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곧 비즈니스”

지속적인 열정, 젊음을 무기삼아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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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일,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지>는 미래를 선도하는 ICT 기업가 20인을 선정했다. 선정된 인물로는 구글, 애플,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과 엔지니어들이다. ICT 기술로 전 세계인들의 삶에 파급효 과를 낳는 인물들 사이에 빛을 내고 있는 30대 한 청년이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전례 없는 규모의 SNS를 이루어낸 CEO, 바로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다. 

 
SNS의 주류를 이끈 페이스북(facebook) 
전세계 28억명의 SNS사용자 중에서 페이스북 사용자는 20억명에 달하며 그중 국내 이용자만 1500만명에 달한다. 마크 저커버그의 사소한 장난이 페이스북(facebook) 탄생의 배경이다. 학창시절 그는 2003년 친구들과 함께 학생들의 이미지 사진을 올려놓고 매력을 투표하는 사이트인 ‘페이스메시(Facemash)’를 만들었다. 필요한 사진과 자료를 구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의 전산 시스템을 해킹해 입수했고 관심을 끌기 위해 재미로 시작한 사이트가 하루에만 2만 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창시 초기의 페이스북은 하버드대 학생들끼리만 연락처를 공유하는 인맥 관리 사이트였다. 학부 기숙사 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제작되어 간단한 신상 정보가 담겨 있어 상호간의 정보를 교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점차 스탠퍼드, 컬럼비아, 예일대까지 명문대학 위주로 확대되며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의 이용자는 대학생에 서만 머무르지 않고 고등학생, 곧 일반인까지 이용하게 되면서 6400만 명이던 페이스북의 가입자가 2016년에는 무려 17억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페이스북은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조건을 거절하며 직접 운영을 선언한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유례없는 성장으로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억 4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SNS 분야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다른 SNS보다 지역적, 연령적, 문화적인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이 큰차이점이었다. 
 
페이스북(facebook), 대중화된 만큼 문제점 발생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 기기들의 확산은 보다 쉽게 인적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어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특히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패턴 알고리즘을 이용해 원하는 콘텐츠 내용을 제공한다. 자연스레 SNS의 정보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현대인들에게 끊임없이 신선한 정보를 자극적 이고 세분해 제공한다.

이에 따른 사회 현상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SNS를 통한 정보 생산 유통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가짜 뉴스로 미국의 대선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위크리스크, 힐러리 클린턴의 이슬람 국가 무기 판매 확인” 등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정보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가짜 계정을 쉽게 만들 수있어 테러범들이 부적절한 게시물을 업로드하기에도 용이하다. 영국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인터넷이 테러 리즘을 양산하는 공간이 되었다”라는 발언을 통해 페이스북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은 부적잘한 게시물을 차단하기 위해 AI를 도입하고 관련 단어, 문구, 이미지를 학습해 관련 사이트를 추적하고 테러 선전용 컨텐츠를 유포하는 사용자를 찾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라며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 그는 누구인가? 
동네에서 마주칠 법한 친근한 이미지에 1년 365일 회색 티셔츠만 고집하는 ‘회색 티셔츠 덕후’의 마크 저커버 그. 평범한 미국인처럼 보이는 그가 세계 최연소 갑부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발현된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큰 소셜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개발한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주의 의사부부 집안에서 태어났 다. 그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고,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였다.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했다.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고 이후에는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할 정도로 강한 흥미를 보였다. 그는 스티브잡스처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ICT 인재였다. 서양 고전 과목 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일 정도로 과학과 서양고전 연구 과목에 재능을 보였고, 펜싱팀의 주장을 맡을 정도로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좋았다.

저커버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용 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악플레이어였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본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AOL이 소프트웨어를 사들이고 채용을 제안했다. 그는 이 대신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며 기존부터 계획해온 컴퓨터공학과 함께 심리학을 전공으로 수업은 이어나갔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 친구들이었던 에두아르도 세버, 앤드류 맥컬럼,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와 함께 페이스북을 설립했다. 급격한 가입자 증가와 더불어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덕분에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의 억만장자에 15억 달러의 자산가로 올랐으며 하루 사이 7조 원의 재산이 늘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파급효과가 커질수록 그가 갖는 위상도 높아졌고 정보화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전 세계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인물로 자리 잡은 마크 저커버그는 선망의 대상이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색적인 행보 
저커버그 부부는 딸 맥스의 탄생을 계기로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했다.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며 기부 이유를 설명한 마크 저커버그는 ‘챈 주커버그 이니셔티브’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을 기부하는 과정에서도 세금 혜택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학습과 질병치 료, 사람들 간의 연대를 위한 강력한 커뮤니티 건설을 위해 나갔다. 또한 지난달 21일에는 저커버그 부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기초과학의 연구 지원에 10년간 30억 달러(약 3조 3천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혀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실현하는 경영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최근 12월, 둘째딸 출산일을 앞두고 2개월 간 육아 휴직 계획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후 한 달간은 함께 지내고 싶다”라는 말은 남기며 세계적인 기업의 대표 역할만큼이나 중요한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해나가는 면모도 보일 예정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지인의 지인을 찾아가다보면 여섯 명의 인맥만 거쳐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의 누구와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이끌어냈다. 이 가설처럼 페이스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SNS를 통해 이어주었고 그 속에서 가치를 만들어냈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덧 페이스북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 다. 멀리 떨어져있는 지인의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매일 10억 개가 달하는 신선한 콘텐츠 내용과 관계망 형성은 사람들에게 삶의 재미를 안겨준다. 28살, 젊은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는 무뎌진 인적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진솔함을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창을 열며 끊임없이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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