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맥나마라'의 오류와 안회의 득일선

인공지능과 중용 Vol.13

  • 입력 2018.07.31 17:45
  • 수정 2018.07.31 17:48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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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8장과 10장을 이어서 생각해본다. 지난 칼럼은 어차피 인간은 측정할 수 없는 무수한 것들 속에서 ‘맥나마라’의 오류를 범하며 사는 중용불가능의 존재라고 했다. 다행히도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우리는 빅데이터 집기양단을 하게 되고 기술적 대량실업의 시대를 지나 기술적 유토피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핵전쟁과 기상이변이라는 변수를 극복한다는 전제로 말이다. ‘맥나마라’의 오류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그는 월남전에서 패하면서 자신이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하여 실패했다며 반성을 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백전불태百戰不殆란 말이 있지만 지피도 지기도 어려운 일이다. 
미국은 ‘호치민’이 지하에 마을과 학교와 무기고와 전투교련장을 만들고 30년에 걸쳐 세대를 이어서 항전할 준비를 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월남에 가보니 적군이 보이지 않았다. 고엽제를 뿌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미군들도 필자의 선친처럼 보이지 않는 적에게 저격을 당했다. 당시 소대장이었던 선친은 수색대였는데 월맹군들은 몰래 숨어서 소대장을 저격했다. 그러면 그 소대장을 안고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병사들보다 장교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급히 장교를 더 뽑아서 보내지만 경험이 부족한 그 장교는 또 저격을 당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 것보다 무서운 전쟁이 어디 있을까? 미국은 한국인 전사자들을 5,000명 넘게 하고선 철수해야 했다. ‘맥나마라’는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현장의 모든 변수를 지피지기하면 100% 성공이다. 그리고 2) 잘  모르는 변수가 있는데 그 변수는 꽤 중요하거나 치명적일 것이라 치고 대비를 하면 80% 성공이다. 그런데 3) 그 변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대충 준비하면 50%의 실패가 기다린다. 최악은 4) 측정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것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100% 실패한다. 미국은 3번과 4번의 중간쯤이었다. 

‘안회’가 아무리 성인군자에 가까운 순임금의 후생으로 존경을 받더라도 2번의 자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2번 80%의 성공률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20%의 사고가 날 수 있다. 공자를 다룬 영화에서 ‘안회’는 겨울에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져서 죽게 된다. 흐르는 물은 얼음의 두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유속이 빠른 곳은 덜 두껍게 얼게 된다. 수레가 강의 복판에 이르면 위험도는 더 올라간다. 그런데 인간은 강가의 얼음두께를 측정한다. ‘선생님이 계신데, 어찌 감히 먼저 죽겠나이까(子在, 回何敢死)’ 했던 그는 스승보다 일찍 죽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과 비슷했거나 더 컷을 것이다. 학문적 수제자는 역사의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매사에 겸손하고 주도면밀했던 ‘안회’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득일선得一善 권권복응拳拳服膺만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진인사盡人事대천명待天命을 하는 성지자誠之者 인간은 기껏해야 매순간 하나의 선을 잘 붙잡는 집중력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렇게 시간을 쌓으며 내공을 쌓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그래도 득일선하고 권권복응하며 각자가 모두 무언가에 덕후가 되어가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의식적으로 무식無息해도 결국은 무식無識한 존재이다. 빅데이터와 딮데이터는 우리 의식으로 측정되지 않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따라서 내공을 쌓으며 덕후가 되어가는 과정의 행복을 권권복응해야 한다. 권권拳拳은 잘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는 즐겁게 바쁜 손놀림으로 보면 된다. 우리가 두뇌를 쓰는 것보다는 손놀림에세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전두엽이 의식적으로 해석하는 정보는 우리 감각이 받아들이는 정보량의 약 20만분의 1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래서 두뇌보다 몸이 더 영리하다는 말이 있다. 중대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의식이 섣불리 설치면 몸이 주는 20만 배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찍은 답을 고치면 더 틀리는 이유도 몸이 찍었는데 두뇌가 고민하고 고쳐봐야 더 적은 정보로 수정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생존의 무기가 없이 피식자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았던 영장류 인간은 다급한 생존법과 번식법 외의 섬세한 데이터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 두뇌는 그렇게 회로가 연결되어버려서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우리는 피곤해진다. 취하거나 굶으면 쓰러진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영리하고 우리 손보다 힘이 센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즐겁게 바쁜 손놀림의 행복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미래사회는 골치 아픈 생각과 힘이 드는 일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물론 골치 아픈 생각과 힘든 일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대다수 인간들은 텃밭과 정원을 가꾸고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요리를 하여 파티를 준비하는 손놀림이 풍부한 덕후들의 아날로그로 위장된 공통체 스마트 마을에서 살게 된다. 물론 인공지능과 센서로 도배가 된 세련된 장치의 스마트 도시에서 훨씬 다양한 취미를 가상현실에서까지도 즐기게 될 것이지만 미래의 기술적 유토피아는 기술의 흔적을 숨기는 캄테크(calm+technology)가 표준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지능을 숨기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묻거나 요구할 경우에 즉각 또는 조금 미리 나서겠지만 평소에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기본으로 삼게 된다.

이제 곧 불보무도不報無道 남방지강南方之強을 애쓰지 않아도 무도한 인간들을 감시할 시스템이 전 지구를 덮을 것이다. 빠른 방어와 보복은 AI로봇 시스템이 하게 된다. 데이터는 모두 파악되므로 늦은 복수는 법과 사회에 맡겨도 될 것이다. 동시에 수십 수만 명의 얼굴을 인식하고 신원을 파악하는 AI 안면인식은 이미 많은 수배범을 인식하여 그 위치를 경찰에 알리고 있다. 이제 죄를 짓고는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축구를 보러 갈 수 없다. 얼굴을 가리자니 더 의신을 받을 것이고 얼굴을 일부라도 드러내면 인공지능이 바로 영상분석을 해버린다. 갑옷을 입고 목숨을 거는 북방지강北方之強도 드론과 로봇이 대신하게 된다. 만물인터넷+블록체인이 인공지능으로 모두 파악이 되면 국가가 무도無道해질 수가 없다. 개표조작은 까마득한 옛 역사가 된다. 전 인류는 모든 인간의 두뇌와 심리를 파악한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화이불류和而不流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상에 살게 된다. 인공지능으로 조절되는 입는 로봇의 도움으로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중립이불의中立而不倚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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