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 입력 2019.04.23 15:41
  • 기자명 유중근 한국애착연구아카데미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출산 시대이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사랑은 여전히 크고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과거와 동일하다. ‘애착 전문가’이다보니 엄마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많은데 많은 엄마들이 종종 생각하는 비슷한 고민이 하나 있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이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된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나에게 아이를 잘 키운다는 의미인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것이 잘 키운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밝게 자라는 것이 잘 키운다는 의미인지 나의 생각의 방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 

부모라면 이 모든 것을 거머쥐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하나라도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 가지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자녀양육에 대한 책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식단에서부터 정서지능을 높이는 법, 공부 잘하도록 키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내용도 충실하다. 얼핏 생각하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을 실천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세 가지를 모두 이룬 엄마들이 책을 보고 일일이 모든 실천사항을 행동으로 옮겼기에 아이를 잘 키운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책보다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는 신뢰적 상호작용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심리학에서 아이와 엄마와의 신뢰적 상호관계를 다루는 꽤 설득력 있는 이론이 하나 있다. 바로 애착이론이다. 애착이론은 아이와 엄마와의 신뢰적 상호관계가 안정된 아동발달을 이루게 한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신뢰적 상호관계는 아이에게 밝고 건강한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들뿐 아니라 탐구력과 활동력을 길러준다. 애착이론에 따르면 생애 초기 애착관계는 이후의 발달과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엄마와 아이의 관계의 질에 따라 서로 다른 애착 유형이 형성된다. 엄마와 아이가 좋은 관계를 만들어 신뢰적 상호관계가 축적되어 아이의 심리가 건강하게 형성된 경우를 안정애착이라고 부르며, 엄마가 이랬다저랬다 감정에 따라 양육하여 아이의 불안이 높아지거나, 또는 엄마가 아이의 필요나 요구를 회피하여 신뢰적 상호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를 불안정 애착이라고 부른다. 

안정애착은 단순히 아이에게 잘 해 준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위해 풍족하게 필요를 채워준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안정감을 채워주기 위해 아이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관적으로 행동하여 엄마로부터 오는 사랑을 아이가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이란 마음속에 있는 정서와 결합된 추상적 관념이 결코 아니다. 몸으로 체득되는 ‘경험’이다. 그래서 안정애착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체득되는 사랑의 경험이 축적될 때 만들어진다. 엄마와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예측 가능해지고 신뢰적 상호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불안정애착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예측하지 못한다. 엄마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변덕스런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한다. 설사 엄마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고 혼란스러워 예측할 수가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애착관계는 불안을 가중시켜 심리적으로 불안에 취약한 마음으로 점점 발달한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하고 혼란을 느낄 때면 짜증을 자주 보이는 아이로 자라게 만든다. 반대로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가서 접촉을 시도하는 데도 귀찮아하거나 빈번히 거부하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사랑 대신 거절감과 수치심으로 엄마를 체득하기 쉽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거부 경험이 쌓이게 되면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에서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쉽다. 이러한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보이고 잘 자라는 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구사귀기를 못하고 공격성이 있는 아이로 발달하기 쉽다. 

이와 같이 애착관계는 단순히 엄마와의 관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애착관계의 질에 따라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와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실상 나와 아이와의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얼마나 반응적이고 아이가 예측 가능한 관계인가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