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박학심문 하브루타 독행의 후츠파

인공지능과 중용 Vol.18

  • 입력 2018.11.23 18:17
  • 수정 2018.11.23 18:19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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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17장부터 19장은 너무나 유교적 냄새가 나서 중용이라는 책 제목이 아깝다는 생각에 생략하고, 내용이 많은 20장으로 넘어가서 미래를 위해 논쟁거리가 되는 중요한 문구를 골라서 미래를 위한 해법인문학으로서의 중용에 맞는 비판과 해석을 전하려 한다. 20장에서도 삼강과 충효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유교적 주장들은 오랫동안 ‘던바’의 숫자 내에서 가족처럼 살아온 인간성에도 맞지 않고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의 투명한 삶에도 맞지 않기에 생략한다. 고전들이 거의 그렇듯이 당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너무나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도리를 설파해두었지만 변치 않는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이다. 20장은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공자는 좋은 인재와 현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제 인재와 현인은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과 정치로봇을 따라갈 가능성이 없다. 

지혜와 인애와 용기를 천하의 달덕達德으로 보는 면은 세월이 지나도 인간의 몫으로 변치 않겠지만 정보를 제한한 게임의 영역에서 인간적 지인용知仁勇이 더 필요해질 것이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달도達道는 인공지능의 영역일 것이다. 호학好學과 지인용은 수신修身의 방법에서 삶을 체험하며 즐기는 방법으로 변할 것이다. AI에 의해 생이지지生而知之가 가능한 세상에서 학이지지學而知之와 곤이지지困而知之는 일부러 무식함을 선택한 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의 영역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체 문구를 읽어보려거든 검색을 통해서 해결하기 바란다. 

반면 20장에는 필자를 매혹하는 3가지 문구가 있다. 우선 예측능력이 없으면 망한다는 ‘범사凡事 예즉립豫則立 불예즉폐不豫則廢’이다. 다음은 성자誠者 천지도야天之道也 성지자誠之者 인지도야人之道也이다. 성지자誠之者는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미완의 노력들로 해석된다. 끝으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천지우주의 성誠을 향해 다가가는 노력을 위한 5가지 방법이 나온다.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慎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인데, 학문의 기원으로 알려진 이 박학심문博學審問 구절은 학이지지學而知之와 곤이지지困而知之로 성지자誠之者하기 위해서는 늘 독실하게 행동하라는 독행篤行으로 끝난다. 

필자는 중용 20장의 결론 부분이 이스라엘 교육의 대표적인 모토 두 가지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넓게 공부하고 깊이 묻고 선택하고 요약해서 정리하고 생각하여 판별하기 위한 토론과 예측을 해보고 자기주도성을 중심으로 용감하게 삶을 전개하라는 것은 하브루타(havruta)와 후츠파(Chutzpah)의 강령이다. 하브루타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서 생각의 뿌리를 깊게 파는 방식이다. 후츠파는 과감한 도전을 통해서 활동의 영역을 넓게 확장하는 정신이다. 하브루타는 친구 하베르라는 말에서 왔다. 그래서 자신을 친구로 삼고 자문자답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중용에 나오는 박학심문신사명변 4단계가 하브루타의 단계이며 5번째 독행이 후츠파이다. 

그런데 하브루타라는 단어가 친구에서 나왔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스승이 아닌 친구라는 점이 중요하여서 유교적 위계질서와는 맞지 않는다. 대화하는 사람들은 서로 스승도 되고 제자도 되는 친구여야, 서로 배우다가도 상대를 의심도 하는 열린 마음 열린 사고로 유도된다. 토론에서 상하관계가 되면 질문의 선택에서 자기검열에 빠지게 되고, 질문의 범위가 좁아진다.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아는 것에 대한 의심이며, 의심이 질문을 통해서 연속되는 것이 학문(박학심문)이다. 그런데 권위 있는 스승과의 대화에서는 의심을 질문하지 못하게 된다. 괌에서 KAL기가 추락했을 때에도 어느 외국 작가는 유교적 서열문화가 추락의 원인이라 꼬집었는데 부기장의 지적을 기장이 무시하면서 부기장이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이 절망의 단초였다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을 상하관계가 지배하면 균형을 잃어버린 결말로 간다. 

그래서 스승이나 선배에게 배우는 방식은 단기적 학습에는 좋지만 생각하는 습관에는 매우 불리하며 장기적으로 창의적 질문과 결단을 만드는 것에 불리하다. 창의적 질문을 만들지 못하면 지식재산권의 초기단계인 발상과 발명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래서 스승에게 배운다는 느낌은 생각하는 습관에는 불리하다. 그리고 현대에는 배운 지식의 유용성을 오랜 시간 담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재 예상되는 지식의 유용성이 아니라 늘 미래의 환경을 생각해보는 인식전환의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한데 하브루타는 고정관념을 깨도록 돕는다. 한국에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권위 있는 스승을 그냥 친구처럼 대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은 하브루타이면서 동시에 계급장을 떼고 따지는 후츠파의 정신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하브루타는 아이디어의 교환과 진화를 동시에 자극하므로 그 사회의 집단지성의 수준을 높인다. 창조경제는 하브루타와 관련이 깊고 창업국가는 후츠파와 관련이 많다. 

후츠파는 당돌하며 뻔뻔한 도전정신, 밑져야 본전 정신,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어도 과감하게 나서는 용기로 해석이 된다. 모든 유대인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역사를 배운다. 그리고 한국인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열배가 많은 적을 물리친 역사를 배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역사서에 없다면 후츠파란 말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역전과 반전의 기회와 틈새가 늘 있기에 후츠파도 계속 그 가치가 보존되고 있다.

후츠파 정신이 사회적으로 적용되는 7가지 요소로는 형식탈피(Informality)와 비공식적 분위기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권위탈피(Questioning Authority)와 계급타파로 지위에 주눅 들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용기, 융합적 창발성(Mashing up)으로 전공 영역을 뛰어넘는 T자형 인재의 용기, 위기감수(Risk taking)와 변화의 관리로 실패해도 재기의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과 실패로 배우기(Learning from failure)를 당연하게 여기는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는 실험정신, 목적우선(Mission orientation)으로 과정적 난관에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용기, 끈질김(Tenacity)으로 투지를 발휘하며 버티는 인내심이다. ‘성장을 계속 추구하는 정신’은 몰입의 최상위 조건으로 소개하는 구동력이다. 이러한 7가지 정신이 성지자의 길일 것이다. 박학심문 하브루타는 다음에 살펴볼 26장의 박후즉고명博厚則高明으로 독행의 후츠파는 28장의 우이호자용愚而好自用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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