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바쁘게 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로사회에서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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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시생인 주인공 혜원이, 1년간의 고향 생활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그 성장의 증표가 처음에는 무미건조한 혜원의 표정이, 환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혜원은 어떻게 1년 만에 웃게 되었을까? 그 과정을 알기 위해 <리틀 포레스트>로 떠나보자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스틸컷

피로한 사회
<피로사회>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원시 시대에는 맹수와 전쟁을 했고, 중세에는 쥐, 근대에는 해충과 전쟁을 했다. 저자는 현대에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이러스의 무서움은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늑대나 쥐, 해충과는 달리 시스템 내부에 이미 들어와 물리적으로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대중에게 주입하는 긍정성은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다.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개인에게 심어주어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경쟁하게 한다. <피로사회>에서는 이를 긍정성의 폭력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폭력이 수반하는 성과주의 때문에 현대인들은 작게는 강박이나 번아웃 증후군, 크게는 우울증 같은 크고 작은 심리적인 문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또한 <피로사회>의 저자는 성과주의 사회에 필요한 멀티태스킹 역량이 진화가 아닌, 퇴보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발전은 생각하는 힘, 즉 사고력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피로사회> 저자는 야생에서 먹이를 먹을 때조차 주위를 경계하는 동물과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신경 써야 하는 현대인들의 행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몸이 바쁜 것 대신 머리가 바쁘도록 사색하며 살 것을 책 전반에 걸쳐 언급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리틀 포레스트>에서 재하(류준열)이 혜원(김태리)에게 한 말이다. 혜원과 재하 둘 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혜원의 경우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연애도 뜻대로 안 돼서 떠밀리듯이 내려왔다. 반면 재하의 경우 직장도 있고 애인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작아져,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거짓, 편법이 없는 농사를 선택하였다. 영화에서는 나오진 않았지만 재하가 혜원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재하도 혜원만큼 바쁘게 살았지만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사색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두 주인공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즉 사색의 차이는 영화 중후반부 시점인 '가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추수를 앞두고 폭우로 인해 혜원의 고모의 논과 재하의 과수원이 타격을 입은 상황이 그것이다. 혜원은 재하를 위로해주지만, 재하는 오히려 '초보 농사꾼이 수업료 낸 셈 치지' 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비단 '농사' 라는 특정 분야만 그러겠는가? 이 영화는 시험, 취업, 인간관계 같은 일상생활에서 '수업료 낸 셈 치지' 라는 마인드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준다. 즉, 좀 쉬어 가도 되고 서툴러도 되니,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될 대로 되어라!', '노력하지 마라'가 절대 아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진인사대천명은 주어진 일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물론 어떤 것을 할 때 '기대'를 하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기대’는 심리적 관점으로 보면 보상심리,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매몰 비용으로 이해하면 쉽겠다.

이런 '기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취업, 시험, 연애 같은 특정 한 분야에만 기대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 중 여러 곳에서 '기대' 할 것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즉 기대의 깊이는 줄이되, 폭은 넓히는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임용고시란 좁고 깊은 '기대'를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텅 빈 자취방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으며 다른 기대할 요소들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온 뒤에는 요리, 농사, 친구들의 소통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기대를 만들었고, 결국 영화 끝에는 어두운 표정의 처음과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끝이 난다. 

이런 관점에서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라는 혜원의 말은 의미가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작은 숲'은 마음의 안식처, 마음의 여유를 뜻하며 일상에서의 소소한 기대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취미도 ‘작은 숲’이 될 수 있다. 할 것이 없어서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좋아하는 취미를 가진다면 '리틀 포레스트' 찾기에 성공한 것이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찾고 틈날 때 마다 갈 수 있다면, 재하처럼 닥친 문제에 대해 '수업료 낸 셈 치지' 라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학업, 일이 아닌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리틀 포레스트는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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