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칼럼] 저팔계 외교

  • 입력 2018.07.06 16:25
  • 수정 2021.06.06 16:35
  • 기자명 김민 데일리폴리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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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 외교’란 1990년대 북한 김정일이 북 외교관들에게 지시했던 새로운 외교 전략을 말한다.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사라진 후 미국·일본과의 외교에 주력할 것을 김정일이 지시한 데서 유래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되고 블록대결도 없어졌는데 블록불가담(비동맹) 운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저팔계 외교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SBS CNBC 방송 캡처 화면
SBS CNBC 방송 캡처 화면

말 그대로 서유기의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심지어 어떠한 상대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북한이 해야 할 외교 방식이라 주장하며 그것을 외교관들에게 지시했다. 다만 “적들에게 바지까지 벗어주는 행동은 하지 마라”라고 지시하며, 철저하게 ‘표리부동’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김정일 위원장은 1994년 초반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에 임하는 강석주 일행에게 ‘저팔계 외교’라는 협상 방침을 지시했고 이때 김정일 위원장은 저팔계가 보통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억울한 척, 미련한 척 하면서도 어딜 가나 결국 얻어먹을 것은 다 얻어먹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저팔계식 외교로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핵도 지키고 받아낼 것은 다 받아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모든 국가들이 현실 가능만 하다면 ‘저팔계 외교’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외교라는 것이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외교에서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때로는 먼저 내놓거나 일부 손해를 감당하는 것이 맞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도 그렇지 않은가. 일반적인 비즈니스는 개인이나 기업 간의 거래이고, 국가 간의 거래가 결국 외교이다.
주체만 다를 뿐 생리는 똑같다고 할 수 있다.

tvN 방송 캡처 화면
tvN 방송 캡처 화면

최근까지 훈풍이 불었던 북한과의 관계에서 결국 대한민국이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북한의 김정은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저팔계 외교’를 철저하게 계승하고 있고 이는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인 핵을 이용해 대치 중인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 G2 같은 주변 강대국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게끔 희망고문만 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북한의 전형적인 외교 방식이다.

문제는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혹은 ‘선 핵폐기, 후 보상’이 정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누구든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지막 히든카드를 남겨놓기 마련이다. 북한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운명을 미국과 중국에게 온전히 내놓겠다는 의미이다. 역시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가. 우리가 북한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저팔계 외교’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저팔계 외교’를 미리 간파하고 그 이상의 외교 전략으로 대응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북한의 희망고문에 속지 말고, 정부의 합리성과 이미지만을 고려해 내용 없는 ‘햇빛정책’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Profile
卒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고려대학원 국제정치학과 
現 데일리폴리정책연구소장 
   동시통역사·시사평론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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