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색채와 정서를 서양화로 표현한다

신경미 작가

  • 입력 2019.08.28 13:33
  • 수정 2019.08.28 15:18
  • 기자명 김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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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중의 왕은 봉황새요. 꽃 중의 왕은 모란이요. 백수의 왕은 호랑이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새 가운데서 으뜸으로 인정받는 봉황은 용, 기린, 거북이와 함께 사령(四靈)이라 불린다.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상 속의 동물이자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져 숭배 받고 추앙받았으며 우리나라 문헌 속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갖고 동양적 색채와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하는 신경미 작가. 굴곡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만의 작품을 그려내고 있기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봉황 200호 162.2×260.6 ㎝
봉황 200호 162.2×260.6 ㎝

한결같은 꿈, 화가

신경미 작가는 봉황, 물고기, 여인 등 각기 다른 소재에 그만의 생각과 신념을 녹여내 팔색조 같은 작품을 그려낸다. 그 가운데서도 ‘봉황’은 신 작가를 상징하면서도 대변하는 존재이다. 
봉황은 어느 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살아있는 벌레를 해치지 않고 살아있는 풀에는 앉지도 않는다고 전해질 만큼 위엄 있는 존재지만. 봉황은 신 작가에게 단순한 전설 속의 새가 아니다. 주위 사람들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의미는 자연스럽게 깨닫고 담아낸 것이 아니라 힘겹고 고된 여정을 통해 얻었다. 
신 작가는 유년 시절 미술에 있어서는 눈에 띄는 소질을 보여줬다. 또한, ‘꽃과 여인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 화백의 옆동네에서 자라 화가라는 꿈을 꿨다.
“주위에서 ‘그림 잘그린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나중에 이 길을 택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면 저는 꾸준히 ‘화가’라고 말했어요. 지금 꿈을 이뤄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죠.”

봉황 물고기여인 100호 F 162.2×130.3
봉황 물고기여인 100호 F 162.2×130.3

꿋꿋히 걸어온 자신만의 길
국내 뿐만 아니라 독일 드레스덴, 파리 루브르 박물관, 중국 상해 등 외국에서도 개인전을 가지며 호평과 인정받는 그였지만, 처음에는 무명 시절도 겪고, 작품을 향한 날선 비판을 겪기도 했다. 조금은 상처가 됐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소회하는 신 작가. 
그렇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은 신 작가는 100호짜리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크기가 크니까 당연히 시간과 노력도 그만큼 더 든다. 이런 100호짜리 그림 10개를 서로 연관이 있게 보이게끔 작업을 한다. 즉, 1000호의 그림이라는 ‘대작’이 되는 것인데, 오일 유화 작업은 마뜨에르를 조각처럼 마른데만 3년이나 걸린다.
“100호짜리 그림 10개를 이어서 1000호짜리 그림에 저만의 색깔과 생각을 녹이는 것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까지 생각하면서 그려요. 현재는 봉황 2019마리를 10m에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워낙 크다보니까 제게도 쉽지는 않네요.”

봉황 물고기여인 100호 F 162.2×97.0
봉황 물고기여인 100호 F 162.2×97.0

동경하는 이상향
누군가에게 있어서 롤모델은 본보기이자 이상향, 동경의 대상이다. 롤모델만큼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좋은 게 없다. 신경미 작가에게도 롤모델이 있는데, 한(恨)의 화가로 일컬는 故 천경자 화백이다. 
당시 여성에 대한 깊은 편견이 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천 화백은 작품 활동을 해왔다. 특히, 그에게 작품은 삶의 이유였기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더욱 작품에 매진했다. 하지만, 25년 간 그의 작품 ‘미인도’를 놓고 위작 논란이 있는 등 삶이 평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화백은 후대의 화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흠모하는 분이죠. 천경자 선생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처음에는 계속 습작도 했어요.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색감이나 소재, 구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게 그려내고 있고요.”
천 화백과 더불어 신경미 작가의 작품 세계의 큰 영향을 끼친 이가 있다. 바로 신 작가의 어머니이다.

봉황 100호 F 162.2×130.3
봉황 100호 F 162.2×130.3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대구 팔공산 근처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신경미 작가는 서양화 기법과 동양의 정서를 함께 그림으로 담아낸다. 특히, 그의 작품은 자신의 삶을 대변해준다.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신 작가지만, 그의 어머니는 개인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란 존재는 남다르다.
“어머니가 제 개인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을 때 정말 큰 아픔이었어요. 얼마간 붓을 놓을 정도였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그림을 그릴 때 작품 속에 여인을 통해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그렇게 작품으로나마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을 기억하게 됐죠.”
한 소녀에서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자신도 어머니가 된 신 작가. 그렇기에 마음 한구석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어린이, 장애우 등을 찾아 그림을 지도하는 등 꾸준히 재능기부도 한다.

봉황 물고기여인 20호 F 72.7×60.6
봉황 물고기여인 20호 F 72.7×60.6

주목받은 자신만의 색채
신경미 작가에게 봉황과 여인은 자신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신 작가가 힘들 때에는 다소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도 있었다. 그만큼 단순한 작품이 아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정성과 노력을 쏟는다.
특히, 최근 제3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662점이 경쟁한 비구상부문에서 100호짜리 그림 ‘봉황’으로 특선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상을 받는다는 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하네요. 그래도 이번 상은 한여름의 단비처럼 행복합니다. 이 기쁨을 늘 곁에서 응원하는 가족 뿐만 아니라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봉황 300호 162.2×390.3
봉황 300호 162.2×390.3

초심 잃지 않고 최선 다하는 작가
올해 10월에 예정된 개인전 준비에 분주한 신경미 작가. 이번 개인전은 ‘봉황 날다’란 이름으로 정부대구청사에서 열리는데, 신 작가는 그를 상징하는 봉황 이외에도 모든 여인에 삶을 대변하며 현대회화적으로 데포럼화한 물고기여인 등 밝고 희망찬 소재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개인전은 작가에게 모두 중요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제게 더욱 남다른 의미에요. 그동안 100평이란 규모에 제 인생에 있어서 100호짜리 20여 점과 3m 그림 등 대작들을 처음으로 선보이거든요. 몸은 바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슴 떨리고 행복해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처럼 신경미 작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작업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붓을 잡고 있다.

Profile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졸업
대구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조형 창작학과

개인전 15회
부산국제아트페어(벡스코)
히즈아트페어 외 15회
키다리갤러리
조선일보미술관
G갤러리
중국 상해
프랑스 파리 루부르박물관 내 ART르살롱전
독일 드레스덴 특별 초대전등 국내외 전시

봉황 퍼포먼스 9회

수상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 선정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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