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하동에서 현대적 ‘감계’를 만나다

강영로 (주)퍼시머너리 대표

  • 입력 2018.12.21 13:59
  • 수정 2018.12.21 15:01
  • 기자명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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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속도감은 눈부신 문명을 선사했지만 어느새 여유는 일부러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국제운동인 ‘슬로시티(slow city)’는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대표적 슬로시티 중 하나인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은 박경리의 ‘토지’ 배경으로도 알려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지리책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정감록 십승지 중 하나인 전설 속의 ‘지리산 청학동’을 악양면 매계리로 거론했다. 악양의 특산물 대봉감을 가공해 판매하는 (주)퍼시머너리의 강영로 대표를 만났다. 

‘감계’를 이어가다
‘감계’는 생산자와 수매관리자, 판매자가 모여 감의 양과 가격을 조절하고 이익 일부를 마을에 기부하는 조직으로 1960년대까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감의 가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협동조합과 유사한 면도 있다. 감계는 농민들 스스로가 만든 공유경제 시스템의 가장 모범적 사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판매자까지 함께 모여 전반적인 유통과정을 조율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퍼시머너리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감계의 모습을 되살려 이어간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강영로 대표는 2015년 1월 농업회사법인 (주)퍼시머너리를 설립했다.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고향인 이곳 하동으로 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는 어느덧 10년째에 접어든다. 훈훈한 공동체 문화를 기억하는 그는 고향이 상생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주)퍼시머너리에서는 일반적인 수매가격보다 좀 더 높은 가격으로 감을 수매하는 등 감단지 공동체의 상부상조를 지향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감테마파크
악양은 대봉감의 주산지로 품질 좋은 대봉감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주)퍼시머너리에서는 대봉감으로 만든 반건시 제품 브랜드 ‘설홍시’를 출시했다. 유통과정에서 오랫동안 맛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지난 4월 공동특허를 취득했다. 강 대표는 제품을 편리하고 위생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휴대가 편리하도록 낱개 포장하고 제품을 한 번 더 종이로 싸서 손으로 그대로 들고 먹을 수 있게 배려했다. 설홍시는 백화점에 선물세트로 입점하며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건강한 먹거리로 눈길을 끌었다. 

(주)퍼시머너리의 특징 중 하나는 제품이 생산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농장에 머무르며 제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면에서 마치 마을 전체가 함께 하는 ‘감 테마파크’와 같은 모습도 있다. 감이 모여져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감둔이 마을’로 불리는 이곳의 주민들이 함께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퍼시머너리가 꿈꾸는 미래다.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강 대표가 지내온 길은 멈추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지금 농업을 향한 열정으로 공유경제 실현의 꿈을 안고 끊임없는 항해를 하는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강영로 대표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판매량이 늘며 농가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열심히 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함께 잘 되고 이익이 환원되는 것이 꿈”이라고 전했다. 강영로 대표가 이끌어가는 힘찬 항해가 지역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농업을 실현하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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