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2019 지역탐방 군산·새만금

  • 입력 2019.03.28 17:05
  • 수정 2019.03.28 17:31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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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3일, 어떤 이들이 군산에 모였다. 그들의 직업도, 연령도, 성격도 다양했다. 그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대륙으로 가는 길’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하나가 된 사람들. 그들이 하나가 된 이유를 찾기 위해서, 기자는 그들과 함께 군산을 여행했다.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이제는 기억에서 흐릿해진 과거의 상처를 천천히 되새겨야 했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여정은 즐겁기만 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때로는 슬프고, 가슴 아프고, 무거웠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을 단순히 즐거움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기자는 ‘대륙으로 가는 길’과 함께 걸으며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현재에서 한 발 물러나 차분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새로운 가치관을 획득하는 것. 

상괭이들은 바다로 가려 했다
지난 2011년 2월, 백 마리가 넘는 상괭이들의 사체가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 쌓였다. 펄떡거리는 활어를 실컷 잡아 올려야 할 어민들이 죽은 고래의 몸뚱이를 건져내기 위해 수십 척의 선박을 동원했다. 정부는 어민들의 그물에 걸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썩어가는 상괭이들의 주검을 뱃전이 넘치도록 끌어올리던 날, 그들은 슬픈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봤을 것이다. 푸른빛의 바다를 종으로 가로막은 잿빛 장벽이 있는 곳. 그리고 다른 무언가를, 소중한 하나를 횡으로 갈라 둘로 나눠버린 또 하나의 장벽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은 왜 하나를 둘로 나누는 데 의미 없는 힘을 소모할까.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 우리는 나무와 물, 산과 바다를 아울러 그렇게 이름 붙였다. 자연은 인간의 기원이며, 안식처이고, 생존의 수단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발전할수록 자연을 더럽히고 있다. 일부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땅속에 물을 주입한다. 그것 때문에 지축이 흔들리고 땅이 가라앉아 시민들이 죽어나가야 비로소 자연의 무서움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물에 땅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같은 착각에서 발현한 어리석음이다. 발전이라는 명목의 무지, 자연에 대한 역행.

대륙으로 가는 길 회원들은 새만금 방조제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신시도를 바라보며 달리는 차창에서 본 바다는 방조제를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물빛과 파도가 확연히 달랐다. 왼쪽 바다는 풀이 죽었다. 푸름을 잃어버렸다. 반면 오른쪽 바다는 요동치고 있었다. 분노하고 있었다. 어서 바닷길을 터 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자연이 인간을 꾸짖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1987년 12월 10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대한 국책 사업을 결정했다. 군산 비응항과 고군산 군도, 부안군을 잇는 33.9km의 세계 최장 방조제를 건설하고 내측에 409㎡의 간척지를 조성하며 권역을 자유무역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대규모 공사였다. 대한민국이 서울의 2/3 규모의 새로운 영토를 갖게 되며, 그 새로운 땅은 비옥하기 때문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으며 국제물류 거점항으로 만들어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 곧이어 1991년 11월 16일, 거대한 방조제를 건설해 바닷물을 막는 ‘물막이 공사’가 착공했다. 19년 후,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세계 최장 방조제가 거짓말처럼 준공했다. 바닷물의 흐름이 인력으로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는다. 이미 새만금 방조제 내측 바다의 수질 저하는 뚜렷하다. 만경강은 최악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동진강 역시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제한적 해수유통으로 6에서 4급수 정도의 수질유지를 목표로 했던 정부의 수질예측은 빗나갔다. 결국 새만금유역의 수질은 우리나라 하구 중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물길이 막힌 내측의 수질은 갈수록 오염이 심각해지며 어종의 다양성이 망가지고 있다.

또한 통계청의 어업 생산동향에 따르면 1990년 새만금사업 전 전북지역의 어업 생산량은 총 150,234톤이었으나 2015년 43,903톤으로 약 74%가 감소했다. 만약 어업 생산량을 1990년대 수준으로 유지했다면 2015년에 약 6,323억 원의 수입이 예상되나, 지금은 약 4,4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별강사 자격으로 마이크를 쥔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만금 유역의 수질개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만금호 상류의 수질은 이미 6급수 수준입니다. 부영양화 및 퇴적층의 오염화가 가속화되며 사상 최악의 수질오염이 불가피합니다. 해수를 유통시켜야 합니다. 수질개선 실패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 새만금은 환경 친화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30년의 환경적폐를 극복해야 합니다. 해수유통만이 유일한 해답입니다.”

수탈과 억압의 역사
1910년 8월 29일부터, 45년 8월 15일까지. 한민족 최대의 수치, 일제강점기. 무역항으로 번영했던 군산은 일제 수탈의 목적지가 되어 모진 억압을 겪으면서 서서히 피폐해졌다.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 일제가 우리 민족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건물들이 일제의 건축양식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그 건물들은 근대건축관과 미술관으로 변모해 국민들의 역사 인식 재고를 지원하고 있지만, 광복 이후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민족이 당했던 수치는 조금도 지울 수 없었다.

회원들과 함께 군산근대역사박물관과 근대건축관·미술관을 둘러보며 강경화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동안,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의 힘이 강하지 못했기에 겪어야 했던 시련. 간악했던 일제의 만행에 스러져 간 우리의 영혼을 눈으로 보면서 생각했다. 더 이상 군산에 상처를 줄 수 없다. 충분히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겪은 도시다. 그 참담한 세월을 버티고 나자 새만금 방조제의 출발지가 되어 수질저하의 피해를 입고 있다. 회원들은 구호를 외치며 다짐했다. 이제는 군산에 맑은 물과 밝은 미래를 안겨줘야 한다고, 우리가 나서서 군산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다시, 서울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위에 놓인 회원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흩뿌려진 피와 눈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민족의 역사를 따라 어김없이 반복되는 비극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겨우 핍박에서 벗어났더니, 환경문제가 뒤따랐다. 이제는 편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언제나 안팎으로 시달려야 하는 우리 민족의 앞날에 대해 그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픔을 털어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회원들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길을 떠올리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 민족이 강해지는 길. 끊어진 바닷물을 다시 유통하듯, 갈라진 민족을 이어서 다시 하나가 되는 길. 그래서 자신 있게 세계로 뻗어나가,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길을 그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륙으로 가는 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대륙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하는 국회 등록 비영리 연구단체 사단법인이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원로, 학자, 시민운동가,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통일운동단체, 경제민주화, 환경, 노동 시민단체와 연대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보장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경제민주화·복지·노동·환경·교육 문제에 관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 운동,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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