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종주! 살아남는 자가 강자

  • 입력 2019.09.05 14:06
  • 수정 2019.09.05 18:12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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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왈子曰 우이호자용愚而好自用 천이호자전賤而好自專 생호금지세生乎今之世 반고지도反古之道 여차자如此者 재급기신자야災及其身者也 비천자非天子 불의례不議禮 불제도不制度 불고문不考文 금천하거동궤今天下車同軌 서동문書同文 행동륜行同倫 수유기위雖有其位 구무기덕苟無其德 불감작예악언不敢作禮樂焉 수유기덕雖有其德 구무기위苟無其位 역불감작예악언亦不敢作禮樂焉 자왈子曰 오설하례吾說夏禮 기부족징야杞不足徵也 오학은례吾學殷禮 유송존언有宋存焉 오학주례吾學周禮 금용지今用之 오종주吾從周 

공자는 병법을 공부하며 생존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중용 28장에서는 문화의 생로병사를 논하고 있다. 결국 당시 널리 살아남은 주周의 문화를 따르며 행세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끝난다. 28장에서 천자는 오늘날 민주시민이나 민중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큰 무리 없이 해석된다. 문화도 언어도 사람들 속에서 탄생하고 전성기를 누리다가 사람들이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어떤 아이디어나 문화가 모방을 통하여 널리 퍼진다는 것은 그만큼 설득력과 매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널리 퍼지는 문화는 살아남는 힘이 강하다. 

필자는 최근 문화적 충돌로 인해서 매우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화가들 소모임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림의 주제에 사주팔자를 넣어서 기복적 냄새가 난다는 것과 선불을 할부로 최장 100개월까지 매달 돈을 받고 완불 후 나중에 그림을 준다는 점 때문이다. 
개개인의 사주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매우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약 30명을 보다가 중단했다. 개인마다 모자란 5행의 색깔을 더 쓰면서 주역에서 좋은 괘상을 구도로 그리는 방식인데, 나는 공중에 큰 태양이 있는 ‘화천대유’괘와 ‘지천태’괘와 ‘화지진’괘 3가지를 주로 사용한다. 필자는 대학시절부터 사주와 주역을 공부했고 축제 때 동료 학생들의 별자리를 보고 5행에 맞는 예명을 지어주는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장인어른은 사주역학 책 13권 이상을 쓴 권순욱 작가이며, 필자의 친할머니는 전국에 단골들이 있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당골)이었다. 할머니의 수첩에는 서울에서 굿을 한 고객들의 명단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을 좋아했고 사주팔자가 잘 맞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가끔 스스로 주역점을 치면서 미래를 대비하며 때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내가 사주팔자와 주역 괘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기복적 사람들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서일까? 예술가는 자기 삶과 관심사가 그림으로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데, 한 작가의 배경과 공부와 삶에는 관심이 없다가 결과만 평가하는 짓을 해야 하는가?

선불 할부로 돈을 받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대학 졸업 후 재료비가 없던 필자는 미술교습소를 1년 반 운영하다가 창작에 방해가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미술과 영어 개인지도를 해보았으나 과외준비가 쉽지 않았다. 학원 운영과 과외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내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건축노동현장에서 재료비와 생활비를 벌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하며 20년을 살았다. 
10년 전부터 책을 쓰면서 대중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를 9년 전부터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강의를 좋아하는 구독자들이 5200명이 생겼다. 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책과 유튜브 영상에 고백하기 시작했는데, 2015년부터 노동이나 알바를 그만두고 그림만 그리라며 그림을 사주거나 매달 후원금을 주는 구독자들이 생겼다. 그 후원자들에게 ‘저는 공짜를 싫어하니...’ 후원금이 3년 쌓이면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순수 후원금으로 가다가 국제전을 준비하기에는 재료비가 많이 모자라다는 고백과 함께 2018년 초에 후원자를 더 모집한다는 말을 하면서 33개월 선불할부 그림판매가 시작되었는데, 약 300명이 후원금 방식의 선불할부를 신청했다. 그 중에는 매달 300만원씩 1억을 약속한 분도 있다. 
지금까지 어김없이 매달 초에 입금이 된다. 2019년에 그림 값을 2배로 올리고 나니 매달 보내는 후원금이 100개월이 되어야 50호 1개 값이 되었다. 그래서 100개월 할부도 시작했다. 약 20명이 100개월 선불할부를 신청했다. 8년 후에 받을 그림을 기대하면서 매달 몇 만원에서 수십만 원을 이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는 후원인가 그림의 판매인가? 결과적으로 모두 7억의 후원금이 약속되었는데, 이는 분명 후원금이 먼저 들어오다가 생긴 일이다. 그런데 어떤 선배들은 내 그림판매 방식이 상업적 냄새가 나며, 화가의 격을 떨어뜨렸고, 할부가 허접하다는 표현을 했다. 아마 ‘크라우드 펀딩’의 개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저 선배들보다 그림 값이 5분의 1에서 20분의 1로 많이 저렴하다. 상업적이라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림 값이 싸면 상업적인 것일까?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소모임의 선배 화가들과의 교류를 중단하면서 ‘나심 탈레브’의 [스킨인더게임]에 나온 구절들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틀렸다는 것을 말로 완전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현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36쪽
“동료들의 평가에 자신의 운명이 크게, 또는 직접적으로 영향받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237쪽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자 우리가 유일하게 의식해야 하는 것은 미래 사람들의 평가다. 현재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다.” -238쪽

끝으로 공자선생이 아마 제자들에게 했을법한 문구를 뽑았다. 공자는 왜 “오종주吾從周”라고 외쳤을까? 다음은 그 이유일 것이다.  

“행해지는 모든 행동이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모든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서 살아남은 것이다.” -362쪽

세계적인 불황기에는 ‘크라우드 펀딩’이 가장 안전한 재료비 확보 방법이다. 필자는 매달 후원금을 보내서 통장에 1000만원 이상을 모아주시는 구독자 분들께 정성을 담은 그림으로 보답을 할 것이다. 그림만 그려도 잘 사는 화가로 살아남아서 이 화업을 길게 종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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