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세계 예술품의 저장탱크, 겨울 궁전'

에르미따쥐(Hermitage)

  • 입력 2019.02.14 15:24
  • 수정 2019.02.14 15:27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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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라는 거대한 유럽문화의 용광로를 찾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짐니)궁전으로 향한다. 프랑스 파리의 루부르 박물관과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찾아갈 때보다 더 부푼 기대감으로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은둔의 장소, 에르미따쥐 박물관에 약 3백만 점의 작품들이 있다고 한다. 전시장만 돌아보는 동선의 길이가 27km이고,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하루 종일 한 작품을 1분씩만 감상한다 해도 꼬박 5년 동안을 보아야 한다는 곳이다. 

1754년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의 명에 따라 건축가 라스트렐리가 설계하여 겨울 궁전이 세워졌다. 겨울 궁전이 세워진 당시에는 그곳을 황제들의 관저로 사용하였으나 이는 미래에 만들어질 에르미따쥐 박물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762년 왕위를 계승한 예까테리나 대제는 왕정 3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겨울 궁전 곁에 꽃이 만발하고 조각상들이 세워진 공중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쪽 끝에는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그리고리 아를로프 백작을 위한 파빌리온을 지었고, 후에는 북쪽에도 파빌리온을 지어 예까테리나가 사랑하는 작은 은신처 동호회원들과 만남을 가졌다. 연극을 감상하고, 시 낭송과 파티를 즐기던 그들은 이곳을 말르이 에르미따쥐(작은 은신처)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박물관 구상을 하고 있던 예까테리나 대제는 새로운 예술품들을 구입하기 시작하였으며, 건축물도 더 증축하였다. 그리하여 겨울궁전 옆에 소 에르미따쥐, 구 에르미따쥐, 신 에르미따쥐 등의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모든 건물들이 하나가 되어 국립 에르미따쥐 박물관이 탄생되었다.

최고 수준의 안목을 자랑하며 예술작품의 감상을 취미로 했던 예까테리나 여제는 특히 고전주의 미술을 사랑했고, 정치나 경제보다는 에르미따쥐 박물관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황제를 접견하는 모든 국내외 귀빈들이 왕궁을 방문할 때는 에르미따쥐 박물관을 경유하여 황실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모자를 벗고 칼을 보관한 다음 박물관 작품들을 감상해야 했으며, 그 후에 황제를 접견할 수가 있었다. 이는 오만과 사치와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예까테리나 여제의 위세였다고 볼 수 있다. 1837년 대 화재로 인하여 대부분 소실되었던 겨울 궁전은 많은 복원작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겨울 궁전의 하얀 대리석 중앙계단을 오른다. 하얀 벽면과, 기둥 위에 황금으로 도금된 장식들이 변하지 않는 현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옥좌관이라 부르는 뾰뜨르 1세의 기념 방으로 들어선다. 뾰뜨르 1세와 미네르바 여신을 주제로 한 거대한 유화작품 앞에 황금 의자 하나가 외롭게 방을 지키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주인의 향기를 전하기라도 하려는 듯 화려한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 천정에 매달린 현란한 샨데리아와,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내부 장식들이 완벽한 구성미를 보여준다. 
영국의 기계공학자 제임스 콕스가 만들었다는 황금시계가 1780년 에르미따쥐에 설치되었다. 공작과 수탉, 부엉이, 다람쥐가 보이고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대형 장난감 같은 황금 조형물이다. 아직도 윤기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황금시계에서 천상의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음악에 맞추어 공작의 날개가 펴진다. 황금수탉은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바티칸 궁전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비슷한 라파엘의 회랑이 나타나고, 그의 작품 '마돈나 코네스타빌레'가 시야에 들어온다. 소품에 그려진 아기 예수와 책을 잡고 있는 마돈나의 완벽한 모습이 인자하게 느껴지고, 지오르 지오네가 민족의 복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린‘유디트’작품의 잔인한 소재는 오히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여신의 상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베누아의 성모’와‘리타의 성모’에 나타난 아기예수와 성모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성스럽게 만들고, 렘브란트의‘돌아온 탕자’가 발길을 잡는다.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얼굴에 숨어있는 사랑과 고통과 이별의 감정을 읽는다. 렘브란트가 작품에서 즐겨 사용했던 독특한 빛의 처리가 작품의 통일감을 강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의 아내 사스키아의 초상화도 아름답고, 사스키아가 죽은 뒤 그렸다는 침실의 누드화 다나야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나야는 1985년 두 번의 칼질과 유황 세례를 받아 상처를 입었던 작품으로, 12년의 복원 작업 끝에 다시 전시실을 지키고 있다. 루벤스의‘땅과 물의 연합’과‘세르세우스 안드로메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여인의 풍만한 육체가,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된 다른 인물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방대한 에르미따쥐는 마치 세계 미술사를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한 푸생의 그림도 보이고, 샤르뎅의‘식사기도’, 와토의‘마음이 쉽게 변하는 여인’나폴레옹이 총애했던 화가 다비드의‘사포와 파온’드라크루아의‘마로코에서의 사자사냥’피사로의‘몽마르트 거리’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르느와르, 모네, 세잔, 반고흐, 고갱, 로댕, 시냑, 보나르, 피카소, 마티스 블라밍크, 칸딘스키 등이 그린 대작들의 감동과 충격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다. 어떻게 이 많은 귀하고 값진 작품들이 이곳에 모일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예술 작품이 위대하고 귀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귀한 작품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문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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