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인도 아그라(Agra) '사랑의 타지마할'

  • 입력 2018.11.23 19:06
  • 수정 2018.11.23 19:07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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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스케치_김석기 작가
타지마할 스케치_김석기 작가

세계 불가사의라는 인도의 하얀 기적 ‘타지마할’을 보기 위하여 자이뿌르에서 아그라로 향한다. 신선한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달리는 길 양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유채꽃 들판이 넓기도 하다. 대지의 중간 중간에 마을을 이루고, 그곳에서 정겨운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풍경을 만난다. 낡은 판자 집 비좁은 네모 상자 안에서 머리를 깎고 있는 이발사의 모습이 보이고, 과일을 파는 거리의 아낙도 있다. 손을 흔드는 어린이들도 있고, 차창을 두드리며 ‘볼펜’ ’캔디‘ 를 외치는 검은 소년들의 간절함도 있다. 자이뿌르에서 약 200km를 달려 아그라까지는 30km 쯤 남은 곳에서 무굴제국의 악바르 황제가 1571년에 건설하여 14년간 수도로 사용하였다는 ‘파테프르시크리’성을 만난다. 붉은 천연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이다. 황제는 물이 부족하여 ‘파테프르시크리’를 버리고 결국은 수도를 아그라로 옮겼다. 거대하게 만들어진 성과 도시는 버려져 숲속의 전설이 되었다. 석공들이 황토 빛 천연 붉은 자연석을 여기저기에서 다듬고 있다. 성을 보존하고 유지하려고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높이 54m의 이슬람 사원을 비롯하여 옛 시가지였던 올드시티, 무굴문화의 꽃이라 부르는 왕궁, 황제를 모셨던 100명의 시녀들이 머물렀던 판츠마할, 모든 문화와 종교를 포용했던 악바르 황제가 종교지도자들과 만났던 면담소 등 투박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되어있다.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된 아름다운 유적들이다.  
악바르 황제의 천도길 따라 ‘파테프르시크리’에서 아그라로 들어선다. 곧바로 타지마할로 향한다. 인도에서 가장 엄격한 검색대를 통과 하여 타지마할로 들어선다. 양 옆으로 가지런히 서있는 무굴정원의 상록수 뒤편으로 멀리 하얀 우유빛 대리석의 타지마할이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며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타지마할의 양쪽에는 회교사원들이 붉은 돌로 지어져 있어 더욱 타지마할을 신비스럽게 만든다.    
타지마할은 인도의 충격이며, 인도의 아름다움이다. 감히 타지마할로 다가서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서 바라볼 뿐, ‘예술의 극치’란 언어를 이런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물’, ‘알라신의 왕좌’, ‘인도의 보석’, ‘왕관의 궁전’ 등 다양한 표현을 했지만 ‘예술의  극치’ 앞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타지마할로 접근을 한다. 넓은 공간 신비스러운 대리석의 우윳빛, 보석과 돌의 만남, 보석위에 부딪치는 태양 광선의 요술, 강가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등이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타지마할에서의 필자
타지마할에서의 필자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으로 1632년부터 22년간에 걸쳐 무굴황제 샤자한(Shah Janhan)이 건축한 건물이다. 17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았던 그의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이 15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샤자한은 그의 부인 뭄타즈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를 위해 아름다운 묘를 만들었다. 타지마할은 아그라성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져 야무나(Yamuna)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세워진 궁전형식의 묘묘(墓廟)로 건축에 동원된 인부가 2만 명이고, 코끼리가 1000마리다. 이란 출신 우스타드이샤(Ustad Isa)가 설계를 하였으며, 프랑스, 터키,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 우수한 기술자들이 동원되었다. 건축방법은 하얀 대리석 위에 꽃문양을 그리고 그 문양을 파낸 다음 그 홈에 아름다운 색채의 돌이나 보석을 박아 넣는 일종의 모자이크 방법인 ‘피에트라두라 (Pietra Dura)’ 기법을 사용하였다. 

중앙에는 황제부처의 묘관이 가묘로 모셔져 있다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찾는 참배객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세계인을 놀라게 한 세계적인 불가사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샤자한은 무리한 타지마할 조성과 수도를 옮기는 문제 등으로 국가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게 하였다. 결국 국가는 흔들리고,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에 의하여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은 샤자한의 총애를 받던 모든 왕자들을 죽이게 되고, 1658년 샤자한은  왕권이 박탈되어 감금의 상태가 된다.  
아름다움 속에 젖어들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타지마할의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케치북을 펴고 옮겨 보지만 그 아름다운 곡선과 문양을 어떻게 옮길 수 있겠는가. 과연 ‘예술의 극치’를 만드는 정점은 존재하는 것일까? 떠나기 싫은 타지마할의 모습을 카메라에 아내와 함께 담아본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타지마할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아보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다. 
샤자한이 멀리 성에서 이곳 타지마할을 바라보았다는 아그라 성으로 향한다. 아그라성은 1566년 무굴의 제3대 황제였던 악바르가 지은 것으로 높이 20m, 폭 2.5k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다. 

인도의 여인_김석기
인도의 여인_김석기

이곳은 아들 아우랑제브의 학대로 ‘포로의 탑’이라고 불리우는 ‘무삼만버즈(Musamman Burj)’에서 8년 동안의 감금생활을 한 샤자한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무삼만 버즈는 아그라성의 붉은성 가운데에서도 하얀 대리석으로 독특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타지마할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풍경을 바라다 볼 수가 있다. 샤자한은 무삼만 버즈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누워있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애절한 사랑을 노래했다. 사랑을 위해 국가를 잊었던 그는 사랑을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며 쓸쓸히 생의 말로를 마감했다. 
1666년 샤자한이 죽어 타지마할의 아내 곁에 나란히 묻혔다. 야무나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기의 묘를 타지마할과 똑같이 만들고 타지마할과 다리로 연결하여 영혼의 가교을 만들려고 했던 그의 사랑이야기는 영원한 미완성의 전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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