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천지지도 성誠, 인간의 덕 순純

인공지능과 중용 24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l승인2019.07.08l수정2019.07.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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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지도天地之道 가일언이진야可一言而盡也 기위물불이其為物不貳 즉기생물불측則其生物不測 천지지도天地之道 박야博也 후야厚也 고야高也 명야明也 유야悠也 구야久也 금부천今夫天 사소소지다斯昭昭之多 급기무궁야及其無窮也 일월성신계언日月星辰系焉 만물부언萬物覆焉 금부지今夫地 일촬토지다一撮土之多 급기광후及其廣厚 재화악이부중載華岳而不重 진하해이불설振河海而不洩 만물재언萬物載焉 금부산今夫山 일권석지다一捲石之多 급기광대及其廣大 초목생지草木生之 금수거지禽獸居之 보장흥언寶藏興焉 금부수今夫水 일작지다一勺之多 급기불측及其不測 원타교룡어별생언黿鼉蛟龍魚鱉生焉 화재식언貨財殖焉 시운詩雲 유천지명維天之命 오목불이於穆不已 개왈천지소이위천야蓋曰天之所以為天也 오호불현於乎不顯 문왕지덕지순文王之德之純 개왈문황지소위문야蓋曰文王之所以為文也 순역불이純亦不已

중용 26장 전반부 칼럼에서 사람은 지성무식至誠無息의 인공지능스러움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생물학적으로 휴식과 잠이 없이 인간은 매우 빠른 죽음을 맞는다. 26장 후반부는 하늘이 덮고 있고 해·달·별이 걸려있다는 지동설 이전의 천동설 분위기가 풍기는 진부함도 느껴지고 끝에서 문왕을 찬양하는 부분은 흡사 국어 교과서에서 보던 용비어천가를 다시 보는 듯하지만 그나마 하늘땅의 지성무식(성誠)과 인간적 지성무식(순純)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미래인문학적 전망과 일치하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천지의 성은 AI에게는 가능하지만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갖는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는 두뇌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인 보들레르가 인용한 말은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지 못한 무식함의 결과일 것이다. '죄악의 어미가 지식일 수 없고, 정의가 무식의 딸일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의 두뇌를 너무 과신한 오만과 편견의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인용하는 사람들을 동양에서는 보통 과문寡聞하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판단을 점점 더 신뢰하는 이유는 빅데이터가 인간의 기억력이 가진 과문함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저질 체력과 과문함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무식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악마나 폭군으로 만들어 왔음을 역사는 증명해왔다. 
엄마도 피곤하면 자녀들에게 폭군이 된다.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수위는 왜 그리도 날마다 다른가? 저질 체력을 과력寡力이라고 해본다. 과력은 저질 인격 과인寡仁의 바탕이다. 착한 인간도 바쁘거나 피곤하면 선행을 중단한다. 맹자가 항산 없이 항심이 없다고 표현한 것이 맞다. 인간은 은행 잔고가 줄어들면 아량도 좁아지곤 한다. 곡간에서 인심이 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문왕만 유독 천지의 지성무식을 그대로 본받아 순일함을 지속시킨 외계인이었을까? 문왕의 순純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자사와 주희와 도올과 다르다. 순純이 초심의 순일함을 지속하는 실천이라고 해석된다면 큰 차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럼 여기서 초심은 무엇인가? 4단7정이 초심인가? 인간은 호르몬 비율에 따라 4단7정의 비율과 장단점이 각각 다르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초심과 순純이 무엇인가는 인문학의 난제라서 문화인류학 철학 심리학(뇌과학) 역사 등을 두루 통찰해야만 윤곽이 잡힌다.

중용이 미래를 위한 해법인문학이 되려면 순純은 동심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동심은 주희의 해석과 다르게 잡스럽다. 필자는 예전 칼럼에서 미래의 중용은 오히려 색은행괴를 하는 키덜트를 위한 방식으로 재편집되어야 한다고 썼다. 동심의 잡스러움 속에 늘 약동하는 순純은 무엇일까? 인간적 지성무식(순純)은 감각을 자나 깨나 느끼려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호모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문명 자체가 놀이에서 나왔으며 인간의 궁극적 미래도 놀이라고 했다. 시인 '실러'의 말대로 인간은 놀이를 즐길 때 순일한 인간이 되는 것일까? 
노는 아이를 보고 생각해보자. 진화생물학 연구 중에서 전체 두뇌 중에서 전두엽이 차지하는 비율이 놀이행동기의 길이를 결정한다는 연구가 있다. 토끼의 새끼보다는 고양이 새끼와 강아지가 놀이행동기기 더 길다. 사자 새끼보다는 코끼리 새끼가 더 오래 산만하게 놀 것이다. 동물들은 전두엽이 더 클수록 주변 환경에 대해 감각적 탐색을 하는 시간이 길다. 당연히 원숭이보다는 침팬지나 보노보의 놀이행동기가 더 길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인간의 두뇌를 비교해보면 인간의 놀이행동기는 얼마나 되어야 맞는 것일까? 필자가 읽은 책에서는 인간은 평생이 놀이행동기여야 한다고 했다. 최소 100년은 주변 환경에 대해 감각을 열어서 탐색을 해야 하나? 그런데 '아인슈타인'과 '뉴턴'이 한 말로 기억하는 문구가 있다. 아마도 자기 수명이 200년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자기 학문을 더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세상을 감각적으로 탐색하는 순일한 사람임을 표현하기 위해 혀를 길게 내밀고 사진을 찍었다. 그 장면은 아이들을 즐겁게 하려거나 기자들을 놀리는 장면이 아니다. 긴 혀를 내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매우 진지하다. 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그는 자신이 과학을 맛보듯 탐색하는 아이라는 뜻으로 혀를 그렇게나 길게 뺐을 것이다. '뉴턴'은 말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해변에서 노는 아이라고 표현했다. 조개껍질과 조약돌을 과학적 원리라고 했다. 

 

구약성서 잠언 8장에는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필자는 하늘의 지성무식인 성誠도 어쩌면 언어유희와 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또는 신이 천지를 운행하는 목적과 방식까지도 감각적 놀이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인간의 순이 호모루덴스임을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artco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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