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유 아동심리] 양육의 시작과 끝은 '관계'에 달려있다

  • 입력 2019.06.13 21:31
  • 수정 2019.06.13 21:32
  • 기자명 유중근 한국애착연구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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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 처음 품에 안아 보았던 때를 떠올려 보라. 그때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어머! 얘가 내 아이구나. 내가 아이를 드디어 낳았네.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울까? 앞으로 최선을 다해야지!’ 안타깝게도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육아라는 현실에서는 말보다 울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아기에게 어떻게 반응해 주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 최선을 다해서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해 주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엄마는 출산 후 아기와 처음 관계를 시작하기에 내 아이의 기질이 어떤지, 아이가 젖을 많이 먹는지, 잠투정이 심한지 아닌지를 경험하면서 알아간다. 아기와의 첫 경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나의 필요를 제때에 잘 챙겨줄지, 나의 기질을 잘 받아낼 만한지, 내가 표현할 때 잘 알아들을지를 경험하면서 알아간다. 그래서 두 입장 모두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엄마는 여러 관계 중 하나의 경험이고 아기는 세상에서 겪는 ‘첫’ 관계 경험이라는 차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인은 살아온 만큼의 ‘경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험이란 관계를 통해 얻은 수확물과 같아서 성인은 다양한 과거 경험으로 현재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나 환경을 비교, 분석, 예측하여 현재 관계에서 대응한다. 사실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쁠 수도 있다. 과거 경험의 기억으로 현재 관계에서 쉽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로운 면이지만, 만약 과거 경험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멘붕을 경험하기에 나쁠 수도 있다. 아마도 육아의 경험은 가장 대표적으로 과거 기억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아기의 경우 엄마와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 과거의 기억이라고 해야 뱃속에서의 기억이 전부이고 유전자에 의해 본능이 가르쳐 주는 반사행동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오히려 아기는 엄마와의 관계가 첫 관계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에서 사용할 기억을 잠재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기가 성장하더라도 엄마와의 초기 관계에 대한 기억을 명시적으로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때의 경험들은 몸이 상황에 맞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잠재적 기억으로 고스란히 남아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개인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행동과 태도는 엄마와의 첫 관계에서 시작하여 영향을 받는다. 엄마의 모태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엄마의 모태에서부터 이미 첫 관계가 시작되는데 그 초기의 관계는 앞으로의 관계의 모델이 되는 셈이다.

아기는 엄마와의 관계를 경험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때 필요한 자신만의 뇌를 만들어 간다.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뇌가 경험을 자양분으로 활용하여 발달할 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 뇌의 지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경험은 뇌의 구조를 수정하여 현실에 적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는데 이는 현대 뇌 과학에서 밝혀놓은 중요한 사실이다. 더욱이 인간의 뇌는 생후 2년이면 성인의 뇌의 약 76∼82%까지 발달하는 독특한 발달곡선을 가진다. 단 2년 동안 엄마와의 관계에서 얻은 모든 것을 기반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아기의 입장에서 엄마와의 관계의 질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관계의 질에 따라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행동이 각각 달라진다. 지금 자녀가 영아기에 있든 아동기에 있든 심지어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있든 그들 자신만의 자기 방식의 시발점은 엄마(주 양육자)와의 첫 관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뇌는 관계의 질을 통해 구조를 수정하고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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