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예술을 담아내다

인생의 사진을 찍다

  • 입력 2018.09.20 14:53
  • 수정 2018.09.20 16:48
  • 기자명 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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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이자 모기스튜디오 대표인 김민곤 작가는 1993년 미술 전문잡지 ‘미술세계’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7년간 근무하며 미술 입문을 했고 2000년 미술전문촬영 스튜디오를 만들어 2018년 현재까지 26년간 미술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순수창작집단 ‘스폰지’ 멤버로 야외현장 설치작업을 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대안공간 ‘문화살롱 공’ 멤버로 전시기획 운영을 했다. 사진작가뿐 아니라 전시기획, 설치작업 등 여러 가지 일에 발을 딛고 활동했던 김민곤 작가는 현재 여러 조각가들을 만나며 사진을 찍고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인태 작가의 작품 앞에서 김민곤 사진작가
김인태 작가의 작품 앞에서 김민곤 사진작가

예술의 꿈을 꾸다
김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과 그림 그리기, 흙 만지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찰흙을 쌓아놓고 고려청자를 만들어 보기도하고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만화도 그리고 중학교때는 유화기름 냄새가 좋아 무작정 캔버스를 들고 혼자서 이곳저곳 풍경화를 그리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만든 미켈란젤로 두상이 미술선생님 눈에 띄어 미술부에서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당시 규율이 엄했던 미술반 분위기가 싫어 미술부를 선택하지 않았었다. 그때 만약 그렇게 좋아했던 미술을 정식으로 받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김작가는 가끔씩 회상을 해본다고 전했다.

그렇게 김작가의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미술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인연처럼 미술을 접했고 오랫동안 운동(태권도)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내하는 훈련을 통해 국가대표를 꿈꿨던 열망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일반대학에 진학했던 김작가는 친구 따라 찾아갔던 사진동아리에서 운명처럼 사진을 만났고 처음 접해보는 흑백암실과 친구들, 카메라를 사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나중에 대학에 사진과라는 것이 있는 줄 알았고 1년 후 학교를 자퇴해 다시 입시시험을 보고 신구대 사진과에 입학을 했다.

사진 분야에도 여러 가지 방향이 많지만 우연한 기회에 주어진 미술전문분야의 사진기자 생활은 마치 천직인 것처럼 즐거웠고 열심히 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어린 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미술을 다시 만나고 직접은 아니지만 그 주변에서의 활동이 만족감을 대신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MOGI 스튜디오-Artist인물展
MOGI 스튜디오-Artist인물展

미술과 함께한 사진인생
김작가가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초창기 때는 미술작품과 작가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었다.
3년 정도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는 알거 같았지만 우연히 미술을 전공한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그린 그림을 보고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로부터 “넌 아직 그림을 볼 줄 모르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미술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7년이 지나 어느 정도 그림 보는 눈도 생기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회사로부터 독립하면서 진정한 사진가로서 미술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 잡지사 기자로서 만났던 많은 작가들과 미술인들과의 만남이 사실은 진정한 깊이가 되지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업 작가들, 청년작가들이 삶을 진솔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없었던 작가들과의 교류와 친분으로 그들과 벗이 되고 소중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특히 조각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된 것은 노동과 예술이 접목된 조각가들의 순수함과 교류가 자연스러웠고 좋았다. 또한 작품을 사진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예술성이 작가의 손을 떠나 사진가의 시선과 조명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경험을 하면서 부터이다. 눈으로 작품을 볼 때도 여러 가지를 감정을 느끼지만 직접 사진을 찍을 때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하고 교감하게 됐다.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입체를 다루는 조각분야에서의 촬영은 우선 공간을 확보하고 작품과 배경이 하나가 되어야하며 재료의 특성과 형태를 잘 파악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기술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생명과 에너지를 느끼면서 어우러질 수 있다면 더 깊이 있는 사진이 만들어집니다.” 김작가는 오랫동안 함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는 조각가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이제는 그들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노력하고 있다.

배진호 조각가 인물사진촬영
배진호 조각가 인물사진촬영

모기스튜디오를 만나다
김작가는 1999년 7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하던 미술잡지사를 퇴사하고 사진 스튜디오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중 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던 설치작업과 퍼포먼스를 하는 이용찬 선생을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특별한 자극이 되었고 ‘mogi' 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자석처럼 끌림이 강했다.

한글자음ㅌ(m),ㅇ(o),ㅇ을 두개 이어 붙여 만든(g), 사람형상으로 만들어진(i)를 이용해 영어로 만들어 쓰면 어느 곳에서든 한글을 알릴 수 있다는 애국적 소신의 바탕과 모기란 이름에서 불리는 재미난 뉘앙스로 인해 모기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Mogi는 언제나 그 의미를 항상 마음속깊이 세기며 미술계뿐만 아니라 예술적 자극이 필요한곳이라면 어디라도 날아가 바이러스를 전파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 강남 역삼동에 처음 자리를 잡은 ‘Mogi Studio’는 몇 개월 뒤 우여곡절 끝에 강남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을 아지트 삼아 모인 여러 작가들의 삶의 모습과 작업을 통해 미술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많은 변화와 새로운 감성을 키워나가게 됐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Mogi는 2011년 남산 밑에서 일산으로 이사와 그동안 미술전문촬영 스튜디오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미술영역으로 발돋움해 그동안 필요했고 꿈꿔왔던 공간을 만들었다.

김작가는 작가들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노력을 해도 작품을 만들고 창조해 내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고 작가가 된다는 건 일반인들의 삶의 방식과 많이 다르다. 평범한 삶을 거부하며 용기와 자신감, 실력이 필요하다.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무모하지만 그래서 작가의 탄생은 위대하고 존경스러워지는 부분이다. 

그런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에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작가는 2011년 미술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사진전문갤러리 ‘류가헌’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조각가 100명의 인물사진을 전시했는데 그때 미술계의 역사, 조각계의 역사적 가치를 느꼈으며 다른 사람들도 사진을 보면서 김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다. 현재 김작가는 한국도자재단에서 도예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진수업 및 촬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5월부터 지금까지 촬영과 강의가 진행 중이며 도예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찍을 수 있도록 목표를 정하고 있다.

인생의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 세상일의 좋고 나쁨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의 ‘새옹지마’를 늘 마음속으로 세기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나쁜 일이 있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고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삶의 교훈이라 전했다. 김작가는 열정이 있고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나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또 하나는 조각전문 사진작가로서 우리나라 조각가들의 인물과 생활, 작품들을 기록해 많은 작가들이 미술역사에 더 소중히 남겨지길 바라며 한국현대조각 작품들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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