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춤추는 살로메를 그린 상징주의 작가 '귀스타브 모로'

세계 스케치 여행 Vol.4

  • 입력 2018.09.12 11:28
  • 수정 2018.09.12 11:32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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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늘 의문 속에 예술도 즐기고 인생의 맛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고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일까?
예술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며 살아가는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원천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충전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충전기는 무생물적 생명력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야만 건전지는 새로운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인간은 어쩌면 건전지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간과 어떤 관계인가? 바로 건전지와 충전기에 해당하는 관계 같은 것은 아닐까? 

새로운 삶의 에너지 그것이 바로 예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생명력이다. 바로 예술이란 삶 그 자체 속에 내재하는 긍정적인 힘인 것이다. 예술은 특정인의 소유물도 아니며 또 특정인에 의해서만 제작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술은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술은 생활의 일부이며 새롭게 살아가려는 충동에 의해서 얻어지는 소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의 영혼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인생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예술은 바로 인생의 생각 속에 존재하며 그 존재는 바로 삶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석기 작가 스케치
김석기 작가 스케치

오늘은 모든 인생을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데 써버린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의 집을 찾아 나선다.
메트로 12번 Trinite d'Estienne d'Orves 역에서 하차하여 14번지를 찾아 골목길을 두리번거린다. Musee Moreau 라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골목길로 들어서 조금 오르다가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꾸니 아담한 4층집이 높이를 함께한 건물들 사이에서 작다는 느낌으로 다가선다. 
모르의 생가다. 건물의 상단 부분에 조그마하게 붙어있는 간판에 귀스타브모로 뮤제라고 쓰여있다. 오전과 오후로 나뉜 감상시간이 표시되어있다. 오후 2시부터 감상시간인데 도착시각이 오후 1시다. 기다리는 것이 싫어 닫혀있는 입구의 철문을 슬그머니 밀어본다. 모로가 살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 브르조아 가문의 위세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가볍지 않은 철문이 버티고 있다. 서서히 육중한 몸짓으로 문은 열리고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듯했던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속내를 보이기 시작한다. 좁다는 생각이 드는 현관에 안내데스크가 있고 그곳에 한 젊은이가 입장권과 도서를 판매하고 있다. 

옛날 모로가 살던 생가 그대로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서 1층의 좁은 복도로 들어선다. 복도며 방이며 모든 벽에 크고 작은 작품들로 빽빽하다. A에서 F까지 방 번호가 붙어있고 수많은 작품들에는 작품번호가 붙어있다. 작품번호로 보아 약 900점 정도의 작품이 게시되어 있는 듯하다.
모로가 그림에 쏟은 그의 열정이 대단하였음을 의심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에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세계적인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당히 작업을 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모로의 작품 '오르페우스' (1864)
모로의 작품 '오르페우스' (1864)

언제부터인가 맥박의 고동소리가 콩닥 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작다 생각했는데 분명 작지 않고, 좁다 생각했는데 분명 좁지 않은 곳 아주 크고 아주 넓은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모로의 공간에 빠져들면서 좁은 계단을 통하여 2층으로 오른다. 
모로가 사용하던 침대는 아직도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따뜻한 정감이 서려있고, 그의 사무실에서 사용했던 집기들은 아직도 모로를 기다리고 있는듯 엄숙한 방 분위기를 지키고 있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가 이집에 살고 있던 생존당시에는 마티스나 블라맹코 같은 야수파 화가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아지트로 사용했으며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3층은 또 다른 분위기로 그가 작품을 그리던 작업실이다. 높고 넓은 공간에 대작들로 꽉 들어 차 있다 제일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유니콘’이다. 1885년에 그려진 유니콘의 작품 속에는 여인들과 유니콘들이 어우러져있다. 여인들을 위한 남성의 역할을 유니콘들이 대신해주고 있는듯하다. 
모로가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은 아마도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을 것이며 그에게 많고 많은 상상력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고 결국에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에 아예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그가 동성애자라고 말들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증명할 요소도 없고, 또 증명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모로는 여성에 대한 동경과 남성으로서의 성적 충동을 유니콘을 그리면서 그 답을 정리하고자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남성도 여성도 인정하지 않는 중성주의적 상상력 속에서 이 작품은 완성되었을 것이다. 

모로의 생가 계단
모로의 생가 계단

3층에서 4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아주 높게 설계되어 있다.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정말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부르조아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는듯하다. 현대적인 미적조형미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즐긴 생활이 150년 전의 일이라니 그 당시의 생활을 그대로 상상하기는 힘들듯하다.
계단을 올라 4층에 들어서니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복한 승리의 현장을 그린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 작품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역시 모로는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였으며 자연주의나 인상파를 반대하고 오직 환상적인 환상 속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상징주의적 회화만을 고집하였다.
당시의 문학사조가 그러하였듯이 상징주의 문학가 랭보나 보들레르등과 함께 문학과 회화가 순수예술의 상징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역시 4층의 명작은 ‘춤추는 살로메’이다. 모로의 작품에 가끔씩 등장했던 살로메는 헤롯왕을 유혹해서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한 사실로 성경에 나타난 인물이다. 모로는 환영이라는 작품에서 피를 흘리는 요한의 목을 그리기도 하였다. 
모로는 죽기 전 집과 화실 그리고 작품 8천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모로는 그가 죽은 후에도 작품의 위치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했다. 국가는 1903년 이곳을 모로 미술관으로 꾸미고 주거공간과 작품전시공간을 구분하였고 모로와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모로는 육체적으로 죽었다고 우리가 표현하지만 모로는 영원히 살아가는 방법과 상상력을 충분히 가졌던 천재적 작가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모로의 집을 나오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머나먼 여정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새로운 충격과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꿈을 갖게 해준 모로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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