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승화시킨 민족의 정체성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협의회 이사 / 전 서울대학교 박물관·미술관 관장 박소연 기자l승인2018.01.05l수정2018.01.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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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독도를 그린 한 화가가 있다. 독도에 큰 관심이 없던 시절 홀로 그렇게 독도를 알렸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문 고구려 벽화를 외롭게 연구해 독창적인 기법이 가진 그 가치를 세상에 외쳤다. 37세 젊은 나이에 화폐 영정을 그려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두 번째 화폐 영정을 그려냈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역사, 거장을 만난다는 사실에 두근거렸다.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작가,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의 이야기다. 

독도의 비와 바람, 그대로 들어와 그림 속에 머물다: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 전
독도에서 그림을 그리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황급히 그림 도구를 챙겨 철수하는 대신, 이 화백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비와 바람은 이 화백의 열정에 이끌려 화폭으로 스스로 들어가 살아있는 독도를 완성했다. 이 화백의 독도를 그린 작품 ‘풍우독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진경―독도와 울릉도 전’이 사단법인 라 메르 에 릴(La Mer et L’Île, 바다와 섬, 이사장 이함준)에 의해 11월 29일에서 오는 12월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개최됐다. 라 메르 에 릴은 문화예술과 학술 활동으로 독도를 우리 삶 속에 승화시키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이 화백 역시 본회의 고문으로 전시에 솔선 참여했다. 

이 화백은 독도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 세계 첫 번째 독도 화가이면서 최초의 독도 NGO 문화운동가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는 이 화백의 독도작품들이 한 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그 누구도 독도를 그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문화영토론’과 함께 독도를 그려 전 세계에 우리 섬 독도를 알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1977년에 ‘독도 진경전’을 개최했다. 현재까지 이 화백이 그린 독도 그림은 무려 600여 점이 넘는다. 

당시에는 독도에 관해 관심이 미약했다. 독도의 상징성을 인지하고 예술을 통해 표현한 그의 혜안(慧眼)에 감탄했다. 이 화백은 “그림은 100년 앞을 내다보고 그리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독도문화심기운동’의 본부장으로 NGO 활동도 이어갔다. “한 나라의 영주권은 역사적, 학문적 성과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생활에서, 그리고 예술과 문화로 승화되어 표현되는 독도 관련 행위 자체가 독도 영토주권이며 수호일 것입니다”

그의 역사의식은 고구려벽화에 대한 열정적인 연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의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기본이 되는 뿌리 문화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기에 고구려문화와 선사 문화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이 화백은 1960년대 초반부터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죽의 장막’시절 얘기다. 마침내 고구려 벽화에는 습한 동굴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수 천 년을 버텨낼 수 있는 독자적인 기법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나라 미술과 문화, 의상 등 모든 패턴을 고구려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도 벽화에서 시작됐어요. 벽화를 가진 민족은 원시시대부터 족보 있는 문화 DNA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요.” 이 화백은 중·고등학교 미술교육과정에서 고구려 벽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는 이후 ‘한국회화의 자생성’이라는 주제로 발현이 되었으며, 그의 논문인 [고대벽화의 사적고찰과 신벽화의 재료 및 기법에 관한 연구]는 1972년 한국민족문화논총에 33인의 우수 논문으로 실리기에 이른다. 

▲ 278 x 328cm-국전내각수반상-국전사상최대작-국립현대미술관소장 (1962년 4학년 작업)

한편 1997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개인전 당시 루브르 박물관이 설치벽화의 영구비치를 요구하자, 이 화백은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이행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에 프랑스가  정치적 문제라며 난색을 표했고 이에 이 화백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고 철수하겠다’며 철거를 단행한 일은 한국인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알린 일화 중 하나다. 

우리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지닌 그가 대한민국 화폐 영정을 두 번씩이나 그린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라 하겠다. “쟁쟁한 화가들 사이에서 37살의 나이에 화폐를 그리게 된 건 정말 영광이면서도 얼떨떨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당 김은호 선생으로부터 영정의 전통기법을 배웠어요. 원래 오천 원권은 이당 김은호 선생이 그리기로 했었습니다. 갑자기 그분께서 병석에 눕게 됐고, 대신할 사람으로 저를 추천했습니다.” 화폐 영정을 그리는 것은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주어지는 명예다. 대한민국 화폐 영정을 그린다는 것은 그만큼 엄격히 살아갈 것을 요구받는 것이기도 하다. 불명예스러운 일이 생기면 화폐의 가치와 이미지도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30여 년이 지나 이 화백은 다시 오만 원 권이라는 최고액권에 들어갈 신사임당의 영정을 그리게 됨으로써 모자(母子)분을 화폐 영정으로 그리게 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는 “500여 년 만에 전 국민이 사랑하는 화폐 속에서 모자를 해후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순교 미술관에 전시된 순교기록화와 성인 영정
지난 3월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이 개관했다. 순교미술관은 충남 당진 합덕에 위치했으며, 충남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신리성지에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됐다.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 교구장을 지낸 다블뤼 주교가 조선천주교사를 집필한 곳으로,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46명의 무명순교자의 묘가 안치된 장소다. 

우리나라 전통채색기법인 ‘장지기법’ 인물화로 유명한 이 화백은 장지기법을 활용하여 4년여의 세월에 걸쳐 제작한 순교기록화 13점 및 성인 영정 5점을 전시했다. 1000호 크기의 순교기록화 13점에는 1845년 중국에서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는 장면, 강경 황산포구 입국 및 신리교우촌과 선교, 병인박해 당시 다블뤼 주교를 포함한 다섯 분 성인의 체포와 순교 등을 표현했다. 영정 5점에는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 다섯 성인의 모습을 담았다. 이 화백은 헌신적 봉헌에 대해 감사패를 받았다.

“순교기록화를 그리며 역사를 공부하고 그 시대로 빠져들려고 했습니다. 끊임없는 대화로 철저한 종교적 고증을 이뤄내려 했지요. 역사성과 종교성, 예술성과 보존성, 그리고 영성의 다섯 가지를 갖추려고 노력했습니다.”

▲ 광주비엔날레 설치병풍 (2006.09.07)

이종상 화백과 사람들: 일랑 이종상과 랑우회 초대전-한국화의 자생성 同音(동음)과 異音(이음)전
아버지의 사진 속, 서재 벽에 걸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초상화에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다.”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됐다. 아버지는 화가를 꿈꾸던 분이었다. 그러나 대지주인 할아버지는 당시 집안에서 ‘환쟁이’가 나온다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그 꿈을 제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셨습니다.” 그림의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와 더불어, 어머니는 오늘날의 이 화백을 길러낸 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머니는 ‘그림공부’만 하고 있으면 지루하지도 않으냐고 말씀하셨다. 이 화백은 “그림 또한 공부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려주신 셈입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 화백은 현역화가 최초의 인문과정 공부로 철학박사 학위를 갖게 되었고 미대 교수로서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연임했다.  

이 화백은 훌륭한 부모님과 함께 수많은 스승을 만나며 성장해갔다. 이 화백은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6·25 전쟁 이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는 화가라는 꿈 대신, 건축과 진학을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대전고등학교 재학 중 만난 박관수 교장은 이 화백이 미술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잊지 못할 스승이다. 이 화백은 화가의 꿈을 다시 살려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1962년 국전에서 ‘내각수반상’을 수상하는 등 연이어 특선 3회를 수상했으며 대학을 졸업하며 최연소 국전추천작가, 30대 초반 국전 심사위원을 거쳐 2004년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 화백 역시 우수한 제자들을 양성해냈다. 이 화백의 호인 일랑(一浪)은 한학자 월당(月堂) 선생이 재학시절에 지어준 그의 아호다. 첫 번째 파도 혹은 큰 물결을 의미한다. 이 화백과 그의 제자들이 모여 활동하는 '랑우회(浪友會)'는 이 화백의 팔순을 기념하여 9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일랑 이종상과 랑우회 초대전-한국화의 자생성 同音(동음)과 異音(이음)' 전을 열었다. 이 화백과 그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랑우회 회원들은 이 화백 몰래 몇 년 전부터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 화백은 제자들 그림이 낯설지 않았다고 전했다. “맥이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염원 8m x 81m 擁石壁畵-태백산맥문학관소장(2008년)

한국회화의 자생성을 위해, ‘뿌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 화백의 각고의 노력이 오늘날의 우리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이 화백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민족 문화를 향한 자긍심은 예술로 승화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깨우쳐주고 있다. 새해의 문을 열고 있는 이 시간, 이 화백이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가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이 화백은 끊임없이 연구해온 한국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토대로 전통회화를 구현해낸다. “화가의 그림은 그것을 그리는 작가의 인품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속마음이 먼저 갖추어져야 훌륭한 작품을 그릴 수 있지요”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이 화백의 신념은 바탕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의미를 다시금 강조한다.

■ 출 생
1938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발연리 120

■학 력
1963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8 동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수 상
2003 『은관문화훈장』 서훈 (대통령 ‘03),
2005 『제1회 안견문화대상』 수상(안견기념사업회 ‘05)
2008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수상(한국언론인 협회 ‘08)
2010 『국가유공자 건국포장』증서수증 제11-22879호 (대통령 ‘10)
2011 『제1회 가장 문학적인 화가상』수상 (사)문학의집, 서울
2015 『제1회대한민국나라사랑 실천대상』수상(도전한국인본부)
2017 『종로구민상』수상 (종로구청장)

■개인전
1977 동산방 초대 최초의 독도 화가『 이종상 진경전』
1990 프랑스 그랑빠레 "FIAC"초대 최초 꼬레-부츠 『이종상 근작전』
1995 백남준 기획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초대전-『The Tiger's Tail』
1998 프랑스 문부성 초대『루브르미술관 까르젤 설치벽화』
2007 대전시립미술관 초대『한국현대미술의 거장-이종상』
2102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초대『현대한국대가-일랑 이종상 명품전』

■단체전
1997『세계 80人화가』 선정전 Enrico Navarra, 파리
2003『제1~2회 북경비엔날레』 초대작가 북경박물관
2006『광주비엔날레 '열풍변주곡'』특별초대 작가전, 광주시립미술관
2011『한국현대미술전』(회화3인: 김환기,이우환,이종상) 메트로포리탄
2011 『UN남북동시가입 20주년남북평화미술전』초대출품 및
조직위원장
2012『제1회 몽유도원전』초대전Zaha Museum (사)안견기념사업회
2014『60년의발자취』대한민국예술원, 국립현대미술관주최, 덕수궁
2017『이종상과 랑우회-동음과 이음』사제3대전, 흰물결갤러리

■경 력
서울대학교미술대학교수 / 서울대학교 12,13대 박물관장
서울대학교미술관 초대 미술관장 / 삼성문화재단 이사
한국조폐공사 자문위원 /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초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장 및 건축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회장 / 문화체육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

■현 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 이사/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독도문
화심기운동 본부장 / 일민문화재단 이사 / 고촌재단 이사 / 4.19
혁명동지회 회원 / 평창문화포럼 명예이사장 /한국벽화연구소 소
장/1호“보성명예군민” / (사)안평,안견현창사업회 고문/대한민국
해군 광개토대왕함 “명예함장” /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본부장

■대벽화
대법원 로비 / 서울지방법원 로비 / 검찰청 2로비 / 삼성본관 로
비 / 연세대 세브란스 빌딩 로비 / 수원성당 제대 / 태백산맥문학
관 외벽

■성미술
서울 혜화동성당 / 경기 평택성당 / 전남 광주신학대학교 본당
한국최초 대전교구 신리순교미술관 순교기록화 봉헌


박소연 기자  maybe_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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