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누각, 그리고 맑은 물

일본 교토(京都) 금각사, 기요미즈데라

  • 입력 2019.03.19 16:44
  • 수정 2019.03.28 15:14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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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현재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나온 길, 잃어버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내다보며 살아간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상처에 딱지가 앉고 그것이 떨어지며 새살이 돋는다. 흉터가 지는 것이 아무래도 속상할 때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마저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다.’

금각金閣
화려하게 태어난 한 사람이 있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아름다움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키 큰 나무로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치고 그 안에 숨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그리고 화려한 금으로 덮인 옷을 온몸에 두른 채, 자신의 미를 언제나 자각할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 거울을 두고 자신의 모습을 비춰 봤다. 하루라도 자신의 번쩍거리는 모습을 비춰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안 보이는 곳에서 억지로 얽어매는 이야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그 사람에게 불을 질렀다. 아무런 죄도 없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불을 지른 자에게 이유를 묻자, ‘미에 대한 질투, 아름다움과 함께 죽고 싶었다’는 허무맹랑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구보다 화려했던 외모는 누군가의 질시에 의해 그토록 참혹하게 빛을 잃고 말았다. 후에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복원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이 생긴 가짜 뼈대를 만들어서 아무리 금을 덧칠해도, 예전의 찬란했던 빛이 그대로 돌아올 리 없다. 비싼 금을 덧칠할수록 외형은 저렴해질 뿐이었다. 지금 서 있는 것은 가짜다. 아무리 닮아가려 노력해도, 가짜는 절대 진짜가 될 수 없다. 결국, 지금은 금각이 존재하지 않으며, 금각의 모형만이 쓸쓸히 서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청수淸水
또 한 사람 역시 누가 봐도 아름답지만,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 우뚝 서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는, 종류가 다른 아름다움이다. 담백한, 그러면서도 곧고 시원한 외형. 장신구도 거울도 필요 없다. 붉은 기의 가벼운 화장이면 충분하다. 낮이고 밤이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해 곁을 내주는 것이 전부다. 이 절에는 누가 얽어놓은 비극도 딱히 없다. 추문이 많으면 어쨌든 좋지 않다. 깔끔할수록, 걸리적거릴 일이 없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 사람에게도 과거가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연연하지 않았다.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콤플렉스를 드러낼 일이 없었다. 애초에 황금 장신구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려함은 불타는 질투를 부르지만, 청량함은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맑은 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토와(音羽) 폭포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영천(霊泉). 그냥 마셔도 될 텐데, 누군가 하나의 풍문을 퍼뜨렸다. 세 갈래의 물이 각각 연애, 학업, 장수의 효험이 있다는 뜬소문이다. 참배자는 그 중 어느 하나의 물줄기를 한 모금만 마셔야 한다. 두 모금 마시면 효과는 반으로 줄어든다. 아예 욕심을 부려서 세 물줄기를 모두 마시면, 아예 효험이 무효가 된다고 한다.  진심으로 그 효과를 철썩 같이 믿고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저 경사가 가파른 절에 올라오면서 목이 탈 손님들을 위해 물을 준비하며,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고 탈이 나지 않도록 약간의 재치를 발휘했을 뿐이다. 이렇게 소소한 이야깃거리만 나뭇가지에 걸려서, 산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소박한 소원을 담은 종잇장과 함께.

금각사金閣寺,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를 지키고 있는 두 절. 서로 다른 외형만큼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금각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일반인도 아닌 사미승에 의한 ‘묻지마’ 방화로 불타 형체만 겨우 남을 정도로 소실됐다. 지역 주민들의 힘을 빌려 다시 지어 올리고 오래도록 주머니를 털어 금박을 덧칠하고 있는데도, 범인은 수감 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지금의 금각에 감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현지에서도 ‘촌스럽다’는 평이 의외로 많다. 인공 금박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우리가 금각사를 구경하며 얻을 수 있는 것은 심미안의 충족이 아니라, 단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남는 한 가지 생각은, 반드시 금박을 다시 칠했어야 했는지, 어쩌면 그 황금의 반짝임이 화를 불러 모은 것은 아니었는지.

기요미즈데라 역시 773년에 지어진 이후 아홉 차례의 화재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1633년 이후로 현재까지 400년이 다 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 상처가 있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잘 견뎌내며 오랜 시간을 지나 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도 수백 년이 넘도록 무사히 관리되고 있다. 그것은 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했기도 했겠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스스로 절에 대한 애정과 무한한 경외감을 안고 오기 때문이다. 고즈넉하고 편안하며 가깝다. 그래서 꼭 다시 찾아와 맑은 물을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리고 싶은 절이다.

금각사와 청수사, 두 절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하루에 서로 다른 두 얼굴을 보고 두 가지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역시 사람이 사는 절에 황금 따위는 별 필요가 없으나, 사람들이 목을 축일 맑은 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맑은 물은 불자가 추구하는 본질과도 닮아 있다. 투명함.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 티 없이 깨끗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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