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교교육은 편안한가요?

  • 입력 2019.07.05 17:49
  • 기자명 마상욱 청소년불씨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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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북의 상산고등학교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 평가에 탈락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사고,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 특수목적 고등학교(이하 '특목고')의 폐지를 주장하시는 분들과 반대하시는 분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대선공약이고 진보교육감들의 공통된 공약이었던 자사고 등의 일반고등학교(이하 '일반고') 전환이 갈등을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래학자인 엘빈토플러는 가장 늦게 변화하는 조직으로 교육시스템을 꼽았습니다.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교육이 사회 변화와 속도 차이로 멀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논의를 좁혀서 자사고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로 주장이 요약이 됩니다. 첫째, 고등학교의 서열화로 중학생들도 사교육과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수월성교육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들이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좋은 대학을 진학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는 일반고보다 등록금을 많이 냄으로써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귀족학교'가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고 당선은 이를 지지하는 반증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전북의 상산고등학교와 경기도 안산의 동산고등학교의 자사고 폐지가 갈등의 골을 깊이 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반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자사고 폐지에 대해 첫 번째 반론은 고교서열화와 사교육 시장의 과열이 자사고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사고는 2004년 김대중 정부 당시 다양성, 특수성, 수월성교육 등을 위해 국가의 IMF위기 시절 사학의 힘을 빌려 진행한 정책입니다. 사학은 교육 인프라에 투자를 하고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부여받았습니다. 8년간의 시범기간을 걸쳐 정식 제도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그런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을 다시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합니다. 자사고는 여러 가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층의 문제가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결코 사교육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없습니다. 자사고가 우리 교육문제의 독립변수라고 주장을 하려면 보다 많은 데이터를 가져와 설명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반론은 42개의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었을 때 현재의 약 1600여개의 일반고등학교가 지금보다 훨씬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자사고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일반고의 교육이 무너졌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사고 42개가 일반고가 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이 부분 역시 문제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월성교육이 사라지고, 교육의 다양성이 무너져 버릴 위험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일반고를 살릴 궁리를 해야지 특수성과 수월성 교육을 하는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일반 부모들에게 자극적인 구호인 ‘귀족학교’라는 것은 딱지입니다. 교육당국의 재정 지원이 없는 자사고 또는 외고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부가 일반고와 같은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교육을 위해서 학비를 내고 있는 학교를 ‘귀족학교’라고 부르고 그 학생들과 부모를 특권계층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과잉 일반화라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논리로 본다면 돈을 더 많이 내고 국립대학이 아닌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귀족대학에 다니는 특권층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네 번째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 수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 약 40%의 지지를 받았다 할지라도 공약은 사안별로 다른 문제이고, 동의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변화를 위해서 서울시교육청에서 2018년에 자사고 폐지가 헌법재판소에서 재동이 걸렸고, 그 주요 내용은 행정을 그렇게 쉽게 고치면 안 된다는 것이 취지였습니다. 헌재의 판단 이후에 진보교육감들은 계속해서 자사고, 외고 등을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행정적 불이익을 주었고 이번 전라북도교육청의 경우는 기준점을 80점으로 높이는 무리수를 두어 상산고를 탈락시켰습니다. 정치적 판단이 교육에 들어올 때 어떤 오류가 있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자사고 출신이 일류 대학을 점거했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뽑는 비율이 80%가 넘어가는 시대입니다. 즉, 학교에서의 등급이 좋아야 합격한다는 말입니다. 지방에 있는 이름 없는 고등학교 학생이 상위권대학을 그나마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대학에서 예전처럼 수능으로만 학생을 뽑는다면 이것은 기회의 균등이 아니라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입니다. 두 아이는 대학생입니다. 큰 아이는 홈스쿨을 통해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통해서 서울의 모 대학을 입학했습니다. 둘째는 중학교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는 일반고에서 졸업을 했고 모 과학기술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아이들이 자사고나 외고에 입학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통해서 평준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정치적인 관점으로 시작한 학교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교육현장의 갈등을 깊어지게 합니다. 과연 자사고, 특목고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만든 주범일까요? 대학의 학생선발방식이나 사회의 승자독식이라는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합니다. 최근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통해서 사교육시장이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정치가 학교에 들어와 혼탁함이 깊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학교 안에서도 구성원들의 생각에 따라 의견이 다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보편화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이야기도 꽤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말로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싸움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 주도의 공교육과 민간 주도의 사학이 조화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학교교육으로 미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를 획일화하고,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국가만능주의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탈정치화된 사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어떤 것이 유익한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21세기는 사회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경쟁에 지친 이들이 성공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고 이에 따라 행복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단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육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합니다. 학교 개혁에 있어서 논의의 중점은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미래세대의 행복한 삶의 관점에서 다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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