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잊고 지내는 것들에 관하여…

기억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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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찰스 시몬즈는 기억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망각은 고상한 것이다.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 것 말이다.’ 찰스 시몬즈의 말대로 망각은 고상하다. 자신의 실수나 상처를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처럼 느껴진다. 기억과 망각은 댐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물을 댐에 가득 담아 두어 생각이 날 때마다 흘려버릴 수 있지만 망각은 아예 댐 전체에 물이 남지 않게 물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억의 밤’은 기억보다는 망각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무엇을 잊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기억의 밤’과 더 어울려 보인다. 무엇을 잊고 있었는가? 관객들은 진석이 무엇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기시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진석은 새집으로 이사 온 날 이 집에 예전에도 봤었던 것처럼 낯익은듯한 느낌이 든다. 알 수 없는 기시감 속에 형 유석은 납치를 당하고 19일째 되는 날 돌아온다. 형은 그간의 기억이 사라졌고 가족들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진석은 어느날 우연히 형 유석의 걸음걸이를 보고 의문을 느낀다. 다리를 저는 형이 반대로 다리를 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은 증폭되어 진석은 유석을 쫓는다. 그럴수록 점점 몰랐던 진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장항준 감독이 던져놓은 힌트 속에서 진석은 점점 의아함을 느낀다. 예전에 봤던 것처럼 낯익은 집, 어디선가 봤던 배경들,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방, 가끔씩 꾸는 악몽, 비밀을 숨기는 가족, 매일 먹는 약, 환각들, 악몽, 불미스러운 일들. 이것들은 온통 의문점이 된다. 특히나 진석이 먹는 약은 하나의 장치가 되어 관객들에게 이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진석의 병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기억의 밤은 사실상 결핍된 자들의 이야기이다. 1998년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진석과 유석 또한 피해자였다. 유석의 아빠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아내를 죽여 보험금을 타려 하고 진석은 교통사고로 인해 깨어나지 못하는 형의 수술비를 구하고 위해 유석의 엄마를 죽여야 한다. IMF는 사람들에게 돈과 생명이 직결되는 이야기다. IMF 피해자였던 이들은 살인으로 인해 가해자로 변하는 변곡점을 겪는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9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한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은 탄탄한 스토리와 복선을 많이 넣어둠으로써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반전이 가득한 ‘기억의 밤’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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