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톨스토이, ‘러시아의 철학자’

  • 입력 2019.08.21 17:39
  • 수정 2019.08.22 16:53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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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결심했던 톨스토이가 신앙 앞에 그의 인생을 고백하고 새로운 삶을 위한 기도를 한다.
 
슬픔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고, 잠을 깬다.
나는 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어 비를 맞으며 헤맨다.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시여, 날 도와 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 주소서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떠올리면 중학교 다니던 때 형님의 책꽂이에서 몰래 꺼내어 조금씩 읽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마다 어린 것이 어려운 책을 허락없이 꺼내어 읽는다고 혼내던 형님은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곁에 계실 때 다정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형님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참회록’ 원전이 전시되어 있다는 톨스토이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1910년 10월, 사랑하는 딸과 주치의와 함께 방랑길에 올랐던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병을 얻어 ‘아스타포역’의 역장 관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소련 정부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전시회를 만들었다. 
톨스토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곳에서 그의 친필 원고와, 육성이 녹음된 레코드판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이 세상을 떠난 톨스토이의 명복을 빌었다. 그가 찍은 영화필름, 편지 등 수많은 유품들이 톨스토이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소련의 지도자였던 레닌이 직접 전시회를 참관하고 톨스토이의 명복을 빌었으며, 그가 남긴 귀중한 자료들을 영구 보존하기 위하여 박물관을 만들도록 명령하였다. 톨스토이 박물관은 1939년에 개관 되었으며, 그곳에는 톨스토이의 탄생에서부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남긴 흔적들이 초상화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톨스토이가 살던 집이 있다. 그가 1901년까지 ‘부활’을 집필하던 집에는 16개의 방이 있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펜 등을 비롯, 4000점 정도의 유품과 유작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는 1828년 9월 9일에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야스나아 풀랴에서 태어났다.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는 불행으로 친척집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다녔으나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방식에 실망을 했고,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였다. 1851년 그가 사관후보생으로 군 복무를 시작하면서 익명으로 발표한 처녀작 ‘유년 시대’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유년 시대’에서 자신의 즐겁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사랑했던 어머니의 손길과 음성, 어머니의 매력적인 미소와 서글픈 눈시울, 깨끗한 신앙심,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던 어린 시절의 사랑 등을 풍부한 감성과 서정적 필치로 그려냈다. 

 톨스토이는 1855년 군에서 제대한 후 1857년에는 서유럽의 문명을 찾아 여행을 하였고, 1862년에는 결혼을 하였다. 그 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소재로 러시아의 사회를 그린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였고, 이어 ‘안나까레니나’도 완성하였다.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을 통해 오만하고 방자한 정치권의 기득권층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는 농민들의 실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묘사하여 출간된 서적들은 정부로부터 출판 금지의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고, 민중들에게 무관심한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여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이고 시인이며 개혁가이고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인생무상과 정신적 동요를 느끼면서 과학, 철학, 예술에서 그 해답을 얻지 못하고, 모든 것을 종교에 의탁하게 되었다.
그는 종교에 심취하여 ‘교의신학비판’ ‘요약복음서’ ‘참회록’ ‘교회와 국가’ ‘나의 신앙’ 등을 발표하면서 그의 사상을 체계화할 수 있었고, 톨스토이주의를 완성하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최대 걸작으로는 그가 70대에 와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체험한 생활, 신앙, 예술, 철학 등 그의 모든 사상을 집대성한 비판과 예언을 담은 ‘부활’을 들 수 있다. 

‘부활’은 재판장에 배심원으로 참석했던 공작 네흘류도프가 살인 절도 혐의로 재판장에 서있는 카추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공작이 젊은 시절, 단순히 정욕의 대상으로 만났던 카추샤가 타락한 모습으로 법정에 서있는 현장을 보고 그녀가 타락한 원인이 본인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공작은 카추샤를 위한 감형 운동에 나서면서 무고한 죄인들을 발견하게 되고, 냉혹하면서도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귀족들의 무절제하고 경박한 부패를 알게 된다. 그는 사회와 현대문명의 모순을 비판하고, 재판 과정과 감옥 생활에 대한 사법 제도의 부정적 세계를 고발한다. 공작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카추샤를 따라 동행을 자청하면서 시베리아의 황막한 대지 위에서 끝없는 용서를 빈다. 그가 비는 용서를 통해 그의 정신과 영혼의 세계는 새로운 부활을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신앙의 힘으로 삶 속에서 괴로워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모든 죄악을 참회하고, 새로운 부활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신앙에 의지했던 용기와 지혜를 우리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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