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에 희생당한 어린 아이들

  • 입력 2013.08.19 11:42
  • 기자명 이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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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에 희생당한 어린 아이들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에 갔다가 훈련 도중 파도에 휩쓸려 숨진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을 싣고 온 차량이 공주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유가족들은 다시 애끊는 통곡을 쏟아냈다. 제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 잃은 슬픔을 어찌 끊어내겠는가.

21일 오후 5시25분께 해병대캠프 희생학생들의 시신 5구가 공주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 주변은 벌써 희생자들의 친구로 보이는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 취재진 등 수십여명이 뒤엉켜 있었다. 한 어머니는 구급차에 실려온 아이가 내려지자 "안 된다. 안 된다"하며 땅바닥에 쓰러졌고, 또 다른 학생의 어머니는 시신을 부여잡은 채 "아가 엄마는 너 못 보낸다. 우리 아기 어쩌니"하며 오열했다. 장례식장 내 마련된 분향소 앞에선 "내 새끼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었네"하며 여전히 자식의 죽음을 실감치 못하겠다고 울부짖는 유족도 있어 주변의 눈시울을 적셨다.
같은 시간 공주사대부고에도 애도의 물결이 넘치고 있었다. 학교 정문 앞 비석에는 "하늘에서는 편히 쉴수 있도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거나 "사랑하는 아이들아 좋은 세상에 가렴" "사랑하는 57기 아이들아 부디 편히 쉬거라" 등 학교 선배, 시민 등의 추모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유족 측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모든 캠프를 중단할 것과 이번 캠프 참가학생들의 사망 등과 관련해 책임자의 엄벌을 촉구했고, 교육부가 이같은 핵심요구사항을 수용하자 태안보건의료원(임시빈소)에서 장례식장으로의 운구에 합의했다.


공주사대부고 교장 직위해제

같은 날 교육부는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 도중 학생 5명이 숨진 충남 공주사대부고에 감사반을 긴급 투입했다.
교육부는 이날 감사총괄담당관을 반장으로 한 감사반 5명을 공주사대부고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감사반은 이번 캠프 훈련과 관련해 계약 체결과 업체 선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는지 등에 대해 집중 점검하고 결과에 따라 관련자 조치와 제도 개선을 추진키로 했다.
교육부는 또 이날 이상규 공주사대부고 교장을 직위해제했다. 교육부는 “본인이 사퇴하겠다는 의사도 밝혔고, 경찰 수사도 받고 있어 교장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교장 직무대행을 임명키로 했다.
이 교장은 이날 정오쯤 숨진 학생 5명의 임시 빈소가 마련됐던 충남 태안보건의료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표명한 뒤 “책임을 져야 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사퇴 밖에 없다”며 “사퇴 후 사법판단과 징계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 교장의 사퇴 의사 표명에 대해 즉각적인 파면을 교육부 측에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22일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를 열어 해병대를 사칭한 유사 캠프에 학생이 더 이상 참여하지 않도록 긴급 지시했다. 또 공주사대부고에는 학생과 학부모 등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임상심리사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심리치료지원팀을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청소년 숙박캠프 地自體에 사전신고 추진… 또 뒷북친 정부

 주사대부고 2학년생 5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와 관련, 여성가족부는 앞으로 모든 숙박형 캠프에 대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사전 신고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민간 업자가 학생 수백명을 며칠씩 데리고 위험한 활동을 하더라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어도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해 전과 22범의 민간 업자가 국토 대장정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자 여성가족부와 국회는 뒤늦게 부랴부랴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개정했다. 개정법엔 '이동·숙박형 청소년 활동'을 주최하려면 지자체에 반드시 신고하는 의무 규정이 담겼다. 이 법은 올 11월에야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개정법은 국토 대장정처럼 장소를 옮겨가면서 숙박하는 활동만 신고 대상으로 했을 뿐, 한곳에서 며칠씩 묵는 숙박형 캠프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여성부는 최근에 개정한 법안을 다시 개정해서 앞으로는 이동하면서 캠프 활동을 하든, 한곳에서만 활동하든, 모든 숙박형 캠프는 신고 대상에 넣겠다는 생각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작년에 법을 개정할 때도 모든 숙박형 캠프를 신고 대상으로 하는 법안이 함께 발의됐었는데, 의원들 사이에서 '그건 지나친 규제'라는 의견이 있어 일단 문제가 드러난 국토 대장정만 관리하는 방안이 채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에 다시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고치면, 개정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또다시 법을 뜯어고치는 상황이 된다. "미리 제대로 법안을 만들어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사고가 터지고 나면 허겁지겁 뒷북을 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여성부 고위 관계자는 "유스호스텔은 숙박 시설이기 때문에 수련 프로그램을 운영할 능력이 안 돼 재위탁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재위탁을 아예 못 하게 하거나, 하더라도 근처 청소년 수련원이나 청소년 수련관 등 검증된 곳과 협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작년 연말을 기준으로 정부 허가를 받고 운영 중인 청소년 수련 시설은 전국에 총 753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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