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설경을 뒤로 한 채 네팔의 카투만두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인도의 델리 국제공항에 도착을 한다. 규모가 큰 국제공항이 왠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을 준다. 화물을 기다리는 각국의 사람들 틈에 끼어 짐을 기다리고 있는 한쪽에서 웅성거리며 짐이 없어졌다고 떠들썩하다. 한국관광객들의 소리다. 공항의 관계자가 나타나고 가이드들이 모이고 한국인 관광객이 가방의 모양과 색채를 흥분된 어조로 설명을 한다.
틀림없이 누가 훔쳐 갔다느니, 아니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느니 말들이 많다. 공항 근무자가 짐이 바뀌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설명하며, 다른 승객의 가방을 다 찾아가면 바뀐 가방이 남을 거라고 말한다. 웅성거리는 사이에 짐은 하나 둘 주인을 찾아 떠났지만 마지막에 남은 가방은 하나도 없다. 짐을 나르던 벨트는 멎고 공항은 조용해졌지만 짐을 잃어버린 한국 관광객의 소란한 목소리가 요란스럽다. 한국 관광객들은 도난을 당한 것이라고 근무자에게 언성을 높인다. 그러나 공항 근무자는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설명을 한다.
짐이 바뀌지도 않고, 누가 훔쳐 가지도 않았다면 짐은 어디에 있을까? 짐은 분명 화물통로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나는 관광객 틈에서 빠져나와 멎어있는 화물 벨트를 따라 좁고 낮은 통로로 들어갔다. 커다란 가방 하나가 화물 운반 통로 어두운 코너에 걸려 가로질러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밖으로 나와 아직도 웅성거리고 있는 곳의 근무자를 향해 소리쳤다.
“Hey. Common, there is something." 몇 번을 소리치자 한국 관광객들과 근무자가 달려왔다. 근무자가 내가 가리키는 통로를 향해 들어가고, 잠시 후 그는 빨갛고 커다란 가방을 끌고 어두운 통로에서 커튼을 들추며 빙그레 웃는다. 한국 관광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친다. 순수하고 정직한 인도인들의 미소를 도둑으로 몰아붙였던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델리 국제공항의 근처에서 김치찌개를 한다는 한인 식당을 찾아 나섰다. 한 시간쯤 간 곳에 커다란 빌딩의 2층 조그마한 식당에서 한국인이 만들어주는 김치찌개의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여러 날 굶주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김치찌개를 먹었다. 흠뻑 젖어오는 땀 속에서 내가 한국인임을 실감했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에게 인도의 음식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인도 음식은 더위에 지친 인도인들의 입맛을 돋우고, 생활의 활력을 얻는데 필수적인 듯싶다. 또한 향신료는 음식물의 보관과 살균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오이, 땅콩, 과자, 팝콘,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에도 향신료를 뿌려 먹는다. 향신료에는 생강의 일종인 심황, 미나리과의 일종인 쿠민과 고수, 매운맛으로 톡 쏘는 후추, 생강, 고추 등이 사용된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주로 만나는 음식은 밥과 빵 그리고 커리 등이다. 밥에는 저렴한 가격에 여러가지 찬이 곁드려진 탈리(thali)라는 가정식 백반이 있다. 여행자들이 그런대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오히려 고급 식당은 향신료를 강하게 많이 쓰기 때문에 차라리 수수한 서민식당이 좋다. 탈리 이외에도 향신료를 너무 많이 써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듯한 필라우(Pilau)가 있다. 필라우는 치킨이나 양고기를 원료로 만들고 레몬쥬스나 요구르트를 첨가하여 먹는다. 그 외에 필라우 보다 더 많은 향신료와 재료를 넣어 만든 비라야니(Biriani)도 있다.
빵 종류도 다양하다. 인도 여행에서 냄새 때문에 조심스럽게 음식을 뒤적거리며 아내에게 어떠냐고 묻는 버릇이 생겼다. 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역시 빵 종류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화덕이나 팬에 구워낸 짜파티(Chapatis)가 인도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주식이다. 사가지고 이동을 할 수도 있고 바나나 쨈, 버터, 커리 등을 쌓아 먹을 수 있어 편리한 점도 있다. 또 기름에 튀긴 작은 빵으로 작은 짜파티 같은 뿌리(Pooris)도 있다. 마음 놓고 많이 먹으면서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난(Naan)이라고 불리는 빵이다. 짜파티 보다 좋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숙성시킨 빵의 일종으로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난은 화덕에 구워야 하기 때문에 탄도리(tandori)가 있는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다. 본래는 음식을 쌓아 먹도록 만들어진 것이지만 담백한 그 맛 자체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많다. 물론 버터나 마늘 향을 곁드린 난도 있다. 짭짜름한 버터 난에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인도의 낭만이다.
인도의 대표적인 요리에는 인도의 카레라 부르는 커리(Curries)가 있다. 커리는 육식 커리와 채식 커리로 나뉘지만 그 종류가 1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커리는 감자와 커리플라워를 주재료로 만든 야채커리로써 알루고비(Aioo Gobi)라 부른다. 바로 인도의 서민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커리다. 콩과 빠니르를 넣고 볶아 만든 고열량 커리로 인기가 있는 마타르 빠니르(Matar Paneer)도 있고, 토마토에 갖은 향신료와 코코낫과 우유와 코프타를 넣고 끌인 말라이 코프타(Malai Kofta)도 있으며, 그 이외에도 달걀커리, 치킨커리, 머튼커리 등 커리가 다양하기도 하다.
인도에서 즐길 수 있는 것 중 또 하나는 무엇보다 풍성한 과일이다. 사시사철 열대과일이 넘쳐나고 가격도 저렴하다. 과일 중의 왕은 역시 망고이다. 진한 향과 단맛이 특징인 망고의 종류도 너무 많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파파야는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도 많지만 몇 번을 먹어보면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가 있는 과일이고, 인도의 청포도, 껍질째 먹을 수 있는 구아바, 아삭거리는 사과, 인도에서 가장 흔한 바나나, 씨가 많아 짜증 나는 오렌지, 당도가 높아 인기가 있는 파인애플, 달고 수분이 많은 수박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과일들이 풍성하기만 하다.
인도의 델리국제공항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가이드를 맡아주었던 검은 청년의 손을 잡는다. 그의 손을 잡고 따뜻함을 느끼며 그동안 흘러간 오랜 세월을 기억한다. 볼펜을 달라고 외치던 소년, 캔디를 외치던 어린 아이들, 돈을 달라고 따라붙던 소녀들, 대합실에서 손으로 음식을 뭉쳐먹던 노인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인도의 문화이니까 말이다.
정들어 눈시울을 붉히는 청년의 손에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며 '잘 살아야 한다.' 하고 헤어져야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그에게서 여유와 삶에 대한 애착과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인도의 수도 델리의 국제공항을 떠난다.
인도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