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인도 잔시(Jhansi) '숨겨져 있는 도시 오르차'

  • 입력 2018.12.04 16:05
  • 수정 2018.12.04 16:26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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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에서 특급열차를 탔다. 차창을 스쳐가는 인도의 풍경이 이국에서의 낭만을 더한다. 풍요로운 전원 풍경이 계속되고 멀리 농촌의 여유가 평화스럽게 보인다. 녹색의 숲 속으로 간간이 보이는 소와 농부들이 한가롭기도 하다. 무엇을 하고 먹고 사는지 인도의 풍경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 속에 한가롭기만 하다. 

오르차 풍경_검석기 작가
오르차 풍경_검석기 작가

특급열차라 그런지 열차 안에서의 서비스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무궁화호 정도지만 이곳에서는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열차다. 승무원이 생수병도 주고, 캔디, 과자와 함께 차도 제공한다. 물론 무료로 제공되지만 제공하는 승무원의 외모가 너무 한국의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승무원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젊은 청년의 모습이다. 비스듬히 모자를 쓴 승무원의 복장이 막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달려온 사람 같다. 남루한 차림이 청결하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그의 옷차림과 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근무하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도인의 고운 심성을 느낀다. 두 시간 반 동안 인도의 시골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기차 여행이었다.  

'잔시'라는 시골 역에서 내려 오르차로 가기 위해 버스로 이동을 한다. 역  주변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진동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궁색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아이들은 관광객을 보자 달려들듯 손을 벌리며 따라붙는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다. 역 주변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강한 삶의 활력과 의지를 느낀다.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버스 역시 낡고 허술하여 친근감이 들지를 않는다. 잔시를 출발한 버스의 차창에도 한가로운 인도의 시골 풍경이 전개된다. 낮은 산과 마을을 둘러싼 나무들의 색채가 피곤해 보인다. 녹색도 아니고 단풍도 아닌 매력 없는 색채가 메말라 가는 대지 위에서 물을 기다리고 있다. 

좁은 길을 달리는 버스가 덜컹거린다. 뒤뚱 거리는 버스 앞으로 마을 골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버스가 멈춘다. 무엇인가 장대를 메고 달리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꽃가루 같은 것을 뿌린다. 장례행사다. 긴 막대기 두 개에 시신을 넓은 보로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달린다. 이 세상을 떠나는 인도 사람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다. 이 세상을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 떠나는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씁쓸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는 동안 어느새 덜컹거리던 버스가 오르차로 들어선다. 상가와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줄지어 있는 가게들 중간에 ‘맛있는 식당’이라는 한글 간판이 보인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어 간판이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렇게 깊은 인도의 산속에 숨겨진 마을에서 한국인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세계를 향한 한국인의 열정을 보는 것 같아 긍지심이 느껴진다. 콘크리트 벽면 위에 쓰여진 ‘라면’, ‘수제비’라는 글씨가 더욱 정겹기만 하다. 
이곳은 한때 무굴제국의 제후국으로서 명성을 날리던 곳인데 지금은 조그마한 마을로 전락하였다. 오르차는 무굴제국 시대부터 형제간이나 부자간에 왕위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왕위 계승 문제로 전쟁이 있을 때마다 그 전쟁터가 되곤 하였다.  

오르차 제항기르마할에서_김석기 작가
오르차 제항기르마할에서_김석기 작가

아버지를 제거하면서 왕위를 탐했던 ‘살림’이라는 왕자가 있었다. 반란에 실패한 ‘살림’이 오르차로 도망을 해오자 이곳의 왕이었던 ‘비르싱데오’가 그를 맞아들여 궁전을 짓고 그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접을 하였다. 그 성이 바로 오르차의 유적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제항기르 마할’이다. 사각의 궁전 가운데에는 노천목욕탕이 있고 목욕탕을 내려다보며 즐겼던 난간관망대도 있다. 비밀방과 비밀 통로들이 많아 은밀한 옛 왕궁의 비밀을 찾아 미로를 헤맨다. 궁전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오르차의 마을이 온통 유적군으로 옛 명성이 대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옥탑에는 원숭이 떼들이 노닐고 있다. 살림왕자가 피신한지 3년이 무굴제국의 황제가 죽음으로써 살림왕자가 무굴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였다. 따라서 오르차는 살림왕자의 비호아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제항기르마할'의 곁에는 '쉬시마할'이 있다 지금은 숙소와 식당으로 개조되어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궁전 숙소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오르차에 왕이 기거하던 궁전은 ‘라즈마할’이며, 그 곁에는 왕의 후처가 기거했던 ‘프라빈 마할’이 있다. 그곳은 지하에 배수관을 설치하여 땅 밑으로 계속 물이 흐르게 하여 항상 푸른 정원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바르싱데오의 둘째아들이 형수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누명을 쓰고 그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투신자살을 하였던 ‘팔키마할’도 있고, 유럽의 고딕양식을 본뜬 것과 같은 ‘차투르부즈만디르’ 사원도 있다. ‘차투르부즈만디르’는 높은 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사원이어서 이곳에서 오르차의 전망을 즐기는 데는 가장 좋은 곳이다. 오르차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은 ‘락쉬미 나라얀 만디르’에서는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그려진 벽화를 감상 할 수가 있다. 잔시의 여왕이었던 ‘라니락쉬미바이’와 영국군의 접전 모습, 세포이항쟁 당시의 여왕의 모습,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스트로 된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소재로 한 작품 등을 감상한다. 전성기를 누리던 오르차가 이제 인도에서 숨어있는 유적군으로 전락했다. 이곳에는 왕도 없고 권세도 없어진지 오래다. 그저 과거를 보며 화려했던 그들의 생활을 역사의 흔적으로 여기며 관광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붉은성에서 필자
붉은성에서 필자

가장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권세를 갖는 것일까? 부를 축적하는 것일까? 가장 행복한 삶이란 인생을 살면서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이 바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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