두해 있는 당신, 예년 같잖은 기력으로 운명 앞에 맞서지 마라. 바야흐로 잔치는 시작이다.

Profile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치학박사 
「걷기 속 인문학」 저자

前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


황용필 <걷기 속 인문학> 저자  yphwang@ksp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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