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진정한 나'와 소통하라, 그리고 자신을 위한 최선으로 살아가라

  • 입력 2019.05.30 14:35
  • 수정 2019.05.30 14:36
  • 기자명 조신애 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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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참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될 수 있으면 화를 참고 견디도록 훈련받는다. 하지만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채 참기만 한 감정은 꼭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아서 어떻게든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내고야 만다. 인간의 무의식 영역을 중요시했던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살아서 묻히면 더 괴상한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짐짓 참을만했다고 장담했던 감정들은 사실 나중에 더 괴팍한 모습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그동안 억눌렀던 것, 참아왔던 것, 외면했던 것들과의 진솔한 대면이 필요하다. 상처 입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보살피는 일은 자신도 모르게 깨지고 파편화되어 있던 영혼의 조각들을 찾는 숭고한 일이다.

한 번은 어느 식사자리에서 상대의 감정적인 태도에 모멸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자리의 특성상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우기가 어려워 상대가 더 어긋나지 않도록 비위만 맞추다가 돌아왔다. 내 감정은 억누르고 타인의 기분에만 신경 썼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뒷북치듯 한참 지나서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짜증 냈고, 작은 일에 거칠고 포악해졌다.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가득 차서 괴로웠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안 괜찮았던' 것이다. 예의 없게 느껴졌던 상대의 태도를 참기만 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경솔한 과신이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산 채로 묻혔다가 더 괴상한 괴물로 돌아온 것이다. 억눌렀던 수치와 불쾌감에 대한 복수를 애먼 데 쏟아내며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까지 헝클어뜨렸다. 

 

“인간은 입을 다물고 있다 해도 손가락 끝으로 수다를 떤다. 
모든 구멍을 통하여 비밀이 드러난다.” 
- 프로이트 -

 

꽁꽁 묶어 두었던 상처 입은 영혼은 그 방어막을 비집고 나와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다. '왜 그렇게 밖에 대처하지 못했지? 바보같이 왜 상대의 무례함에 그렇게 쩔쩔맨 거지?' 뒤늦게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불쾌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적이 어디 살면서 한두 번뿐이었을까?

'마음의 화'는 결국 스스로를 다시 힘들게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애초에 '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 걸까? 얼토당토않게 애먼 데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그것은 감정과 나를 분리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다. 소위 '검은 감정'을 저만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한 템포 쉬어갈 여유를 획득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곤란함에 빠진 당신을 구출하고, 부적절한 갈등에 휩싸인 자신과 진솔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 볼 수 있다. 마음은 그동안 우리의 기분을 교묘히 좌지우지 해왔다. '그럴 기분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삶을 스톱하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글을 함께 따라가 봐도 좋을 것 같다. 

 

'검은 감정'에 휩싸인 우리의 마음은 마치 방금 막 큰 돌덩이가 떨어져 요란해진 호수와 같다. 평화롭던 호수는 갑자기 물살이 소란스럽다. 평화로움을 방해받은 내면의 호수는 달래 주어야 한다. 이럴 때 좋은 것은 가만히 앉아 조용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한바탕 소용돌이로 혼탁해진 호수가 잠잠해지도록 말이다. 내면의 호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진정한 나'와 소통하는 순간이다.

내면의 호수에 무엇이 있는가? 감정선들이 이리저리 얽혀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이란 것이 처참하게 우리를 농락 중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가슴이 서늘해지고 눈빛은 표독스럽다. 알 수 없는 공격성이 회오리가 되어 솟아오른다. 그 소용돌이가 '진정한 나'를 집어삼킨다. 그들이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주도권을 잡고 큰소리를 낸다. 왜인지 설명할 수 없는 분노는 굳이 이유까지는 알 필요 없다고 속삭인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라고. 무너지라고. 그리고 패배자처럼 동굴 속에 웅크리라고 한다. 그런 초라한 나를 발견했다는 것은 소중한 '앎'이다. 그 '알아차림'으로 우리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잠잠히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운데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게 된다.

"잃은 것 애도하기"
분명 잃은 것이 있을 것이다. 삶에서 애도는 특별한 사건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일들에도 우리는 이별을 겪는다. 키우던 애완동물과 이별했을 때, 아끼던 옷을 잃어버렸을 때, 관계가 어그러졌을 때, 건강을 잃었을 때, 연인에게 배신당했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등등 수도 없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는다. 누군가는 자존심을, 누군가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누군가는 의지를, 누군가는 사랑을 잃어버렸다. 당신은 무엇을 잃었는가?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라! 이 작업은 방해받아 엉망이 된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도울 것이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우아하고 멋진 스텝으로 무대를 걷고 싶지만 넘어질 수 있다. 때때로 진실은 '검은 포장지로 싼 상자' 속에 담겨서 온다. 보기에 흉측하고 거부감을 주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주 어린 시절 마당에 펌프가 있었다. 마중물을 넣고 펌프질하는 일이 참 재밌었다. 처음에 신이 나서 마중물을 넣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흙탕물만 나오는 것을 보고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맑은 물이 나올 줄 알고 기다리다 실망감에 휩싸였었다. 하지만 몇 번 더 애를 썼더니 깨끗한 물이 나왔다. 그때 질렀던 탄성은 아직도 그 시골집 작은 앞마당에 메아리치는 듯하다. 

 

흙탕물이 나와야 깨끗해진다. 괜찮다. 흙탕물도. 그 흙탕물의 공포와 친해질 때 이내 드러날 '진정한 자신'이 그대에게 윙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이 아닐까? 최고의 삶을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선의 삶을 살아 보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는 최고가 될 것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눈먼 장교 역할을 했던 알파치노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두려움을 갖고 있는 한 여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그러니 괜찮다. 용기 있게 진정한 나와 만나라. 그리고 나를 위한 최선을 살아라.

Profile 
연세대 상담코칭학 석사
(사)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KPC(Korea Professional Coach)
에니어그램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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