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중화시중(中和時中) AGI와 무기탄(無忌憚) 인간

인공지능과 중용 Vol.8

  • 입력 2018.07.06 18:40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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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AGI+블록체인 불가리(不可離) 시대의 ‘도파민 신독(愼獨)’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에서 개개인의 희락애욕(喜樂愛慾)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이든 가상현실에서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이 인공지능+가상현실의 도움으로 보편적이 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제시되었다. 연장선상에서 중용의 다음 문구들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할 부분들이 등장한다. 중화(中和)와 시중(時中)에 관한 본문의 해석은 언제든 검색이 가능하며 중용 시리즈로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장식한 사람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대와 과학과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는 일이다.

희노애락지미발喜怒哀樂之未發 위지중謂之中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 위지화謂之和 중야자中也者 천하지대본야天下之大本也 화야자和也者 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 치중화致中和 천지위언天地位焉 만물육언萬物育焉 / 중니왈仲尼曰 군자중용君子中庸 소인반중용小人反中庸 군자지중용야君子之中庸也 군자이시중君子而時中 소인지중용야小人之中庸也 소인이무기탄小人而無忌憚

첫 구절에서 감정들이 미발(未發)된 상태를 중이라 불렀는데, 생물의 감정은 생존을 위해 진화하였기에 미발 자체가 불가능한 면이 있다. 단세포들도 감정 물질을 바꾸어가며 생존한다. 천적을 피하며 공기호흡을 하던 올챙이의 딸꾹질은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다. 따라서 미발에 대한 원저자의 속뜻은 감정의 개입이 힘든 의미기억에 몰입된 상태를 중(中)이라 했을 것이다. 천지의 이치를 추구하는 의미기억 안에서 노느라 감정이 있으나 낮게 균형을 이루어 없는 듯 느껴진 상태 말이다. 중을 천하의 대본(大本)이라 불렀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식원리들로 꽉 찬 상태를 의미한다. 의미기억은 사물의 이치를 연결하며 따지는 상태라서 수학이나 과학, 이미 알고 있는 역사나 지식을 떠올리는 상태이다. 그러다가 뭔가 새로운 지적인 자극이 일어나는 경험과 반론이나 회의, 장애나 돌발적 상황에서 감정은 다시 유발된다. 새로운 경험과 공부를 하면 감정은 저절로 일어난다. 그 감정들이 절도에 맞는다는 뜻은 새로운 경험들을 소화하는 방법이 적절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경험을 소화하는 감정의 균형이 깨지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공포의 기억인 ‘트라우마’나 중독이 생긴다. 

두뇌는 여러 감정들 중에서 특히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를 가장 잘 기억한다. 보상의 호르몬인 도파민은 중독에 빠지게 하는데 공포와 마찬가지로 쾌락은 매우 강한 기억을 남긴다. 그 밖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감정은 늘 함께한다. 희노애락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는 감정의 교감이 불가능한 자폐증의 상태인데 설마 저자가 그런 뜻으로 감정의 미발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중화中和에서 중은 변수나 새로운 자극이 없는 상태의 충만한 지적 포만감으로 본다면 화는 환경변수에 다양한 감정들과 함께 잘 대처해간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중용(中庸)과 중화(中和)는 거의 같은 말이 된다. 그리고 중(中)이 본(本)이라면 화(和)는 달(達)이다. 달도(達道)는 도를 통달함 또는 도에 다가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더 큰 지혜에 이르는 학습과정의 호르몬 순환에서도 호기심의 호르몬인 도파민 이후에 집중의 호르몬인 노르아드레날린이 나온다. 이후 성과에 따라서 엔도르핀이나 코르티솔 상태가 되고, 이후 경험을 정리하고 보람을 느낄 때에는 세로토닌이 나와서 평정을 찾는다. 인간은 이런 감정물질의 순환으로 학습을 한다. 리더의 감정순환이 좋으면 정치가 농부의 감정순환이 좋으면 농사가 잘 될 것이다. 개중절(皆中節)은 감정의 원활한 순환이며 뒤에 나오는 시간적 시중(時中)이나 인간적 적재(適材) 공간적 적소(適所)나 같은 개념이다.

최근 로봇에게 입혀질 전자피부에는 고통을 느끼는 센서를 장착한다. 로봇회사들도 로봇이 자기 몸체를 잘 보존해야만 애프터서비스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너무 뜨거운 온도나 창상을 느끼도록 하고 그럴 위험들을 빨리 피하도록 시중(時中)을 설계하고 있다. 인간에게도 고통과 감정은 시중과 달도를 위해 진화했다.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적절하게 울어야 더 오래 산다. 눈물이 스트레스 물질의 배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너무 기뻐도 스트레스가 생기므로 사람들은 눈물을 배출한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모두에서 스트레스가 생기면 눈물이 난다. 울 때 우는 것도 분노를 해야 할 때 소리치는 것도 개중절(皆中節)이며 시중(時中)이다. 여기까지는 내 생각과 기존의 해석들이 조금 다르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2024년으로 예측되고 있는 AGI의 등장과 함께 생기는 문제의 문구는 군자시중(君子時中)과 소인무기탄(小人無忌憚)이다. 한국에 몇 대 없는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에서 우리 일상의 시중(時中)을 도와주고 있다. 국내 여러 병원에서 활동하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암 치료의 개중절(皆中節)을 도와주고 있다. 인공지능 심리상담은 인간들의 노력보다 만족도가 좋으며 인공지능 스피커의 눈높이 대화는 아이들이 엄마보다 스피커를 더 좋아하게 만들고 있다. 거의 모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인간들의 이성적 판단과 시중과 감정적 절도를 이미 능가했다. 몇몇 병원의 풍경은 성인군자가 된 AI에게 평범한 소인 의사들이 자문을 구하는 지경이다. 

필자는 중용을 재해석하면서 피할 수 없이 무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해야만 한다. 
“과연 동양고전에서 제시한 성인군자의 기준이 인간적이라고 보는가?”이다. 감정의 미발未發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고대인들은 인간을 도덕적 로봇으로 만들고자 하는 무모한 이상을 가졌던 것이다. 인간의 범죄 예방에서 도덕교육보다 CCTV가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어쩌면 인간들은 모두가 소인일 수밖에 없다. 전편 칼럼에서 절제의 코르티솔 신독에서 몰입의 도파민 신독으로 시대가 바뀌었다고 본 이유도 우리는 현실적으로 소인의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도 성인군자가 되기 위한 노력들은 했지만 과연 도달한 사람이 있었을까? 후배들을 독려하는 이상적 지침으로 성인군자 전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성경도 중용도 용비어천가 방식의 미화와 성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감정들이 미발未發하는 성인군자의 중中은 AI의 몫이다. 우리는 ‘아들러’가 말한 인간적인 노력을 해보자. 개성을 찾는 미움 받을 용기와 비교평가와 우위를 무시하는 평범해질 용기로 기탄없이 도파민 신독을 하자. 특히 교육계나 창업 분야에서는 질문과 의문의 무기탄이 필요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沒廉恥)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무기탄(無忌憚)은 다른 개념이다. 한국인들은 몰염치와 무기탄을 구분하지 못한 세뇌의 세월을 견디며 살았다. 그리고 질문과 의문의 기탄이라는 함정에 빠져있다. AI의 시대는 질문은 인간이 하고 대답은 AI가 하는 때이다. 질문에 기탄해버릇하다가는 결국 질문과 의문의 소멸 즉 인간성의 소멸로 이어진다. 

빅데이터+AGI 시대는 인간들 사이에서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군자는 빅데이터를 주무르는 AGI이고 모든 인간은 미움을 받을 위험이 큰 소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중화시중(中和時中) 군자의 역할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탄없이 즐기는 소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원래부터 성인군자의 기준은 인간 친화적이기보다는 신에 가까웠다.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워지는 AGI 시대의 인간은 염치(廉恥)는 알지만 기탄(忌憚)은 없는 행복한 소인들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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