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예방 프로젝트] 더 이상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앞으로 포대기를 두를 그녀들에게 한 마디 3

  • 입력 2019.05.07 16:57
  • 수정 2019.05.07 17:04
  • 기자명 김여나 여나(여성나눔)커리어 코칭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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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시간과 결혼 후 시간은 다르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뒤 시간은 더더욱 달라질 것이다. 결혼하기 전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피곤하면 자면 되는 것이고, 나의 교양을 위해서 책을 읽거나,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자기계발을 위해서 무언가 강의를 들어도 된다. 하지만 결혼 후 시간은 다르다. 우선 그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플러스 가사까지 더해지니 집에 오자마자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외출하는 것을 예로 들면 결혼 전에는 나만 가꾸면 되었다. 내 모습을 가장 예쁘고 좋게 보이기 위해서 나만 잘 꾸미면 됐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외출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빨래 중이었다면 널어놓는 작업까지 끝내놔야 할 것이며, 쌓여있는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출하기 전의 나의 일이다. 

아이를 낳고는 집안일도 두 번째가 된다. 외출을 할 때, 아이 용품을 챙기다가 약속시간에 늘 늦고 말았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기본적으로 10분 정도 일찍 간다. 헐레벌떡 뛰어다는 것도 싫고, 약속 자체에 늦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항상 일찍 나간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될 때,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매번 발생한다. 전에는 한 시간 전에 외출 준비를 하고 혼자서 나갔다면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는 최소 두 시간 전에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것을 예비하지 못해서 매번 약속시간에 늦게 돼서 결혼 안 한 지인에게 "너 변했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말 변명 같지만, '아이 때문에...'라는 핑계는 구차한 변병같이 들린다. 하지만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예측을 하고 빨리 나갔어도 늦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챙겨야 할 준비물이 많다. 그렇다 보니 아이와 함께 외출을 계획했다가도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면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내가 겪어보지 않는 상태에서 이해하기는 힘든 일인 것 같다.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이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긴 하지만 결혼 후 아이를 낳고는 정말로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확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아이를 낳고 육아를 처음 하면서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그냥 엄마들이 게으른 줄 알았다. 그 조그만 아이 하나 돌보면서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시간관리?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지만,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정신없이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결혼 전의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나만 꾸미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는 나의 외모를 가꾸는데 투자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내면을 가꾸는데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집안일도 너무 잘 할 필요가 없다. 정말 기본만 하고 살면 된다. 처음에 나도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늘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해 놔야 외출하고 들어와서 기분 좋게 쉴 수가 있었는데, 이런 것은 예전에 포기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끗한 집은 이미 포기하는 것이 좋다. 내가 청소하는 것보다 아이가 어지르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청소하는데 30분이 걸렸는데, 그전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차마 몇 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육아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발로 레고 블록을 밟았을 때의 그 짜증도 점점 익숙하게 된다. 아이의 놀이방에 들어가면서 발로 장난감들을 쓱쓱 밀고 다니는 나를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한 집을 원했는데, 점점 늘어나는 아이의 짐으로 인해 집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다. 온 집안이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스티커 제거하는 방법과 자국 떼는 방법 정도는 통달해 놔야 한다. 

이렇게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나니 내 생활을 할 수 있다. 분명 집 안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공간과 내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인 중에 아이가 셋인 엄마가 있다. 그녀는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아이 셋을 돌본다. 주말부부이면서, 맏딸의 역할과 큰며느리의 역할도 하면서 자기계발도 충실하게 하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잘 할 수 있을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돼요!" 역시 아이 셋을 키운 엄마답게 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그녀 역시 아이들에게 좋은 것들만 먹이고, 텔레비전은 안 되는 등 많은 것들을 제약시켜놨지만, 점점 그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개발을 위해 모임에 나오려면 아이를 동생에게 잠시 맡겨야 하는데, 그때 남동생이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를 입에 가득 물려줘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렇게 웃으면서 그녀는 모임을 마치자마자 다시 부리나케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늘 헐레벌떡하는 그녀이지만, 늘 긍정적이고, 주변인들에게 늘 웃음을 안겨주는 그녀이다. 우리는 엄마가 되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녀 또한 가장 잘 한일이 세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했다. "결혼 꼭 해야 해요?"라는 질문에 "굳이..."라는 대답을 했던 것도 그녀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보기에 자신의 삶을 가장 멋지게 잘 만들어가고 있는 엄마 중 하나이다. 이미 그녀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하지만, 모든 일 가운데 균형을 잡으며 잘 버티고 있는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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