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칼럼]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 입력 2018.02.01 11:50
  • 수정 2018.02.01 11:51
  • 기자명 이원호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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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는 매우 슬퍼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침을 자주 삼켰고, 이따금씩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녀는 가슴속부터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아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혀로 입천장을 세게 눌렀다. 혹시라도 눈물을 보이면,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의 의미가 바래질까,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서지현 창원지검 검사 29일 jtbc <뉴스룸> 인터뷰 장면 (JTBC 방송화면 캡쳐)
서지현 창원지검 검사 29일 jtbc <뉴스룸> 인터뷰 장면 (JTBC 방송화면 캡쳐)

“이 자리에 나와서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현직에 있는 한 여성 검사(경남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과 JTBC <뉴스룸>을 통해 “지난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전 검사에게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주위에는 다른 검사들도 많았고 심지어 법무부 장관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상당 시간 동안 서 검사의 허리를 감싸 안거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중 어느 한 사람도 이를 말리지도, 아는 척을 하지도 않자, 서 검사는 이것을 ‘환각’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또 “그날 충격이 너무 커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가 집에 있는 아이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귀가했다”라며 “이후 그 날의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검찰 내 ‘실세 중의 실세’였다. 서울대 법대 입학 후 우리 나이로 22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법조계에 발을 들인 이후 주요 보직만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특히 지난 2015년부터 2년간은 검찰의 인사, 예산, 수사기록을 담당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안 전 검사는 지난해 6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검찰로부터 ‘면직’, 즉 ‘잘리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언론에 언급되지 않았던 그는 이번 서 검사 성추행 파문으로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안 전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오래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 번씩은 우수 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여자가 아닌 남자 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외에는. ···”

서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 일부이다.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검찰에서 서지현 검사는 이 악물고 버텨왔다. “여성은 남성의 50% 밖에 안 되니 다른 남자 검사들에 비해 2배 이상 열심히 해야한다”는 부장의 말에도, “‘나 하나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를 욕먹게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그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버틴 그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었던 수많은 불합리, 불의, 무시, 성희롱, 성추행,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이 “네가 뭐라고 해봤자 검찰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떠들면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너를 더 문제 있는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라.”라며 그녀를 말렸다. 서 검사 역시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 검사는 그날의 사건 이후 8년을 ‘모든 것이 내 탓이었나,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내가 역시나 잘못이었나’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아무런 힘도 어떠한 빽도 없는 여자”로서는 “입을 다무는 것” 이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어 검찰 내부의 문제를 폭로했다. 자신이 겪은 “불의와 부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며, “가해자들은 당당히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만 박해를 받고 위축되어야 하는” 인식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서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자신의 감정을 힘겹게 꾹꾹 눌러가면서 전한 말이었다. 

서 검사가 던진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여성차별 문제는 비단 검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 성별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그릇된 문화.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성차별적 인식. 우리 중 어느 한 사람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렵사리 용기를 낸 서 검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역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왜곡된 인식으로 인해 살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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