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힘내, 그래도 살아야 해!

- 소노 시온의 <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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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 심보선, 청춘

심보선 시인의 시를 처음 봤을 때 청춘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다. 청춘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실제로 겪은 청춘은 숨 쉴 때마다 목 안에 난 생채기처럼 아프게만 느껴졌다. 두 번째 이 시를 보았을 때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 스미다! 스미다가 생각났다. <두더지> 속 스미다가 꼭 내뱉을 법한 말이었다.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하고 너무너무 살고 싶어 하는 스미다가.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평범이란 무엇일까. 스미다의 오랜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스미다의 상황을 이야기해보자면, 대지진으로 황폐해진 마을과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간 어머니, 가끔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 아버지가 진 빚을 갚으라고 스미다를 찾아오는 빚쟁이들까지. 수업시간에 ‘평범 만세!’를 외치며 평범함을 추구하는 스미다는 평범과 멀어 보인다.

스미다 곁에 있는 사람은 보트 대여소 주변의 피난민과 동급생인 차자와 뿐이다. 그들은 스미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차자와는 스미다와 비슷한 처지의 형편이지만 스미다의 곁에서 맴돌며 스미다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요루노는 지진 피난민으로 무능력한 어른이지만 스미다를 일본의 미래라고 말하며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사실 이들 또한 스미다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잃었거나 결핍된 인물형이다. 그렇지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스미다를 위해서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무엇이라도 해주려고 한다. 재난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한 인간의 가장 숭고하고 진귀한 인간성. 이들의 진심은 더 고결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스미다는 아버지가 진 빚을 갚으러 온 빚쟁이들에게 절규하듯 외친다.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좋은 어른이 될 거야.”라고. 그날 밤 스미다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뺨을 때리며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쫓아간다. 잘 참아왔던 스미다는 아버지를 벽돌로 살해한다. 아버지를 죽인 순간부터 스미다는 결코 평범한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라디오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5월 7일, 덤으로 사는 인생 첫날이다. 먼지보다도 못한 목숨이지만 한 번쯤은 훌륭하게 사용하고 싶다. 사회를 위해."

<두더지>의 감독 소노 시온은 스미다에게 살아남아서 버티라고 말한다. 소노 시온은 재해 같은 스미다의 삶에 ‘힘내! 그래도 살아야 해! 꿈을 가져!’라고 메시지를 던지며 묵직한 응원을 보낸다.

관객들은 스미다를 좋은 어른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무기력하게 스미다를 바라볼 수 없다. 이 고난 또한 스미다가 혼자 버텨내야 하는 일이다. 힘겨운 와중에도 영화 중간중간 차자와의 목소리를 통해 무너지지 말라는 소노 시온의 묵직한 한 마디가 때로는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만 해도 언젠가 모든 게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준다. 소노 시온은 스미다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싶은 것이다.

차자와는 아버지를 살해한 스미다에게 자수를 권한다. 차자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잘못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였다. 그 말에 자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스미다는 자수를 하러 간다. 경찰서에 자수 하러 가면서 둘은 힘을 내자고 소리를 지르며 달린다. 나는 이 장면을 위해서 관객들이 두 시간을 달려왔다고 말한다. 너무 힘들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마, 힘내, 라는 말. 나는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 소노 시온이 스미다를 힘든 역경 속에 빠지게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스틸컷

스미다와 차자와는 어둡고 아득하기 한 현재 속에서 그래도 힘내, 그래도 살아야 해, 라고 외친다. 관객들은 스미다와 차자와를 향해서 간바레를 외치다가 결국 이내 나 자신에게 간바레! 라고 외치는 걸 보게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스미다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간바레!

"난 쓰나미로 인해 한 번 죽었어.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본의 과거야. 스미다에겐 미래가 있어. 그 아이에게 미래를 보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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