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과 공부리스크

인공지능과 중용 Vol.3

  • 입력 2018.05.25 15:58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작년에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축사에서 기술 변화가 행복한 일상으로 이어질 법적 제도적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한국의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해법인문학이 될 것인가? 안정적 직장뿐 아니라 프리랜서 일까지 줄어드는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과 투자는 언뜻 위험해 보이는 그냥 잘 노는 전략을 써야 가장 안전하다. 즉 '잘 하면 된다'가 아니라 '잘 되면 한다'로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유치원에서처럼 놀다가 구글을 창업했다는 '래리 페이지'의 말처럼 억지로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인공지능 로봇의 일이 되고 놀 듯 그냥 잘 되는 일을 하다가 되는 성공이 인간의 것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젠 아이들도 어른들도 놀다가 성공하는 시대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되는 기업과 학교의 구성원들은 회사와 교실을 놀이터처럼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은 오리 알을 이틀이나 품는 황당한 시도를 하다가 발명왕이 된 ‘에디슨’처럼 공교육 제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기 관심분야에서 자기주도적으로 탐구를 하면 자기 장점에 집중하여 특기를 살리는 고수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성공한 10대 창업자들처럼 자기가 관심이 가는 것에만 몰입하려는 성향은 11세부터 지속된다. 두뇌의 발달과정이 10세 경에는 탐색을 하는 놀이행동기가 끝나고 이후에는 자기 진로를 찾는 본능에 빠진다. 그런데 지금의 공교육은 국영수사과 보편교육으로 아이들의 직감 능력과 경험 중심의 암묵지를 죽이면서 전 분야의 정보를 단계별로 나누어 교육을 한다. 맥락을 잃어버린 내용들에 재미가 생길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 생각의 흐름과 스토리텔링을 중간에 끊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는 ‘하면 된다’가 급훈이며 시간에 맞추어 학교종이 울린다. 10년 전 ‘앨빈 토플러’는 한국에 와서 우리의 공장형 공교육을 비판하면서 교육제도를 바꾸어야 나라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인공지능에게 직업을 빼앗길 준비를 많은 학비를 들이면서 하고 있다. 

공부리스크는 교육에 투자를 하지만 취업률이 낮아지고 유능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동안의 공부를 써먹을 일이 사라지고 학비는 빚으로 남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부유층의 자녀들은 좋은 직장을 유지하는데 중산층 이하의 자녀들은 실직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이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되고 있다. 부유층 자녀들은 단순히 학교 공부만을 하지 않는다. 문화예술과 여행을 많이 하며 풍부한 돈으로 어려서부터 독특한 취미를 개발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찍 뭔가에 몰입하여서 솔성을 통해 성덕이 된 아이들이 훨씬 많다. 악기라고는 교실의 오르간이 전부인 시골 출신의 필자가 반포 세화고를 다닐 때, 바이올린과 클래식 기타를 수준급으로 치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가난해도 가능한 미술을 더 열심히 했다. 바로 이런 예체능 체험의 결과 부유층 자녀들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보편적 공교육으로는 발현될 수 없는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게다가 부모의 자본을 발판으로 매우 높은 실질적 창조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게 잘 되는 집안과 문화선진국은 문화적 배경이 계속 좋아지게 된다. 가까운 미래에는 교실과 학원에서 공부에 대한 노력만 했음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오히려 학창시절을 원망할 공부리스크에 빠지게 되는 공부의 신들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이 지식노동의 중심부에서 급속히 세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기 장점이 매장된 광산인 심리적 동굴에서 몰입 능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인공지능 공부리스크를 극복할 기반이 동굴의 몰입이기 때문이다. 더 깊은 몰입이 아닌 보편적 커리큘럼은 이제 인공지능의 몫이다. 물론 아직도 동굴의 깊이와 광장의 협력이 중요하지만 광장의 협력은 10년 내에 지구상의 모든 빅데이터를 다루는 AGI의 몫이 된다. 

앞으로는 자기 천명을 솔성하며 생기는 취미가 직업이 되지 않으면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 때문에 이 순간부터 특정 분야를 즐기며 몰입하는 '락지자樂之者 인재'를 키운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공자’는 어떻게 그리 오래전부터 뭔가 즐기는 자가 가장 유능한 고수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물론 우리는 유전자 변형체가 있고 특정 유전자를 끄거나 켬으로써 획득 형질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아세틸기는 DNA 발현을 가속화하는 가속기이며 메틸기는 DNA 발현을 잠그는 브레이크이다. 그래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메틸화와 아세틸화 등을 통한 유전자 on/off 시스템이 밝혀지면서 과학잡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부활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교육이 장점의 발견과 강화보다는 단점의 보완과 평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본래 타고난 천재성과 몰입력과 DNA를 바꿀 초능력을 죽이면서 두뇌를 인공지능보다 성능이 현저하게 낮은 컴퓨터로 만드는 짓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나쁜 시스템은 늘 좋은 사람들의 능력과 활동을 변질시킨다. 지속적 개선 프로세스를 연구한 ‘에드워즈 데밍’의 말과 노자의 말을 들어보자.

"언제나 나쁜 시스템이 좋은 사람을 이긴다." '무위이무불위' 시스템과 패러다임은 늘 무소불위의 힘이 있다.

필자는 중용이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한 비결서이자 예언서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중용 첫 구절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하늘의 본성(天道)을 만물(萬物)에게 부여(附與)해준 것을 본성(本性)이라고 함)’은 빅데이터를 주무르는 인공지능이 지구를 점령해가는 시대의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인공지능 시대의 해법인문학이 된 중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대안들이 필요하다. 더 진화한 인공지능 AGI는 평천하를 도와줄 것이다. 중용 서문의 끝에 중용을 따르는 것이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기초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