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세원 교수를 기리며

  • 입력 2019.01.16 14:02
  • 수정 2019.01.16 15:00
  • 기자명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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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SNS에서 확산된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SNS에서 확산된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故 임세원 교수가 남긴 것
지난해 12월 31일, 새해를 맞지 못하고 자신의 진료실에서 안타까움 죽음을 맞이한 故 임세원 교수. 그는 숨지기 보름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이 글을 통해 임세원 교수가 평소 환자들을 대했던 따듯한 진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같이 근무한 동료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등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임세원 교수는 1996년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임 교수는 자신이 우울증을 겪고 극복했던 계기를 통해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힘을 쏟는다. 그가 우울증과 자살예방에 뛰어든 계기가 있다. 그가 전공의 시절 우울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한 환자가 퇴원한 지 며칠 만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통해 임 교수는 “이렇게 아둔한 의사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자책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자살 징후를 알아차릴 수 있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 자살 예방 자원봉사자의 정식 교재로 쓰이고 있다.

같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권순정 공군자살예방교관은 그의 추모식에 참석해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전파되면서 우리의 진심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까지도 모두 ‘보고 듣고 말하기’를 통해 서로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고인이 생전에 남긴 말을 전했다.

제 2의 임세원 없길, 안전한 진료환경구축 노력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며 부수는 일, 주먹내지 흉기를 휘두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일 등 의료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우리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더욱이 임세원 교수의 사건으로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불안감 역시 높아지며 정부 차원에서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 역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일명 '임세원법'이라 불리는 안전한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한 법안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다. 취재일 현재(1월16일 기준) 13명의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총 21건으로 집계된다. 또한 국회에서 진행된 법안의 실효성을 담보하고 진료실의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별도의 특별논의기구(TF)를 만들어 의료계와 정부, 실무협의체로서 대략적인 방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발의된 법안들의 대부분은 의료법 개정안을 내용으로 다루며 의료기관에 근무 중인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등의 행위를 할 경우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형법보다 무겁게 메기는 내용을 담았다. 더욱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을 통한 강경대응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있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 불안감을 떨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한 진료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특히 여·야가 의료인 폭행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한 목소리를 내는 만큼 오는 2월 열릴 예정인 임시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에서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복지센터·재활시설 등 정신질환자 지원 인프라를 확충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인 자립체험주택 시범사업을 통한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 도울 방침 ▲퇴원환자 지속치료를 위한 정신질환자 병원기반 사례관리 시범사업 추진 ▲자·타해 위험성 환자 응급입원위한 응급입원 수가 개선 및 평가 등 제도를 개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임세원 교수님, 잊기 않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의사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큰 울림을 주었던 故 임세원 교수. 그의 모습은 그를 보내는 가족들에서도 엿 볼 수 있었다. 임 교수의 유족은 지난 12일 추모식에서 "장례식장에서 만난 환자분들이, 남편 덕분에 잘 치유가 돼 지내고 있다며 제 손을 잡고 우셨던 많은 환자분들을 보면서, 남편이 따뜻하고 여린 마음으로 항상 환자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했던 일들이 더욱 생각났다"며 "남편의 아픈 죽음이 꼭 ‘임세원법’으로 결실을 맺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의 마음을 대신 전하며,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오빠인 임 교수를 살해한 사람에 대해 낙인을 찍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였다. 故 임세원 교수는 자신의 환자들을 정말 사랑하고, 그들의 치료를 진심으로 바랬다. 온 세상이 그들을 멸시하고 차별할 때 그 들을 치료하기 위해 삶을 바쳤다

"환자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곳에서는 근심 없이 편히 쉬시길. 그립습니다.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를 보내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남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진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동료와 제자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작성한 글로 추모식 벽을 빼곡히 채운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날 때는 언제나 선의를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선의가 타인의 선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그 결과 타인의 선함을 경험하면서 나의 모난 모습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느낀다." 그가 남긴 책을 통해서도 그가 자신의 직업에 얼마나 소명을 다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임세원 교수가 우리사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한번 돌아보며, 그런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한 발씩 힘을 보태어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내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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