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곳, 모든 것이 연결되다

박형진 작가 정지원 기자l승인2019.02.21l수정2019.02.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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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름다운 블랙홀_박형진 작가

박형진 작가의 실이 풀린다. 흩뿌려진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서 이리저리 얽힌다. 사용하는 소재부터 기법까지,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독특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작가는 대중에게 밋밋하고 재미없는 회화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제나 새로운, 그래서 자유로운 미술의 세계를 보여 주고자 하는 ‘찰나의 예술가’로 보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박 작가의 화폭에는 실을 풀어놓았을 때의 찰나, 즉 우연의 순간이 빚어내는 예술이 생생하게 펼쳐져 보는 이들의 마음을 돌돌 말아 감는다. 

1996년부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온 박 작가는 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우주와 사람을 연결한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를 위태롭게 하는 계층·세대·종교·인종 간의 헤아릴 수 없는 갈등의 봉합을 꿈꾸며 소통의 메시지를 전하는 박 작가의 그림을 만나본다.

▲ 박형진

캔버스, 매개체가 되다
박 작가는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를 보고 즐기며, 무엇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다른 세계의 어떤 신호에 의해 발현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우주로부터 받은 영감을 캔버스에 표현하는 중간 인물이고, 작품은 우주와 나의 매개체다. 이로써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우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유롭게 표현해 낼 수 있다.” 

대학 시절, 박 작가는 추상미술의 대가이자 청기사파의 창시자였던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저서 <점·선·면>을 읽게 되었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구상예술에 익숙해져 있었던 유럽 전체에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모든 물체는 각이 없다’는 문장에 박 작가는 마음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이후 박 작가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새로운 기분으로 캔버스를 마주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추상적으로 표현해낸 칸딘스키의 행보는 박 작가에게 ‘새로움’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박 작가는 기존을 거부한다. 반드시 나아가려 한다. 무언가를 표현해 내려 한다. 그가 캔버스에 풀어내는 미술은 현실에 안주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옥죄는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나비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미술이다.

박 작가의 작품 세계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의 예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의 초기 부조작품은 2011년 뉴욕 미국갤러리 작가로 선정되어 큰 호응을 이끌어 낸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뉴욕의 저명한 환경 작가이며 2004년 작고한 제리 테이퍼(Geri Taper)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모아 홍천미술관에서 2인전을 개최했다. 해당 전시를 통해 박 작가의 미술은 다시 한 번 미술계에 결코 가볍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제리 테이퍼의 추상화와 꽃과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들, 금속을 사용한 혼합매체, 산업조각 등이 박 작가의 세계에 녹아들어 평단과 대중의 박수를 받았다.

실로 이어지는 감성의 단편들
박 작가의 캔버스에는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 흐름 속에는 어느덧 삶의 편린을 온몸으로 겪어 온 그의 생각들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희망 또한 담겨 있다. 그의 감성에는 누구도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세계가 녹아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실’은 매우 뛰어난 소재로 받아들여진다. 실이 가진 핵심적인 속성은 연결이라는 점이 또한 의미 있게 다가온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약하게 보이면서도 서로 다른 두 객체를 묶어서 결합할 수 있는 속성은 박 작가의 작품세계에서도 그 역할을 다한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자연스레 연결시키는가 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을 하나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림 위에 실타래를 풀어 던져 ‘우연’이라는 다소 극적인 표현을 가미하기에, 그의 작품은 또한 드라마틱하다. 인생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계획에 따라 의도대로 진행되다가도 우연이라는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비일상적인 요소들로 인해 전혀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을 함축해놓은 것과 같은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강렬했던 기억들,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는 경험은 박 작가가 선사하는 놀라운 선물이다.

▲ 좌: Mary Blue / 우 : Amber Sun_리오넬로헤(Lionel Lauret) 작가

박형진·리오넬 로헤(Lionel Lauret) 2인전 
박 작가는 2019년 3월 19일부터 4월 2일까지 홍천미술관에서 홍천문화재단 후원으로 프랑스의 예술가 리오넬 로헤와의 2인전을 개최한다. 지난 2016년 갤러리 퐁데자르 서울에서 한 달간 개최한 전시 'rabbitman'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비범한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리오넬 로헤는 박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리오넬 로헤는 1972년에 태어났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장식미술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통해 보는 이들을 순수한 세계로 인도해내는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대작으로 구성된다. 이로써 리오넬 로헤는 캔버스가 가진 물리적인 크기를 넘는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며, 그 안에 담아내는 강렬한 구성의 색채 조합이 더욱 뚜렷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도록 표현한다. 리오넬 로헤는 언제나 보편성과 총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다. 

대표작 <Rainbow Blood>는 색을 하나의 다채롭고 역동적인 우리 피 속의 강력한 에너지로 간주한다. 자유로운 색상은 캔버스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공간을 빛내고 내뿜는 강력한 심리 상태에 대한 즉각적인 구현이 된다.

리오넬 로헤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은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일면을 통해 기존의 관념들을 탈피해 나간다. 그의 작품 속 얼굴들은 다채로운 색을 가진다.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표정들이 인물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치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박형진·리오넬 로헤의 2인전을 통해 내면이라는 것의 의미가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단단히 얼어붙은 땅에서 또 하나의 시작이 움트는 계절인 봄에 우리는 해묵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자 하는 두 명의 작가들이 준비하는 전시를 만나러 갈 수 있다.

찰나의 순간, 모든 것이 그의 소재
그림 안에서 우연히 나타나고 떠오르는 형상에 따라 소재와 기법이 달라진다. 박 작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캔버스에 흩뿌릴 뿐이다. 동물이 되기도 하고 사물이 되기도 한다. 혹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머릿속에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졌다가 스쳐 지나가고 나면, 다시 또 하나의 형상이 떠오른다. 재료는 끊임없이 재조합된다. 박 작가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에폭시에 안료를 섞어서 재조합시키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 실, 캔버스, 비즈, 한지, 망사스타킹 등 구분 없이 본인이 느낀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는 재료면 무엇이든 그의 화폭 위로 쏟아져 재구성된다. 언제 어디서 떠오를지 모르는 영감을 붙잡기 위해 그는 인식의 박자를 느긋하게 유지한다. 박 작가에게 예술이란 우연한 순간, 그 ‘찰나’를 잡아채는 올가미이다.


정지원 기자  jeongj3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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