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는 매우 슬퍼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침을 자주 삼켰고, 이따금씩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녀는 가슴속부터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아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혀로 입천장을 세게 눌렀다. 혹시라도 눈물을 보이면,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의 의미가 바래질까,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이 자리에 나와서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현직에 있는 한 여성 검사(경남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과 JTBC <뉴스룸>을 통해 “지난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전 검사에게 강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주위에는 다른 검사들도 많았고 심지어 법무부 장관까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상당 시간 동안 서 검사의 허리를 감싸 안거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중 어느 한 사람도 이를 말리지도, 아는 척을 하지도 않자, 서 검사는 이것을 ‘환각’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또 “그날 충격이 너무 커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가 집에 있는 아이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귀가했다”라며 “이후 그 날의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검찰 내 ‘실세 중의 실세’였다. 서울대 법대 입학 후 우리 나이로 22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법조계에 발을 들인 이후 주요 보직만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특히 지난 2015년부터 2년간은 검찰의 인사, 예산, 수사기록을 담당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안 전 검사는 지난해 6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검찰로부터 ‘면직’, 즉 ‘잘리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언론에 언급되지 않았던 그는 이번 서 검사 성추행 파문으로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안 전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오래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평생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을 받고, 몇 달에 한 번씩은 우수 사례에 선정되어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자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여자가 아닌 남자 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외에는. ···”
서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 일부이다.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검찰에서 서지현 검사는 이 악물고 버텨왔다. “여성은 남성의 50% 밖에 안 되니 다른 남자 검사들에 비해 2배 이상 열심히 해야한다”는 부장의 말에도, “‘나 하나 잘못하면 여검사 전체를 욕먹게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모욕적이어도” 그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버틴 그녀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었던 수많은 불합리, 불의, 무시, 성희롱, 성추행,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이 “네가 뭐라고 해봤자 검찰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떠들면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너를 더 문제 있는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있어라.”라며 그녀를 말렸다. 서 검사 역시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서 검사는 그날의 사건 이후 8년을 ‘모든 것이 내 탓이었나,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저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내가 역시나 잘못이었나’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아무런 힘도 어떠한 빽도 없는 여자”로서는 “입을 다무는 것” 이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어 검찰 내부의 문제를 폭로했다. 자신이 겪은 “불의와 부당을 참고 견디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며, “가해자들은 당당히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만 박해를 받고 위축되어야 하는” 인식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서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자신의 감정을 힘겹게 꾹꾹 눌러가면서 전한 말이었다.
서 검사가 던진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여성차별 문제는 비단 검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 성별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그릇된 문화.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성차별적 인식. 우리 중 어느 한 사람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렵사리 용기를 낸 서 검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역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왜곡된 인식으로 인해 살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