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쉼표] 떠나자! '한국의 미' 담은 서울시내 5대 고궁으로

  • 입력 2019.04.23 15:23
  • 수정 2019.04.23 15:26
  • 기자명 김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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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점차 오르면서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인 만큼 갈 곳을 물색하고 있다면 서울 고궁 나들이를 떠나는 것은 어떨까? 고궁(古宮)은 조선 왕조에서 풍수지형을 고려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담은 건축물이다. 특히, 5일까지 서울시내 5대궁과 종묘를 배경으로 제5회 궁중문화축전이 열리는 만큼 멀리 가지 않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하다.

 

조선의 위용을 과시하는 으뜸 궁궐 경복궁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이 주도해 중건됐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공간이 조성됐는데, 일제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해 근정전 등 극히 일부 건물만 남았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조금씩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경복궁은 매주 화요일이 휴무인 가운데 매일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관람 성수기이기에 매표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 수 있는데 영추문(경북궁 서문)으로 이동하면 순조롭게 입장할 수 있다.

 

대한제국의 황궁이자 우여곡절 겪은 덕수궁
옛 이름은 경운궁으로 조선 왕조를 대표했던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선조가 행궁으로 삼았다.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덕수궁의 규모가 축소된 뒤로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잃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덕수궁으로 환궁했는데, 대한제국 선포 후 이곳을 황궁으로 삼고 규모와 격식 갖추게 됐다. 안타깝게도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덕수궁은 매주 월요일이 휴무이고 매일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중앙홀에서는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7시부터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는 창덕궁은 조선 5궁 중 유일하게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이 제 기능을 못하자 중건되기 전까지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게 됐다.
창덕궁 후원은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됐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 자연적인 지형에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있게 건물을 배치했다.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인 창덕궁은 5월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입장할 수 있으며 주기적으로 관람 시간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고된 수난의 시간 겪은 창경궁
1483년 성종 때 창건된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하는 역할까지 겸했다. 청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등으로 크고 작은 화재를 겪던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섰다. 명칭 역시 창경원으로 바뀌는 등 수난의 시간을 보내다 1984년부터 복원으로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찾고 있다.
창경궁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둘러볼 수 있으며 별도의 관람권을 구입하면 창덕궁과 연계해 관람이 가능하다. 창경궁의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조선 궁궐 중 가장 뛰어난 경관 경희궁
1617년 광해군이 창건한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다. 1706년에 경희궁이라고 개칭했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뛰어난 경관을 갖고 있었다. 궁궐이 서쪽의 높은 지형에 있었기에 한양의 동쪽이 시원하게 보였다.
하지만, 경희궁의 운명은 가혹했다. 궁궐의 절반은 불에 탔으며, 일부는 경복궁 중건에 부재로 사용됐다. 얼마 남지 않았던 부분도 대한제국이 국권을 뺏긴 이후 대부분의 건물은 없어졌다. 
특히,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궁궐의 모습을 잃었으며 경희궁 내 왕과 왕비의 침전이 있었던 곳을 헐고 방공호를 만들었다. 현재는 겨우 20% 정도만 복원됐으며 서울시립박물관과 공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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