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교육 세습을 단절할 수 있을까

  • 입력 2019.09.16 19:01
  • 수정 2019.09.16 19:03
  • 기자명 원동인 SPR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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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법무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건으로 우리 사회는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법무장관후보자가 하고자 하는 개혁의 내용보다는 자녀의 교육 관련 내용이 주 내용이었다. 

서울대학교 법대 인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장학금, 의학전문학술지, 총장상, 의학전문대학원, 그리고 외국어고등학교, AP(advanced placement), 논문 제1 저자, 입학 사정관, 수시 전형, 예일대, 과학경시대회, 포스터 작성 등 교육 관련 수많은 단어가 난무했고 대학입시 제도 개편도 논의가 시작되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이념과 사상을 넘어 자녀 교육에 대해서 맹목적이다. 공격하는 쪽도 방어하는 쪽도 자녀 교육만큼은 최고의 학벌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교육제도는 지금도 일부 계층 사람들에게 부와 지위를 세습시켜주는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로 정착하였다. 고액 입시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한 제도, 아니 제도가 아니라 괴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세습 장치들의 혜택을 입고 있는 자들(서울대, 고려대)이 마치 피해자 인양 흥분하고, 실제 피해자들이 이들 가짜 피해자들의 위선에 박수를 보내는 모습도 나타났다. 촛불을 들어야 한다면 그건 지방대생들 일 것이다.

지난 한 세기를 거치며 만들어진 세습 장치 중에서 최고의 으뜸은 교육제도다. 학벌주의는 세습사회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심리적 기반이다.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학벌주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것을 눈치챈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한다. 현명한 판단이다.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더욱 심화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했고, 비정규직은 신분화해 사회적 낙인이 되었다.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상층 자산계급과 중하층 자산계급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또한 청년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계층 고착화의 유리바닥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1%의 최고 부자들이 99%를 지배한다’고 여겨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세계를 뒤흔든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에서 나왔던 담론이다. 슈퍼리치들이 정치, 경제계에 입김을 불어넣어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호화생활을 유지는 데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불평등의 기원을 ‘1%대 99%’에서 찾은 것이다. 1%라는 소수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99%가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리처드 기브스 선임연구원의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반론을 제시했다.
“1%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이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상위 20%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노동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공공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설명하는 미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사회를 빼 닮았다. 미국 중상류층의 행태는 한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비슷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모습은 한국에서 흔히 마주치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으로 표현되는 한국사회와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부유한 집안은 대대로 부유할 것"이라며 "세습은 유산상속보다는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중상류층은 교육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을 사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은 250만 달러를 기부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 격차를 확대시킨다. 이들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이다.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이들은 1%와 99%의 대결구도를 만들고 슈퍼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의 의식구조는 위선적이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 부동산 정책을 지지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주기 위해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등을 일삼는 한국현실과 맞아떨어진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은 공정성의 문제이며 소득분배의 문제이고 양극화의 문제다. 검찰 수사도, 진보와 보수의 목숨을 건 쟁투도, 서울대, 고려대의 촛불시위도 언론의 융단 폭격 같은 관련 기사도 이 땅의 상위 1%, 또는 상위 20%가 더 가지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싸움’이 되고 있다.

중상류층이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적자원개발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능력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대입 제도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해방 이후 18번 개편된 대입 제도가 이번에는 이런 사회 불평등 해소에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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