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한결같아라, 문제는 잔머리야 'It's the petty tricks, stupid!'

  • 입력 2019.04.30 19:57
  • 수정 2019.04.30 20:06
  • 기자명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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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다.
고요한 물이나 바람, 숨에 외부적인 파동이나 흐름이 가해지면 '물결', '바람결', '숨결'이 되고 나무나 돌, 살 같은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띠나 층을 이루면 '나뭇결', '돌결', '살결'이 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서도 찰나 같고 번쩍이는 짧은 순간이나 겨를이 있으니 '어떨 결', '무심결', '잠결', '꿈결' 같은 것이 그것이다.

마음에도 결이 있으니 그 씨나 무늬가 여럿이 아니고 하나로 줄곧 이어지면 '한결'이 된다. 이는 대나무 결 하나하나가 밑 등에서 꼭대기까지 올곧게 쭉 뻗는 형상이다. 예로부터 대나무처럼 처음과 끝이 변함없는 곧고, 줏대 있는 사람을 일러 '한결같다'고 했다. 우리말이 감칠맛있는 것이 고상할 때는 '한결같다'고 우아하게 표현하지만 쓸데 없이 나쁜 짓만 골라 할 때는 가차 없이 '노다지'라는 방언을 붙어 '허구한 날 노다지 술이나 푸냐!'며 면박을 주기 십상이다.

전성기가 지난 60년을 한결같은 창법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듣는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행운이다.
기교는 양념이다. 재미나 멋을 부리면 기교나 예화들이 본질을 가리는데 노련한 평론가나 관객들은 다 안다.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얼렁뚱땅 인지. 
그래서 최고의 설교가 들이 지키는 신앙의 규범 가운데 하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나머지는 쯔키다시다. 

내 삶의 의식(ritual) 가운데 하나는 '하루 만보 걷기'다. 바쁜 세상에 빠르기로 치자면 소리보다 빨리 이동하는 첨단 문명시대에 가장 원시적인 몸짓으로 달팽이처럼 걷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내가 이를 지키는 원칙은 걷기처럼 손쉬운 운동이 없으며 걷기처럼 자유로운 몸짓이 없으며 걷기처럼 사색하기 좋은 묵상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바쁘게 사는 당신, 빈틈없이 자기 스케줄을 채우는 것을 자랑인 양 으스대며 살아가는 바로 당신, 작을 길을 따라 걸어보라. 우리 몸에 생물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려면 30분 이상을 할애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퇴직 후 60세 생일이 되던 날, 나는 내 스스로의 작은 약속으로 매일 만보를 걷고 저녁이면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다, 혼자서 제아무리 '금연', '금주' 다짐보다 '10년 후에 사장이 된다.'는 식으로 커밍아웃하면 자타가 의식하여 실천 강도가 달라진다.

불멸의 4367안타로 은퇴한 일본이 낳은 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도 51세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근성의 표현으로 등번호를 51로 새기기도 했다.

적어도 환갑나이 60에서 완전수 100일 동안 말이다. 그런대 중간에 SNS에 올리는 것을 접었다. 왠지 꼴깞떤다는 기분이 들던 차에 한 걷기 마니아가  3만보 인증샷을 올려 '나대지 말라'는 식의 압박을 느껴 지금은 나만의 의식으로 한결같이 애쓰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한 동작을 시범해 보이며 말했다. 
"모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뻗어 보아라. 오늘부터 매일 300번씩"
제자들은 그렇게 쉬운 것을 못할 리 없다며 웃었다. 그러자 그는 "쉬운 일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다. 한 가지 일을 지속적으로 잘 해내는 사람이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1달 후 90% 정도, 3개월 후 70%였지만 1년 후 가장 쉬운 손동작을 지속하는 사람은 단 사람, 플라톤이었다 한다.

종일건건(終日乾乾)! 
하루 종일 한결같은 맘으로 애쓰다 보면 당신도 인생의 플라톤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놈의 잔머리야! It's the petty tricks, stupid!'

 

Profile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치학박사 
「걷기 속 인문학」저자

前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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