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衣食住)를 버무린 디자인

호텔 인테리어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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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란 단지 공간을 꾸민다는 의미만을 가지는 건 아니다. 호텔이나 회관 같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공간에서부터 혼자 사는 방 한 칸까지 인테리어는 각자의 공간에 하나하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요소를 갖고 있다. 인테리어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주된 방법으로 제시된다. 인테리어가 중요한 이유는 인테리어를 통해 사용자나 방문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대 이비스앰배서더 꼭대기층에서 만난 G.L DESIGN의 김상운 대표는 패션디자이너라고 해도 될 만큼 세련된 이미지와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만의 세련된 감각과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남지역 호텔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CM이다. 

공간의 A부터 Z까지, 컨스트럭션 매니저(CM)
김 대표의 업무는 인테리어 및 인테리어컨설턴트 활동이다. 인테리어와 겸하고 있는 컨스트럭션 매니저(CM:Construction Management)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직업이지만, 하나의 건물이 세워지고 인테리어까지 완성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이다. 컨스트럭션 매니저란 건설 공사에 대한 기획부터 공사가 끝난 뒤의 관리 업무까지 담당하는 전문직이다. 하나의 건물과 인테리어를 완전히 책임지는 과정은 복잡하고 다양한 이차적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컨스트럭션 매니저는 건물과 인테리어에 있어 PM(프로젝트 매니저) 못지 않게 막중한 중책이라 할 수 있다. 공사 금액이나 공정, 품질에 대한 부분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컨설팅이 그의 일 중 하나다. 
"개인공간이나 상가인테리어와 달리 호텔인테리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명 하나, 자재 하나의 특성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봐야 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호텔 물건들과의 조화도 생각해야 합니다. 비울 곳은 비우면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어디고 어떤 분위기를 지향하는지를 생각해 호텔을 찾는 고객이 심적인 여유와 안정감을 찾도록 하는 것 외에도 업무의 특성상 청소가 쉬운 구조여야한다는 부분까지 생각해 세심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인테리어, 그리고 전문가
김상운 대표의 주전공은 패션학이었다. '태림어패럴'에서 일하며 벡스코 패션쇼 컬렉션을 진행하다가, 인테리어 일로 전향했다. 패션전공에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트렌드나 컬러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고 인테리어와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호텔 인테리어 시공을 인테리어 업계의 1군 대기업들이 가져가는 상황 속에서 김상운 대표는 고군분투했다. 다행히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호텔 등 부산에서 굵직한 공사들을 많이 담당했다. 해운대 이비스 엠베서더 호텔를 비롯해 서면 베스트 웨스턴 호텔처럼 부산지역 호텔 인테리어가 김상운 대표의 작품이다. 김대표는 경험을 쌓기 위해 중간 과정에서 아파트나 학교, 상가 등의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10년 동안 그가 단단하게 만들어낸 인테리어들은 부산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다. 

인테리어 경력에서 첫 시작은 10여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과감하 게 패션사업에서 인테리어도 뛰어들었지만, 현장을 공부하기 위해 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조언을 보이지 않는 노력들 속에서 처음 인테리어를 배우던 시절 선임이 가르쳐 주었던 강조내용을 아직도 머리 속에 담고 있다. 
"인테리어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다"라는 말이다. 처음 인테리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치수로 재고, 그 치수에 맞춰서 하는 공사진행을 수학적으로 느끼면 인테리어가 큰 장벽처럼 여겨질 수 있어 편하게 느끼라는 뜻이다. 김상운 대표 또한 현재 배우는 후배들에게 이러한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쉽게 인도하려 한다. 

김상운 대표가 처음 인테리어를 시작했던 때는 이십 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나이였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의 상황과 회사 분위기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었다. 수트를 입고 출근해도 먼지를 뒤집어쓰곤 했다. 낮밤도 없이 일하며 공사 과정 중에 나오는 폐기물을 매일 치웠다. 남들이 보면 쓰레기지만 폐기물 속에 답이 있었다. 목자재나 타일자재 등 공사 이후에 남은 자재의 물성을 하나하나 헤집어 보면서 힘들게 공부했다.

그러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실무 능력을 키웠다. 호텔, 고급주택, 아파트 등 그가 진행했던 여러 큰 공사에 대한 노하우는 회사를 전전하던 시절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생길 수 있었다. 특히 호텔공사 같은 경우에는 매우 포괄적인 영역을 담당해야 했다. 호텔은 카페나 레스토랑, 객실이나 로비 같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진 공간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종합적인 부분을 다루는 호텔을 최종 단계로 본다. 

처음으로 호텔 공사를 맡고 CM의 역할에서 김상운 대표는 열정과 절박함 속 희망을 꿈꾸는 심정으로 뛰었다. 그래서, 첫 공사기간에는 과로로 응급실에 여러 번 실려가기도 했다. 그만큼 전문가로서의 책임감이 막중함을 실감했다.

인테리어와 생활 사이의 연결 고리 찾기 
김상운 대표는 항상 일상의 매 순간을 인테리어와 연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인테리어 트렌드 등은 주로 카페 같은 공간에서 나온다. 카페를 다니면서 인테리어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하고 유심히 살핀다. 이런 성향으로, 그는 그간의 경력 중 '사수'를 여럿 두지 않고 자신만의 인테리어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카페 외에도 다양한 공간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이 디자인하고 컨셉을 맞췄기에 좋은 공간 인테리어를 보면 도움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큰 조력자가 되고 있다. 시간이 나서 휴가나 여행을 갈 때에도 남편의 안목을 넓혀 주기 위한 장소로 떠난다. 다른 경비를 줄여서라도 호텔에서 숙박하며 내부를 보기도 하고, 헤이리마을이나 예술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또 다른 분위기와 아이디어를 쌓아갔다. 김상운 대표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다. 명함에는 아직도 '실장' 직함을 대외적으로 사용한다. 이미 업계에서는 유명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업무적으로도 실장이라는 직함을 상대방이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통이 잘되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함보다는 실력으로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다"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이라 경력이 계속해서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여러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는 그런 유혹과는 처음부터 거리를 두려는 초심(初心)의 다짐으로 ‘실장’명함으로 일하고 있다. 

인생역전 스토리의 주인공
김상운 대표의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부산의 한 동네, 단칸방에서 연탄보일러로 겨울을 났다. 아버지는 공장관리직에 계셨지만 건강 문제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IMF 가 닥치며 사회적 어려움도 겪던 때였다. 김상운 대표는 예민하던 시기에 이런 가정형편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항상 최고가 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김 대표에게 교육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모친의 헌신으로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김상운 대표는 회상했다.

"유치원 때 하루는 어머니께서 다락방으로 절 부르셨어요. 유치원시절 진도를 체크하고 숙제와 예복습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고는 매를 드셨습니다. 초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교과진도를 제가 못 따라 갈까봐 걱정이 되셨던 겁니다. 학창시절 어머니께서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신 뒤 피곤해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가사일 정리를 하며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강한 어머니의 사랑 아래에서 제대로 공부를 했고 엇나가지 않고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일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해요."

가난했던 김상운 대표는 옷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한 달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다녀 학원에서 다른 친구가 놀렸고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김 대표에게는 그 옷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옷이었다. 

"엄마는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아들 옷을 빨래하고 바로 다림질 해 놓으셨어요. 이런 엄마의 정성이 가득 묻은 옷을 마치 웃음거리처럼 놀리는 친구를 가만둘 수 없었죠."

'옷사건' 이후 김 대표는 패션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멋 내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워 주말에 시내로 나가 옷가게를 둘러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진학한 패션관련 대학교 전공도 적성에 잘 맞았다. 하지만 인테리어로 아예 방향을 바꾸게 되었던 그때 그 '우연'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와 패션은 연장선상에 서 있기 때문이다. 패션이 사람이 입는 옷이라면, 인테리어는 주(住)가 입는 옷이다. 

대학교 시절, 실습과 의상에 들어가는 자재비를 대기 위해 매달 100만원 가까이 벌어야 했다. 이를 대기 위해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단순히 아르바이트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의식주와 관련된 일에 모두 종사해 본 경험이 현재 일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의 니즈이기 때문에, 어떤 요구사항을 수행할 때 그가 겪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테리어
그의 명함에 새겨진 'FACTORY'는 그가 앞으로 어떤 것을 꿈꾸고 있는지 암시한다. 그는 가구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인테리어에 가구를 접목해 가구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 합리적인 가구를 생산해 내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상운 대표만이 가질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앞으로도 더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작은 보수공사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겸손의 김상운 대표. 그는 경험이 쌓이는 만큼 섬세하고 수준 높은 인테리어러 보답한다. 앞으로 김 대표가 맡게 될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최고의 인테리어가 될 거라고 짐작하는 이유 역시 다양하고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김상운’만의 인테리어라는 것을 알아서이다. 

역경을 뛰어넘어 자신의 가치와 현재를 투쟁해 온 한 명의 마치즈모(Machismo), 김상운 대표가 열어갈 내일에는 그가 전하는 인테리어처럼 멋진 꽃길만 가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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