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과 건축 사이

  • 입력 2017.12.05 16:09
  • 수정 2017.12.05 16:10
  • 기자명 정정수 조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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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門), 자연과의 접경(接境)
현대인은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문(門)을 통과하며 일상을 보낸다. 문은 보통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데, 아마 삭막한 도시에서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문의 역할은 콘크리트 빌딩 벽과 자연을 이어주는 ‘안과 밖의 통로’일 것이다. 과거에 문은 자연과 인공의 공간을 연결해 주는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나, 안과 밖이 모두 인공구조물로 덮여 있는 현대의 도시에서 문은 이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대인에게는 자연의 대리물인 조경이 있고, 사회시스템도 이러한 조경의 역할을 인정하여 법과 제도로 조경공간을 만들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조경의 본질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고 있으며, 얼마나 성실히 구현하고 있는가? 단지 준공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치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자연으로 통하게 하는 문의 기능마저 무색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무실이나 공장 등 일하는 공간에서도 조경은 분명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여 업무 효율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경이 필요한 곳은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재충전을 하는 ‘집’이다. 우리는 집 밖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을 연다. 지친 몸으로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며 흙과 나무, 물을 마주할 때에 마음도 비로소 퇴근하고 휴식을 맞을 준비가 될 것이다. 혹은 집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터로 나갈 때 밟는 풀의 감촉, 그것이 주는 생의 리듬은 매일 대자연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부드럽고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온 자연, 즉 조경에 기대할 수 있는 치유적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가 살던 집의 대문과 현관문이다(1996년). 담장이 높아서 마당이 쉽게 보이지 않으면 범죄를 위해 담을 넘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담을 넘기만 하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장을 낮추면 담을 넘은 이후에도 시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 안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은 건물과 자연의 경계에 있지만 자연과 소통되는 공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필자가 살던 집의 대문과 현관문이다(1996년). 담장이 높아서 마당이 쉽게 보이지 않으면 범죄를 위해 담을 넘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담을 넘기만 하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장을 낮추면 담을 넘은 이후에도 시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 안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은 건물과 자연의 경계에 있지만 자연과 소통되는 공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문은 벽이나 담장에 붙어 있기에 분명 건축의 일부이다. 그러나 ‘건축의 한 요소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문의 역할을 한정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은 건축과 조경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은 열고 나가는 순간 자연과 만나게 해주는 존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 주는 존재이다. 문의 본질은 이질적인 서로를 이어주고 통하게 해주는데 있지, 굳게 잠그고 높다랗게 쌓아 경계하고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어떤 관점으로 문을 만들어야 세상과 소통이 가능할지 짐작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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