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공간, 과거와 현재가 만나다

김승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명예교수/갤러리카페 소연(小然) 대표

  • 입력 2018.03.20 16:17
  • 수정 2018.03.20 16:38
  • 기자명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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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우리나라 대표적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유구한 역사가 주는 장엄함마저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한국인은 종묘가 있다는 것에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종묘담길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걷기 좋은 길이다. 서순라길이라고 불리는 종묘 담길 끝자락에 ‘갤러리 소연(小然)’이라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 한국 공예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내국인들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갤러리 소연에서 만난 김승희 교수 역시 우아함과 기품이 빛나는 아름다운 예술가였다. 

금속공예가의 길
“22세부터 시작을 했으니, 이제 거의 50년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죠.” 김승희 교수는 대한민국의 금속공예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미국으로 가 공부를 계속했다. 귀국한 후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학과를 만들어 오늘날 한국의 금속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교육의 기반을 다진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입니다.” 김 교수는 한국 금속공예 역사와 장인 정신을 높이 칭찬하며 대단한 자부심으로 열변을 토한다. “중국이 도자 숟가락을 만들고 일본이 나무젓가락을 깎고 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금술의 발달과 더불어 금속 수저를 만들어 최첨단 과학의 나라인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실내풍경1988 적동,황동,백동
실내풍경1988 적동,황동,백동

그는 초기에 주전자 같은 그릇 만들기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릇에서 이미지를 얻은 입체 오브제 -“금속으로 그린 그림”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으며, 어느 날 우연히 그의 금속 오브제를 작게 축소하여 브로치를 만든 것이 장신구 작가로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생활문화 역사에서 찾아낸 노리개와 머리 뒤꽂이 등을 연구하였고 우리나라 쌍가락지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장신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락지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고 현대화된 가락지 디자인을 발표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가락지 연구에 힘써
논개는 열 손가락에 굵은 가락지를 끼어 양쪽 손이 풀어지지 않게 해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논개의 가락지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고이 담겼다.

가락지에는 양의 동그라미(Positive Space)와 음의 동그라미(Negative Space)가 동시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다. 똑같은 모양의 반지 두 개를 함께 착용하는 가락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장신구다. 가락지는 우리나라에서만 착용했던 장신구이면서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정서에 비추어보면, 가락지는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신분확인을 위한 징표에 가깝다. 또한,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룰 때 부부일심의 의지를 표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가락지는 한 집안의 전통과 가풍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락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중이다. “가락지는 언제부턴가 서양식 반지에 밀려 잊혀져가고 있어요. 1890년대 보석 반지가 수입되면서 가락지의 반(半)쪽이라는 의미로 반지라고 명명되었기에 반지의 어원은 가락지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정서와 문화가 담긴 가락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은구와잎사귀가있는정물 120-40-70cm,적동,철,황동,정은,1991작
은구와잎사귀가있는정물 120-40-70cm,적동,철,황동,정은,1991작

자연을 담다, 갤러리 소연(小然) 
서울 종로구 권농동에 있는 갤러리카페 소연에 들어서면 통창으로 고즈넉한 종묘 담벼락길이 시선 가득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면서도 여유롭고 품위 있는 갤러리 소연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카페에 들어서자 향기로운 커피 향과 따스한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차와 함께 케이크와 단팥죽 등 먹거리도 준비돼 있다. 건강한 재료를 사용해 만든 담백한 케이크에 자꾸 손이 간다. 팥을 직접 준비해 끓여내는 담백한 단팥죽도 인기다. 

‘작은자연-소연(小然)’은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지닌다. 김 교수와  중견 및 신진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이곳에 오면 한국 공예작가들의 멋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따스한 차 한잔과 함께 맛보는 계절 변화와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름다운 작품들. 삶을 살아가며 한숨 돌리고 싶은 여유가 필요할 때, 갤러리 소연에서 만나는 소중한 순간들은 일상의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하염없는생각 1987 적동 황동 백동,200,60,80cm
하염없는생각 1987 적동 황동 백동,200,60,80cm

매일 만나 즐길 수 있는 작은 예술-작가의 장신구
“장신구를 말할 때 ‘액세서리(accessory)’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김 교수가 생각하는 장신구는 옷을 모두 차려입고 착용하는 ‘주인공’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원시시대부터 시작되는 장신구 역사는 주술적 의미, 권위와 신분 표현, 염원, 사랑의 약속이 담겨져 있는 가장 소중하게 간직할 보물이기 때문이다.

김승희 교수의 장신구는 1990년대부터 문화 예술계 인사들 중심으로 착용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일반 대중들과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매일만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속 예술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풍경95-1,80-33-50cm,적동,정은,황동,나무,1995작
풍경95-1,80-33-50cm,적동,정은,황동,나무,1995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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