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운'을 취할 자, '공'을 들여라!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l승인2019.05.08l수정2019.05.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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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남서부에 서천군이 있다. 서해안의 아름다운 일출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마랑포구 동백정을 위시로 인근에 자리한 '성경전래지 기념관', 순천만에 견줘도 빠지지 않은 신성리 갈대밭, 맛과 향에 취해 일어날 줄 모른다 하여 '앉은뱅이 술'로 불리는 한산소곡주, 금강하구언 둑방의 가창오리 군무, 국립생태원 등 볼거리, 먹거리가 제법 풍부한 고장이다.

그곳에 연수원이 자리하여 아픈 아내 대신 큰 아들과 단둘이 다녀왔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사찰의 총무스님이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힐링 목적의 템플스테이에 싱글을 제외하고 가장 흔한 방문객이 부부, 모녀, 친구, 자매지간이지만 불륜인 듯한 관계보다 더 희귀한 조합이 둘 있으니 형제간과 부자지간이라고 한다. ‘부자간?’,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내리사랑의 직계이지만 왠지 서먹서먹했을 부자간의 여행을 뿌듯하게 마치고 이튿날 신문을 보는데 한눈에 번쩍 들어온 기사, 
"세월도 비껴가 낡고 바랜, 그 느림의 풍경", 어제 다녀온 서천의 '시간이 멈춘 마을'을 소개한 여행담이었다. 순간 뭔가로 한방을 맞은 충격, 
"아니 몇 차례 다녀온 곳인데 난 뭘 봤지?"

어느 해 봄날, 전남 화순에서 모임이 있어 시간도 남아 인근의 고즈넉한 저수지를 찾았다. ‘세량지(細良池)’라는 입구표시에 산 벚꽃과 신록이 제법 청아한 호수였다. 그런데 주말 한 신문에 가득 실린 세량지의 헤드라인이 압권이었다.「CNN이 선정한‘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이른 아침, 잔잔한 호수의 몽환적 풍경은 사진작가들에게는 로망이라는 것이었다.

한 번은 직원들과 단체로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레미제라블>을 감상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 장발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영화라는 사전지식만을 갖고 극장에 들어선 우린 지루한 나머지 중간에 줄고, 딴짓하면서 이벤트를 끝냈다. 그런데 며칠 후 언론에는 영화에 대한 찬사가 빗발쳤다. 
"영혼을 울리는 감동",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의 대서사시" 등등.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이란 속담이 있다.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고 건성건성 대충 일을 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사는 대는 생각하게 된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청계천 근처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니 어느새 하천은 안마당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도시전문가로 유명한 캐나다의 찰스 몽고메리가 2015년 가을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평소 청계천이 자신의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했다. 동네 하천이 이방인에겐 "공간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는 도시혁신의 모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의 사소한 장소와 사람들이 어떻게 보물로 되는가?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는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원작을 영화화한 <일 포스티노>에는 노벨문학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 간의 시작(詩作) 대화가 나온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나요?”라고 묻자 대시인은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하라고 한다. 늘 걷던 해변 길에서 비로소 우편배달부 청년은 metaphor, 은유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그냥 지나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버킷리스트가 되고, 그저 지나친 오늘이 어제 죽은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 되기도 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일의 성패는 노력보다 운에 더 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운'이란 기적이 아니다. 일에 응당 시간과 품으로‘공’을 들이면
행운이 되는 것이다. '운'자를 뒤집으면 '공'이 되듯이.
자세히 보아야 정이 들고, 마음을 들여야 보물을 얻는다. 
공적(功績) 않으면 공허(空虛)다!

 

Profile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치학박사 
「걷기 속 인문학」저자

前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  yphwang@ksp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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