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 입력 2019.04.16 16:49
  • 수정 2019.04.16 16:51
  • 기자명 취재: 박정례, 정지원 기자 / 글: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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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5일, 여의도. 5·18 망언을 규탄하며 내걸린 국회의사당 앞의 플래카드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이틀 후엔 1만의 노동자들이 이곳을 가득 메우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목이 하루가 다르게 모이고 흩어지는 곳. 이곳에서 생겨나는 모든 반목은 정치나 이념의 문제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자연 현상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여론은 이 땅을 둘러싼 바다의 조수를 따라 하루도 어김없이 밀려들어오고 쓸려나가게 되어 있다. 

육중한 세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형국. 한반도는 바깥에서 짓누르는 압력과 안에서 끓어 넘치는 갈등 때문에 안팎으로 시달려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의 명령으로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언젠가는 주어진 힘을 마음껏 발휘해 운명을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해 보고 싶다. 그러나 허리가 끊어진 탓에 언제나 가진 힘을 다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쯤 되면 한 번만이라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의 판도가 얼마나 바뀌는지.

이날,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종일 국회에서 현안과 씨름했다. 전주·청주 특례시 지정,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 촉구, 국토교통부 장관 인사청문회까지. 1996년 정계에 발을 들인 이후로 멈추지 않고 걸으며 대한민국에 몰아치는 격랑을 오롯이 견디고 있다. 쉼 없는 의정활동으로 피로해진 몸을 이끌고 돌아간 곳은 자택이 아니었다.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이 준비한 강연장에는 정 대표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기대에 찬 눈초리로 정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정 대표의 목청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나라의 주인이 내는 목소리
"국민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외치고 있습니까. 나의 삶을 개선하라! 못살겠다! 결국 그것입니다. 언제나 그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취직이 안 됩니다. 장년들은 장사가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뭔가 바꿔야 합니다. 개혁을 해야 합니다. 개혁 중의 개혁인 개헌이 무산된 지금, 우리는 국회 권력이라도 혁신해야 합니다. 방법은 바로 선거제 개혁입니다."

정 대표의 시선은 정치인으로서의 시선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정치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과제이지, 국회의원들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를 국회의원들에게 맡겨놓고 뒤에서 박수나 치고 욕이나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다. 그는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본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정 대표는 선거제 개혁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구조에서, 정치인은 정치인 자신을 위해 일하고, 공무원은 공무원 자신을 위해 일합니다. 남을 위해 일하는 건 국민들입니다. 정부라면 나를 위해서 봉사해줄 줄 알았는데, 들여다보니까 다 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거죠.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어요. 다들 자기 회사, 자기 부처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는 국회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은 바꿔 주지 않습니다. 국민이 바꿔야 합니다." 

나라의 주인이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세상. 영국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민당에 비해 우리의 노동자들은 집권당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목소리를 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머리띠를 매고 플래카드를 내걸어 크게 외친다. 정 대표는 그들에게 주목한다. 그리고 연동제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국민의 뜻에 연동하는 정치
"연동제라는 것은 결국 국민 뜻에 연동하자는 겁니다. 그들이 준 표수에 비례해서 그들에게 의석을 줘야 한다는 거죠. 농민들이 농민당을 만들어서 목소리를 내면 그 표수만큼 농민들을 국회에 보내야 합니다. 소상공인들도,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표가 모이면 그만큼 줘야 하는 것입니다."

정 대표는 특히 청년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N포 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청년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청년 정책을 비롯한 각종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이 없다. 이제는 청년들이 직접 정치주체, 경제주체로 나설 차례다.

"청년문제는 청년이 제일 잘 압니다. 그러니 청년들이 국회에 가야돼요. 지금 국회에 청년 의원이 두 명 있습니다. 외국의 정치선진국들을 보면 청년 국회의원이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행복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덴마크는 20·30대가 42%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두 명이에요. 지금 청년들이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취직도 못하며 눈앞이 암담한 상황입니다. 2013년 독일 총선의 경우,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지역구에서는 한 명의 당선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비례대표로 63석을 차지했어요. 우리도 청년들이 만든 당이 모든 청년 유권자들의 강한 지지를 받을 경우, 선거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다 떨어지더라도 국회 300석 중 30%를 가져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우리의 100% 연동제 주장입니다. 30명의 젊은 청년들이 들어가면 국회 풍경 자체가 바뀌게 될 겁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국회, 그것이 진정한 다당제입니다."

정 대표는 8월에 당대표 자리에 오르며 다짐했다. '한국사회를 바꾸는 핵심은 정치를 바꾸는 것이며, 정치를 바꾸는 것은 선거제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 당의 운명을 걸겠다.' 8개월 동안 정 대표와 민주평화당은 꾸준히 선거제 개혁을 밀고 왔다. 주장의 핵심은 국민들이 정치에 눈을 뜨는 것이었다. 정치가 국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것을 국민들이 깨닫는 것. 그것을 위해 정 대표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먹고 사는 문제고 애들 키우는 문제고 노후 문제고,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다 정치 문제입니다. 미세먼지도 정치 문제에요. 정책에 실패해서 힘들어지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아들딸,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바꿔야 할 것은 국내 정치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확대하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정 대표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강연장에 모인 사람들만이 아니다. 정 대표는 제15대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로 들어갔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전주에서 가장 견고한 신임을 받는 정치인이다. 시민들에게 받는 사랑만큼, 정 대표의 전주 사랑도 무한하다.

전주, 호남에 대하여
정 대표는 전주 시민들의 환경 문제에 앞장서 왔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혁신도시 악취 문제, 팔복동 폐기물발전소 건설 중지, 송천동 에코시티 라돈 문제 등을 책임지고 맡아 해결했다. 전주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주는 한국인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한류의 원형이 전주에 있습니다. 우선 한국인의 맛. 먹는 것은 모든 일의 기본입니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전국을 수도 없이 돌아봤지만, 전주식당이 없는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한국인의 멋. 한복, 한옥, 한지 등의 전통 공예품과 건축물, 그리고 판소리까지. 우리 것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계승되고 있는 곳. 그것이 전주의 경쟁력입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전주가 가진 비전이 '동양의 밀라노'로 불리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맛과 멋을 모두 가진 전주는 음식과 패션의 메카인 밀라노와 매우 닮았습니다."

한옥마을로 천만 관광시대를 연 전주에, 정 대표는 2천만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와 함께 전주로 오는 길이 편리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대표는 38년 동안 낡아버린 전주역을 다시 짓기 위해 국토부와 기재부, 코레일을 4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총 사업비 450억 원을 투입하는 전주역 신축사업을 관철시켰다. 새로 짓는 전주역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한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건물로 지어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총 250억 원을 들인 전주역 일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면, 전주 동부권 일대를 혁신성장의 중심지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받는 지지에 보답할 계획이다.

정동영 정치
정 대표의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천관우'라는 이름이 정 대표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였던 천관우 기자에 반해 정 대표는 국사학과에 진학했고 따라다니면서 사사를 받았으며, 언론인의 길을 갔다. MBC에서 17년 동안 언론에 종사했던 정 대표는 1996년 정계에 발을 내딛었다. 정 대표는 당시의 정권교체 흐름을 우리 역사상 최고의 개혁이었다고 회고한다. 김대중 총재의 부름에 응답하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대통령 선거를 완주했다. 이제는 민주평화당의 대표가 됐다. 정치 생활 20년 동안 언제나 등을 밀어 준 것은 민주화를 선도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이다.

"5·18의 희생이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민주주의의 공기의 원천이죠. 민주화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5·18이 독재정권으로부터 쟁취해 낸 자유,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를 악용해서 도리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자기모순입니다. 그래서 5·18은 이제 광주 너머 전국화의 과제, 그 너머 세계화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찬란했던 5·18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목적지
23년 간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뚜렷한 행보를 보였던 정 대표. 그에게 마지막으로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정치인으로서 정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묻는 쪽에서 바라는 대답이 확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정 대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던진 우문이었다.

"첫 번째로, 남북의 자유왕래입니다. 분단의 70년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한민족끼리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치개혁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답답함을 뻥 뚫어줄 만한 정치개혁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성된다면 그 다음으로는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구적인 평화체제와 복지국가 건설. 이 두 개의 탑이 바로 ‘정동영 정치’가 마지막까지 걸어갈 목적지입니다."

묻는 이의 속내까지 꿰뚫는 현답. 결국 정 대표가 원하는 미래는 정치인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가 되어 다함께 평화롭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나라’였다. 이제 정 대표의 다음 상대는 부동산이다. 지난 3년 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국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정 대표는 대한민국 모든 불평등의 뿌리가 바로 부동산 문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쾌적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차근차근 마지막 목적지까지 걸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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