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인도 델리(Delhi) '오! 신이여!'

김석기 작가l승인2018.11.09l수정2018.11.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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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석굴의 프레스코화에서 받은 충격을 되새김할 시간도 없이 아우랑가바드를 출발한다. 델리까지 가야 하는 기차여행이 20시간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가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창밖을 내다보며 기차여행을 생각하는 낭만이 없는 좁은 침대칸에서의 20시간은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스케치북과 메모지를 정리하면서 시간을 잊어보려 하지만 지루함은 여전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흔들리는 기차의 방해는 말릴 수가 없다. 

▲ 델리의 붉은 성에서_김석기 작가

하룻밤을 지새우고 한나절이 지나 오후가 되면서 델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답답하여 난간으로 나가 대지를 향해 심호흡을 해본다. 지평선 위에 여기저기 검은 회색의 텐트들이 나타난다. 도시가 가까워 왔나 보다. 얼기설기 지저분한 움막들이 집단을 이루고, 대지의 낮은 나무 밑에는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앉아있다. 문화시설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삶의 현장이다. 소와 돼지 그리고 개와 닭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소들이 집 주위를 서성이고, 쓰레기를 뒤적이며, 사람인지 동물인지 뒤엉켜 살아가는 풍경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텐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어두운 곳에는 냄비 하나가 달랑 반짝거릴 뿐 눈에 띄는 생활 도구들이란 없다. 비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이다. 땅은 넓고 문화는 없고, 생활은 있고 돈은 없다. 명상은 있고 행동은 없다. 무소유의 삶은 있고 해탈의 경지는 없다. 그저 수도사의 삶과 같은 삶을 인도인들이 인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들의 삶을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생활을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 지수도 높고, 평균 수명도 길다는 것이다. 

B.C 3천 년경 형성되었다는 전설의 도시 델리는 인도의 수도다. 대통령 궁을 비롯하여 정부 요인들이 산다는 호화로운 저택을 지나 한참을 달리면 마하트마 간디를 모신 추모 공원, 라즈가트(Raj Ghat)가 나타난다. 사방에서 들어갈 수 있도록 같은 모양의 대칭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중앙에는 제단이 있고, 흑색 대리석 위에 헤이람(Hai Ram)이라고 쓰여 있다. 간디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오 신이여!’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인도인을 걱정하는 마하트마 간디의 마음이 그의 영혼과 함께 살아있다.  

▲ 인도의 여인들_김석기 작가

라즈가트 북쪽에는 또 하나의 추모공원이 있다. 인도가 독립하여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와 그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 그리고 간디의 두 아들이 안장된 곳으로 ‘평화의 숲’이라는 뜻을 지닌 ‘샨티 바나(Shanti Vana)’라 부르는 곳이다.   
인디라 간디는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전공하였다. 그는 총리인 아버지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맡아 일하면서 인도 정치계에서 정치인으로써의 꿈을 키워간다. 인도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정치가로 출발한 그는 1959년에 인도국민회의파 당수가 되었고, 1966년에는 총리에 입각하였다. 강권정치를 편다는 이유로 1977년 총선에서 패배의 아픔도 맛보았다. 그러나 1980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재 입각하는 대단한 힘을 과시하기도 한 인도의 여성 지도자였다. 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그의 아버지 J. 네루의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부터 3년에 걸쳐 J. 네루가 옥중생활을 하면서 그의 딸에게 보낸 196통의 편지는 우리들에게 균형 잡힌 세계관과 역사관을 새롭게 알게 하고, 지도자의 길이 어떤 것이며 지도자가 가져야 되는 새로운 리더십, 그리고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관과 가치관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사연은 인디라 간디를 인도의 지도자로 키우기에 충분하였으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여 순직한 8만 5천 명의 인도군 병사의 이름이 알알이 새겨져 있는 곳이 있다. 높이 42m로 만들어진 위령탑 ‘인디아 게이트’가 바로 그곳이다. 또 인디아 게이트 옆으로 공원을 겸한 원형 광장으로 구성된 ‘코넛플레이스’가 있다. 
영국은 1911년 붉은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올드델리를 벗어나 외곽에 신도시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바로 ‘인디아 게이트’와 ‘코넛플레이스’를 두 개의 축으로 하는 방사형 도시 계획이었다. 지금의 뉴델리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인디아 게이트에서 20분 정도 달리니 태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높은 탑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뉴델리에서 최고 볼거리로 꼽히는 ‘꾸뜹 미나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유적군은 12세기에 흰두 왕국을 무너뜨린 정복자이며 술탄국의 첫 군주인 ‘구뜹 웃딘 에어백’ 이 흰두교에 대한 이슬람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인도에서 가장 높다는 ‘꾸뜹 미나르’는 그 높이가 72.5m로 정상에서 델리를 감상하는 관망이 인상 적이라는데 1982년 이후 안전사고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하여 지금은 탑을 오를 수가 없다. 

▲ 바하이사원

도자기 벽돌을 구워 5층으로 쌓아 올리면서 중간중간 코란경을 새겨 넣은 문양들이 아름답다. 거대한 곡선을 말아 만든 듯한 독특한 형태, 붉은 벽돌이 태양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오묘한 색채감, 코란경을 새겨 넣은 기하학적 문양들의 추상성에서 오는 독특한 형상미 등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예술품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곁에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가 있다. 흰두교를 붕괴시킨 꾸뜹 왕조가 27개의 흰두 사원을 헐어내고 그곳에 이슬람 사원을 세운 것이다. 종교적인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온 사원의 기둥들이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서 있다. 뉴델리에는 하얀 연꽃의 형상으로 세워진 거대한 ‘바하이 사원’이 있다. 옛 성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현신한 동등한 존재라고 믿는 바하이 종교는 이슬람교에서 분파된 신흥종교로 전 인류의 형제화, 종교의 통일, 모든 국가의 통합 등을 주장한다. 바하이 사원에서는 오직 침묵만을 지키면 된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은 절대적이고 동일함으로 사원에서는 각자의 종교 의식에 따라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종교의 갈등과 분쟁으로 시달린 인도의 종교를 통일해 보고자 하는 바하울라((Baha Ullah)의 생각이 바하이교를 창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끝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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