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례 러시아기행] 익숙한 맛과 여행지 호텔식

고려인식당, 북한식당, 호텔식

  • 입력 2019.05.07 16:25
  • 수정 2019.05.07 16:59
  • 기자명 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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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외에 나간 사람이라면 현지에서 먹은 첫날 음식은 누가 뭐래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도착 다음날 먹은 아침식사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 호텔 조식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면이 있을 거다. 다만 음식의 종류의 다양성과 신선도와 분위기와 응대의 세련미 정도가 차이를 이룰 거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일행이 아스토리아호텔에서 먹은 조식은 수준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선식품이 많았고, 메뉴도 다양해서 딱히 흠잡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호텔식을 비롯한 여러 끼니의 식사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행환경과 건강
여행을 마치고 이르츠크 공항에 당도했을 때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몸엔 기운이 없었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추스르느라 애를 먹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 일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오를 때부터 시작됐다. 열차구간에서 보낸 시간이 총 70시간 41분이었는데, 화장실 행이 잦게 될까 봐 물을 삼갔고, 음식 또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생리현상이 부담돼서다. 심리적인 부담이 있다 보니 식욕도 따라주질 않았다. 이런 현상이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열차라는 제한된 구조 속에서 행동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몸은 그렇다 치고 '내 몸은 내 것이니 주인인 내가 괜찮다'라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인가. 그런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인체란 생각과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 인간 역시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면 사살 수 없는 대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메마른 땅에는 단비가 필요하듯이 몸에는 생명수가 필요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해, 물을 통해서 해갈을, 음식을 통해서 에너지 공급을 받는 것 외엔 "뭣이 중헌디?"라고 반문해본들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는 자연체였던 것이다. 

70시간 41분을 보내는 동안 여섯 번의 보급식을 먹었다. 공항로비에서 받은 인스턴트식품 말이다. 식당 칸에서 점심으로 먹은 두 번의 열차식까지 합해서 여덟 끼를 때웠는데 러시아에서의 음식에 관한 기억은 한식 말고는 그저 그런 보급식과 '고깃덩어리'를 썰다가 만 기억으로 가득 찬데 더해서 현지식으로 나뉜다.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생각이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잊혀 질 수도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말이다. '식사에 대한 기억'을 '불만의 언어'로 채워 본들 개인의 식성이나 기호 탓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에게는 친숙하면서도 양질의 일상 식일 수 있는데, 여행객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식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현실이다. 수십 년간의 식습관이 단 며칠 만에 바뀌거나 적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아무튼 고기를 앞에 놓고 "먹어 말아?"하고 고민하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첫날 저녁은 파티 콘셉트로
기억을 되돌려 첫날 먹은 저녁 얘기로 돌아가 본다. 우리 시베리아바이칼 탐사 팀은 첫날 저녁을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을 이용했다. 우윤근 러시아 특임대사와 이석배 총영사가 찾아준 만찬이었다. 우 대사는 다음날 루스키섬 극동대학에서 있을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 차 하루 전 저녁에 도착했다. 모스크바에서 8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온 것이다. 

맨 먼저 나온 음식은 빵과 샐러드였다. 샐러드는 치즈,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데친 잎채소가 섞여있었다. 이어 나온 음식은 수프, 러시아수프는 대게 빨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토마토가 섞인 때문인 것 같았다. 러시아에서 먹은 수프에는 돼지고기 아니면 닭고기가 들어갔다. 샐러드와 빵을 수프와 같이 먹는 순서로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를 먹게 되는데 고급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토마토와 단호박 혹은 가지 같은 여러 가지 야채가 딸려 나오는 점이 다른 것 같았다. 여기선 후식도 빨간색이었다. 참고로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는 빨강인 듯싶었다. 냅킨도 빨강, 음료수도 빨강, 실내장식도 빨강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은 '아스토리아호텔' 식(食)이었다. 식탁에는 되직한 치즈수프와 크림수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빵에 과일과 단맛 나는 후식 그리고 주스와 커피와 홍차까지 골고루 차려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의 홍차 사랑은 유난한 것 같았다. 홍차는 우선 색이 참 곱다. 호텔에서의 조식은 한마디로 취향에 따라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풍성하게 짜여 있었다. "상당히 좋은데!" 조찬에서의 특이점은 무척 이른 아침 6시경에 먹은 점이다. 일정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호텔 측에 특별히 이른 아침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일행에게 부과된 미션은 '모두 아침 일찍 먹기'였다.

점심은 고려인 식당에서
점심 장소는 고려인식당에서였다. 식당 규모가 상당히 컸다. 오전엔 연해주 고려인들의 중요한 유적지인 이상설 유허지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소개될 때 출발역이었던 라즈들노에 역과 고려인문화센터 또 최재형 생가를 둘러보았다. 최재형 선생 생가 복원추진회장이 함께 했다. 식당은 꽤나 넓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건물들은 대게 공간이 넉넉한 점이었다. 로드매장이든 음식점이든 그랬다.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중앙 홀 양옆으로 칸막이가 된 작은 룸이 즐비했고, 별도로 큰 룸이 마련돼 있었다.

식당 입구를 지나자 중앙 룸 한 쪽 카운터에는 덩치 큰 백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서빙을 보는 아가씨의 모습도 특이했다. 산처럼 높게 부풀린 머리스타일이 유별나 보여서다. 정수리에 부분가발을 2단으로 겹쳐 올리지 않았다면 저런 스타일이 가능이나 할까 싶은 머리 꼭대기를 과장한 스타일이었다. 진남색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치마가 그야말로 초미니 미니미니스커트라서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 괜한 노파심이 다 들 정도였다.

음식은 푸짐했다. 나물무침과 깻잎에 탕수육 맛이 나는 너비아니처럼 편편한 돼지고기튀김에 고사리나물까지 있었다. 특히 두부를 잘게 썰어 둥둥 띄워 끓인 시래깃국이 있어서 뜻밖이다 싶을 정도로 대환영이었다. 러시아에서 구수한 된장국을 먹게 되다니, 내친김에 된장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가이드는 커다란 사기그릇에 시래깃국을 듬뿍 떠다 줬다. 손님 숫자에 맞춰 분량 조절을 해서 끓였기 때문에 여분이 없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의외로 한 그릇 가득 담아 내오는 것이었다. 필자 말고도 국을 더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은 북한식당에서
루스키 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마지막 일정이 끝났다. 우리 일행은 곧장 북한식당으로 향했다. 러시아에서 잘 먹은 마지막 식사였을 거다. 요리를 하는 아주머니와 서빙을 하는 여성도 한국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새우요리, 생선튀김, 맵고도 새콤달콤한 오이와 도라지 무침, 기름에 지져 양념장을 끼얹은 두부전 등이 인기리에 금방 동이 나버렸다. 고기반찬도 나왔지만 이미 먼저 나온 반찬만으로도 밥을 충분히 먹은 상태다. 자연히 뒤이어 나오는 것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아침의 호텔식과 고려인식당에서의 점심과 함께 북한식당에서 먹은 저녁밥 세 끼는 모두 괜찮았다.

모두 일어섰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제부터 70시간 이상 기차에 몸을 실을 거다 우린. 모두 이르쿠츠크 역을 향해서 갈 거고, 이르쿠츠크에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알혼섬으로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착장을 찾을 거다. 그런 후 바이칼 호수가 최종 목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지라도 평상시처럼 잘 먹고 잘 마시고, 숙면을 취할 수만 있다면 큰 어려움은 없겠다. 맛에도 익숙한 맛과 낯선 맛이 있다 하겠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내 집에서라면 별일 아닌 것들이 어설프고 친숙하지 않아서 나온 말인 것 같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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