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인도 바라나시(Varanasi) '불교의 성지 사르나트'

  • 입력 2018.12.14 11:19
  • 수정 2018.12.14 11:26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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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로 가기 위해서 ‘사트나’라고 하는 도시로 이동을 한다. 카주라호를 출발한 버스가 오랜만에 고산을 끼고 산악으로 들어선다. 인도의 대지에 익숙해져 버린 감각이 새로운 인도의 모습에 신선함을 느낀다. 제법 험악한 산악을 오르는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을 돌면서 힘겨워한다. 아름다운 산에 우뚝우뚝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골 풍경이 여유롭다. 

바라나시의 간지스_김석기 작가
바라나시의 간지스_김석기 작가

인도 여행에서 예정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우선 큰 땅덩어리 때문에 거리가 멀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이유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특히 버스나 기차를 운행하는 운전자들이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사트나 역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식사는 도시락으로 준비되어 있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이 많은 이곳에서는 밥과 카레가 발달하였다. 밥이 우리 것과는 너무 달라 밥 속의 쌀들이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다. 그래서 인도인들이 쌀밥을 카레에 조물조물 손으로 뭉쳐 식사하는 식사법이 발달한 것 같다.    
기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외국인 대기실이라고 만들어진 허술한 기차역 대합실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긴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 도시락을 연다. 아내가 고추장과 김을 도시락 위에 얹어주며 조심스레 얼굴을 올려다본다.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해야 하는 대합실은 시설들이 불결하고 비위생적이어서 식사를 할 분위기가 되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가 아닌가?     

사트나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약 열 시간 정도의 기차여행을 해야 한다. 침대차에서 20시간을 견디며 뭄바이에서 델리까지 이동해본 나에게 10시간 정도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물론 침대차에서의 열 시간은 지루하다. 인내력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 계획을 잘 세운다면 효율적인 기차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지나간 인도여행의 메모들을 정리하고, 스케치북을 마무리하면서 피곤해진 몸으로 한참을 졸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사르나트의 다멕스투파 스케치_김석기 작가
사르나트의 다멕스투파 스케치_김석기 작가

 
바라나시에 도착하여 호텔로 향한다. 거리에 북적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한 것을 보며 인도의 인구가 10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군데군데 보이는 사원의 지붕들이 불교 성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고는 인도를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다 보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역사의 기록보다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도시, 전통의 문화가 형성되기 이전에 전설의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도시, 바로 바라나시에 내가 서있다. 1300년 전 고승 혜초가 서있던 모습으로 그곳에 서서 꿈틀대는 인도인들의 삶을 바라본다.  

호텔의 주차장에는 사이클 릭샤 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의 시가지로 들어선다. 차선도 없고 질서도 없는 거리에서 차와 릭샤와 오토바이들이 교행과 회전을 마음대로 한다. 모든 것이 뒤엉켜 마음대로 돌아가는 순간순간들이 그저 아찔아찔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신기하게도 길들여진 곡예사들처럼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검은 피부들 속에 섞여있는 우리 부부는 외국인의 모습으로, 외화의 한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바람을 가르며 릭샤 위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바라나시의 시장골목은 활기에 넘친다. 어느 곳은 남대문 시장을 생각하게 하고 어느 곳은 반짝 시장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상상할 수 없는 시장풍경이 전개된다. 소들도, 개들도 인간들과 함께 거닐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함께 살아간다. 많은 외래문화가 이곳 인도에 상륙하여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는 바라나시지만 종교와 철학으로 다듬어진 깊이 있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바라나시는 B.C 600년경 바라문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흥사상가들이 이곳에 몰려들어 지식과 사상을 나누면서 만들어진 도시다. 오늘날에도 인도 제일의 교육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며, 철학이나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 위해 인도의 젊은이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바라나시의 영원한 과제는 종교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다. 극심한 종교적 갈등 문제로 인하여 바라나시는 항상 종교폭동의 위험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사르나트
사르나트

바라나시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붓다가 처음으로 깨달음을 설파한 ‘사르나트’가 있다. 불교의 4대성지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설법을 편 곳이다. 
'사르나트'의 유적 군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탑, '다멕스투파'다. 사르나트의 상징이며 최초의 설법을 행한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탑은 ‘다르마 차크라 스투파’라고도 불리며, 지름이 28.5m이고, 높이가 33.5m로 거대한 원형 탑이다. 단조롭고 둔탁하면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 독특하다. 큰 돌과 벽돌로 만든 이탑의 하단은 ‘마우리아’ 양식으로 꾸며져 있고, 상단은 ‘굽타’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유적 군에는 ‘다멕 스투파’이외에도 ‘다마라지까 스투파’도 있고, ‘아쇼카 석주’도 있다. 

붓다의 최초 설법지 흔적들을 돌아보며 유적 군을 나와 고고학 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출입과 촬영이 엄격히 통제된 가운데 가이드들이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사르나트 사자상’ 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교 미술품과 불상들이 눈길을 끈다.    
고고학 박물관 곁에는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라는 사원이 있다. 사르나트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유명한 이 사원의 벽면에는 붓다의 생애를 현대적인 회화 기법으로 그린 우수한 벽화 작품이 있다. 일본인 화가 ‘고우세츠노시’ 의 작품이다. 사원의 정원에 있는 보리수가 시선을 끈다. B.C 6세기경 석가모니가 득도한 곳으로 비하르(Bihar)주 가야(Gaya)시의 남쪽에 위치한 곳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에서 가져왔다는 보리수다. 

사원을 돌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항상 감사하고, 소망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문화가 바로 세계가 하나가 되는 삶의 공통분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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