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발매 10주년 세기의 혁신가 스티브잡스

스티브 잡스 steve jobs (1955~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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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새로 자리한 애플본사 ‘애플파크’안에 위치한 ‘스티브 잡스 시어터’ 무대에 올랐다. 팀 쿡은 이 자리에서 ‘아이폰X(아이폰 텐)’과 ‘아이폰8’, ‘아이폰8플러스’를 선보였다. 

새로운 아이폰에 팀 쿡이 바친 설명은 “스티브 잡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의 첫 모델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아이폰8’과 동시에 출시된 ‘아이폰X’는 아이폰 시리즈의 10주년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공개한 아이폰은 지금의 스마트폰 개념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여러 기업에서도 스마트폰을 내어놓고 있었지만, 아이폰이 채택한 터치스크린과 쉬운 인터페이스는 이후의 스마트폰의 조류를 바꾸어 놓았고. 쉬운 접근성을 통해 현대인들의 생활양식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지 6년이 지난 해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혁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으레 같이 호출되고 있으며, 그가 남긴 말들이나 일화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혁신의 대명사, 스마트시대의 선구자, 그리고 괴팍한 성격에서 나온 일화들로 평가가 분분한 그는 누구일까. 

훗날 스티브 잡스로 불리게 되는 아이는 1955년 2월 24일 조앤 시블과 압둘파타 존 잔달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폴 잡스,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잡스 부부는 입양된 아이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비행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폴 잡스는 항상 스티브 잡스에게 기계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했고, 결정적으로 초등학교 친구인 래리 랭의 차고에서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교구를 접하면서 기계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약과 반문화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한편 친구들과 전자공학과 수학, 과학에 대한 관심을 나누기를 즐겼고 HP(Hewlett-Packard)사에서 일하면서 HP사의 엔지니어들과 친해 지기도 했다. 이때 잡스는 전자공학과 창작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1972년 리드 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였으나 1학기만 수강한 후 중퇴하고. 1974년 집으로 돌아가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에 취직했다. 고집 센 잡스였지만 아타리 창업자 놀런 부슈널은 잡스를 좋게 보았고, 부슈널이 제시한 프로젝트에서 얻은 돈으로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하였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에서 1976년 애플1을 만들어냈다. 입출력 기기도 제대로 없는 수준의 프로토타입으로 상품으로서 판매하기에는 부족한 물건이었지만, 이는 이후 출시될 애플 컴퓨터들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애플3의 실패로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후 잡스는 NeXT라는 회사를 차리고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고, 1986년 프로젝트에 쓸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루카스필름에서 CG를 담당하고 있던 픽사를 인수했다. 

픽사도 NeXT도 적자가 불어나는 상황이었지만, 픽사의 3D애니매이션을 눈여겨 보던 잡스는 다량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의 주식을 픽사 애니메이션에 대한 스폰십과 마케팅을 디즈니가 하도록 로비하는데 성공했고, 1995년 픽사가 제작한 ‘토이스토리’가 크게 성공하면서 잡스는 명성을 되찾게 된다. 한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나간 애플은 부진을 계속했고 결국 애플은 잡스의 NeXT사를 인수해 잡스를 경영 컨설턴트로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소송을 성공적으로 합의로 마무리하고, iMac G3등을 성공시키며 1년만에 4억달러의 흑자기업으로 애플을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픽사의 애니매이션 ‘벅스 라이프’도 성공시키며 잡스는 완전히 재기하게 되었다.   

2001년에는 아이팟을 세계시장에 내놓아 1억대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2004년에는 애플의 CEO로 완전히 복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6월 29일 “오늘, 바로 오늘, 애플은 휴대폰을 재발명합니다” 라고 밝히며 아이폰을 대중들 앞에 공개하게 되었다.  

전면 터치스크린과 쉬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의 새 지평을 열어준 아이폰은 현재 대한민국내에 ‘아이폰7’까지 출시되어 있고, 올해 9월 12일 팀 쿡의 발표와 함께 ‘아이폰8’ ‘아이폰X’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사망 전 공개한 태블릿PC 아이패드 시리즈도 여전히 태블릿PC의 대명사로서 계속해서 시리즈를 갱신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2위를 굳건히 차지하고, 또 그 어느 스마트폰 시리즈보다 매니아층이 굳건한 아이폰을 사람들에게 선보인 스티브 잡스는 2000년대 들어서 계속해서 건강이 악화되었고 2004년에는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잡스는 건강악화에 대한 여러 루머에도 불구하고 2011년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 등장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2011년 10월 5일, 56세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고, 그는 사망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세기를 대표할 혁신가로서, 사업가로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창업과 창조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롤 모델로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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